저는 어른이 되고 있어요
정부에서 갑자기 나이를 2살 줄여준다고 하는데, 마음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이다. 작년에 30대의 마지막해를 나름의 의미를 담아 고이 보내주었는데, 나는 다시 서른 여덟이 되었다. 글쎄, 반가운 일인가. 이미 마음으로 보내준 30대의 후반을 다시 맞은 격이 되었다.
어찌 됐든, 이리보나 저리보나 나는 어른으로 보인다.
그런데 나는 정말 어른일까.
어른의 기준이란 누군가 정해주는 것은 아닐진데, 스스로 가만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어른스럽지 못했던 기억은 어제도, 오늘도 있었기에. 나는 어른입니다 하고 자신있게 답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어른이 되어 가고 있다고 느끼는 어떤 지점이 있다.
장면 하나.
어느 청명한 가을날, 엄마의 전화.
“민아야 아빠가 건강검진을 했는데, 폐섬유화가 진행되고 있단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오래 못산대.”
심장이 툭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불행이란 일상의 코너에 어디엔가 숨어있다가, 코너를 도는 순간 갑자기 나를 덮치는 것이었던가. 폐 섬유화라니. 예상치도 못한 병명에 나도 할말이 없었다. 검색을 하면 할수록, 마땅한 약도 없고, 고통 속에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병이라는 음울한 이야기 뿐. 어느 순간 머리 위에 드리운 먹구름은 어떤 자극에도 끄떡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상세한 진단을 위해 대학 병원 외래를 예약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얼마나 길던지. 정체 불명의 병명이 일상을 옭죄는 듯해서,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리 저리 도망쳤던 순간들을 지나 드디어 아빠의 외래날. 코로나 초기여서 보호자 1명만 외래를 같이 갈 수 있었고, 나는 그저 병원 주위를 차로 빙빙 돌며 부모님을 기다렸다.
무사히 외래를 보고 나온 부모님이 꺼낸 뜻밖의 이야기. 건강검진 담당 선생님이 전달을 잘못 한 것 같다고, 폐섬유화가 아닌 염증으로 인한 결절 소견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전하는 아빠의 미소는 그동안 걱정시킨 것이 겸연쩍으면서도,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한 홀가분한 소년의 그것이었다. 이제야 살았다. 하는 듯한 표정. 병원에 오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하셨지만, 막상 내가 병원에 오니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한 채 딸에게 속 시원한 마음을 털어놓으셨던 순간.
부모님의 약한 모습, 소년소녀 같은 모습을 본 그날. 나는 조금더 어른에 가까워 졌다.
점차 내가 부모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것보다 부모님이 나에게 기대고 싶은 때가 많아지리.
나는 어른이니까.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는 두 번째 순간.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내 생활을 내가 다 감당하고 있을 때다. 경제력 뿐 아니라, 내 손으로 밥을 차리고, 내 손으로 청소하고, 내 손으로 집안을 매만질 때. 나를 넘어 가족원들의 생활 구석구석을 책임지고 있을 때 말이다.
겨우내 입은 옷가지들을 정리하고, 화장실 세면대와 변기, 수챗구멍에 끼인 물때까지 청소하고, 날씨에 맞는 침구로 바꿔준다. 밥을 차리고, 아이들의 숙제를 봐주고, 씻고 재운다. 아침이 되어 아이들이 들고 나며 엉망이 된 집안을 또 치우는 나의 하루하루. 매일 반복되지만, 티도 나지 않고 보상도 없는 일을 오늘도 툴툴대며 해치운다. 어른이 되었으니까. 육아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립이라는 오은영 박사님의 말씀처럼, 나는 더이상 육아의 대상이 아닌, 누군가를 키워내야 하는 사람이니까.
내 삶의 구석 구석을 내가 더이상 책임 지지 못할 때, 나는 어른이라는 자리를 비워줘야 할 것이다.
나이가 들었다고 어른이 되는 것도,
아이를 낳고 기른다고 저절로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의 실마리를 글로 풀어보았다.
사실 나 역시 아직도 부모님께 기대고 싶고, 내가 왜 다른 가족들이 널부러트린 집안일을 해야하지 라는 마음이 솟구칠 때가 있지만 투덜대다가도 결국 받아들이고 있다. 이것은 어른인 나의 삶이니까.
정말 힘겨운 일이 닥쳤을 때,
어른 스럽게 대처할 수 있길 바라며.
당신은 어른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