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앙하던 드라마가 끝나고
다시 일상이 시작되었다.
마음을 쏟아부었던 내 책이 출간되었고
다시 일상이 시작되었다.
특별히 좋지도, 특별히 싫지도 않은 순간들
하지만 어떻게 해도 따라붙는 생활인의 얼룩을 지우며 하루 하루를 보낸다.
아이들이 어지러놓은 장난감과 책, 옷가지를 치우고
음식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를 내놓고
온 가족이 들락날락하는 화장실도 닦아본다.
학교를 다닐 땐
대학 입학을 하면 해방될 줄 알았고,
대학에 다닐 땐
회사에 입사하면,
회사에 다닐 땐
결혼을 하면 해방이 찾아올줄 알았다.
남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따라 사는 것이 편안했고,
취직도 결혼도 출산도 그 틀에 끼워 맞추고 나면 해결되리라 생각했다.
불쑥 튀어나온 모난 부분을 가만히 두지 않는 사회니까.
그런 모난 부분을 놔두지않으려고 평범한 한조각이 되고자 그 틀에 나를 끼워 맞췄다.
그런데, 그렇게 앞을 보고 달려와도
'해방'이라는 극적은 순간은 없더라.
대한 민국 만세를 수천만의 사람들이 함께 목놓아 부르며 오열하고 기뻐하는 그런 해방의 순간은 오지 않더라.
심지어, 매출이 안나온다고 몇시간씩 같은 말을 반복하며 정신교육을 시키던 부장과
알게 모르게 성적인 농담을 일삼으며 예쁘고 어린 여사원을 옆자리에 앉혀놓고 술자리를 하다가도 주말이면 세상 자상한 남편 코스프레를 하는 팀장으로부터 '퇴사'라는 극적인 결정으로 놓여났음에도 해방되지는 않더라.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도
끝없는 노동. 퇴사하면 끝난 줄 알았던 인간 관계로인한 고민들까지.
색채와 형태가 달라졌을 뿐. 나를 옭아매는 것은 여전히 존재한다.
심지어 내가 선택한 그 틀 안에서도.
'나의 해방일지' 드라마 초반
그렇게 경기도를 탈출하고 싶어하던 세 남매는
엄마의 죽음과 아버지의 재혼으로
드디어 노른자인 서울에 살게 된다.
한번도 채워진적이 없었다던 미정은 알콜중독자이자 클럽 사장인 구씨와 재회하고
아무라도 사랑하겠다 선언했던 기정은 사랑을 찾았지만 여전히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 들어가진 못했다.
차가 있어야 연애할 수 있다던 창희는 롤스로이스도 몰아봤지만 이제는 그곳이 자기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간절히 염원하던 무언가.
그것이 경기도 탈출이든, 진정한 사랑이든, 멋진 차든
겉으로 보이는 것들은 이루어졌지만 그것이 그들을 해방시켜주진 못했다.
다만, 미정은 말한다.
함께 해방클럽이라는 이름의 동호회 활동을 하는 직장동료들과의 만남.
"되셨어요, 해방?"
"뭐. 어느날은 좀 된것 같고
어느날은 도루아미타불이지만
그래도 아예 없다고는 못하는데
조과장님은 전혀 없으세요?"
"나의 힘겨움의 원인을 짚었다는거 외에는..."
이런 대화가 오가고 미정이 말한다.
(해방은) 그게 전부인 것 같아요. 내 문제점을 짚었다는 거.
그리고,
자신을 괴롭히던 인간들.
빌려준 돈을 안 갚고 전 여친에게 도망간 남친, 미정을 괴롭히던 사내 불륜 커플 등에 대한 자신의 힘겨웠던 마음을 되짚는다.
그 새끼는 나한테 돈을 다 갚으면 안돼. 그 새끼가 얼마나 형편없는 놈인지 오래오래 증명해 보일 거니까. 세상에 증명해 보이고 싶어. 내가 별 볼 일 없는 인간이라서 그놈이 간게 아니고 그놈이 형편없는 놈이라서 그따위로 하고 간거라고.... 그래서 내가 힘이 없는거야. 누군가의 형편없음을 증명하기 위한 존재로 나를 세워 놨으니까.
누군가의 형편없음을 증명하기 위한 존재로 나를 세워놓는다라는 말이, 마음에 꽂힌다.
더이상 누군가를 원망하고, 탓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본 후 그 감정을 놓아주는 것은 결국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나만이 나를 해방시킬 수 있는 존재니까.
그리고 미정은
아침에 눈을 뜨면 지나온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몰려오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몰아내기 위해 술을 마신다는 구씨를 진정으로 추앙하며 이렇게 말한다.
아침마다 찾아오는 사람한테 그렇게 웃어. 그렇게 환대해.
아침마다 찾아와 욕설을 퍼붓고 나쁜 기억을 주는 사람들에게 환대하라니.
누군가의 형편없음을 증명하기 위한 존재로 더이상 나를 세워 놓지 않겠다는 말이 아닐까.
내가 왜 힘든지를 들여다보고
내가 변화함으로써
나를 해방시키기
결국, 그것이 다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하루에 5분. 5분만 숨통 트여도 살만 하잖아.
편의점에 갔을 때 내가 문을 열어주면 '고맙습니다'하는 학생 때문에 7초 설레고,
아침에 눈떴을 때 '아, 오늘 토요일이지?' 10초 설레고 그렇게 하루 5분만 채워요.
그게 내가 죽지 않고 사는 법
미정이의 말처럼
하루 5분을, 설레임으로 행복으로 채우며 살기.
카페에서 글을 쓰는데
갓난 아이의 딸꾹질 소리가 들린다.
딸꾹 딸꾹
오늘 하루치 행복이 5초만큼 적립됐다.
유치원 갔다온 아이가 엄마가 보고싶었다고 안긴다.
10초만큼 행복하다.
그렇게 매일매일 행복을 그러모아 5분을 만들다보면
나도 미정이처럼 내 자신이 너무 사랑스러워지는 순간이 오겠지.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차서 느낄게 사랑밖에 없는 순간이 오겠지.
그렇게 오늘도 나만의 해방일지를 써본다.
아, 그리고 각자의 해방일지를 쓰기로 한
방탄소년단에게도 응원을 보낸다(한 아주미 아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