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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달 Dec 27. 2021

엄마처럼 살지 않을거야 다짐했던 소녀는 마흔이 되어

마흔이라는 나이를 앞두고, 이제야 엄마가 내 나이일 때를 돌이켜볼 수 있게 되었다. 언뜻 언뜻 생각나는 내 나이 즈음의 엄마. 매일 쓸고 닦고, 음식 만들고 아이들 키우며, 요즘 말로 ‘독박 육아’가 당연한 줄 알고 나와 동생을 키운 엄마, 가끔 동네 아줌마들과 집에서 다과하며 행복해하던 엄마, 가곡에 맞추어 노래 부르기를 즐겼던 엄마, 가난하고 없는 살림이지만 어디가도 가족들 입성이 초라할까 직접 시장에서 원단을 떼서 예쁜 옷을 만들어 입혔던 엄마... 그런 엄마를 보며, “나는 다른 삶을 살거야.” 라고 남몰래 다짐했던 것 같다. 매일 집안일에 메이고, 가족과 동네를 벗어나지 못하는 삶 말고, 더 넓은 세상을 배경으로 많은 이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땐, 우리만을 위해 사는 엄마가 왜 그리 답답해 보였을까. 이제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되어보니 알겠다. 엄마는 엄마의 방식으로 행복을 일구어 나갔다는 것을. 엄마처럼만 살기도 쉽지 않다는 것을.     


엄마는 자신의 행복을 찾을 줄 알았다.

엄마는 다른 이를 위해서만 살지 않았다. 틈틈이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 생활 등을 하며 자신을 사랑하려 노력했다. 우리를 키우면서 요가, 에어로빅, 헬스 등 다양한 운동을 쭉 해왔고, 꽃이나 바느질, 예쁜 소품 등 소소한 작은 것들로 집을, 일상을 채웠다. 매일 일기를 썼고, 음악을 들었다. 그렇게 자신을 붙잡으려 애쓰며 살아온 나날을 이제야 깨닫는다. 아빠는 바빠서 매일 늦었기에 집이라는 공간, 아이들 곁을 굳건하게 지켜야 했던 것은 항상 엄마였다. 집에서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는 시간을 사수했고, 그렇게 만든 작은 행복을 나와 동생에게도 전달했던 것이다.       


엄마는 자신과 자식의 삶을 분리시키려 노력했다.

한 번도, 엄마가 나의 의지와 반하는 결정을 하게끔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설사 본인은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할지라도 엄마는 나를 믿었고 내가 스스로 결정하게끔 했다. 그 흔한 공부하라는 말도 한번 해본 적이 없었고, 어떤 전공이, 회사가 좋지 않냐고 강요한 적도 없었다. 물론 내가 조언을 구하면 선선히 본인의 의견을 이야기하곤 했지만, 그것이 만약 내 의견과 일치하지 않으면 내 의사를 따르게 해주었다. 내 아이들을 키워보니,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줄 알겠다. 아이가 자아가 생기고, 내 의견에 반하는 의견을 내놓기 시작한다. 아이의 의견을 내 마음대로 조물락 하고 싶은 충동이 시시때때로 느껴진다. 참지 못해 아이에게 잔소리를 쏟아내고, 화를 내기도 한다. 아이가 자신의 마음을 오롯이 아이의 의사로 가다듬고 조각하기 까지 기다려준다는 것. 아이의 삶과 나의 삶은 결국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 그것을 머리로 알고 몸으로 실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엄마의 본분에 충실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러면서도 엄마는 맡은 일을 다 해내는 엄마였다. 아웃소싱을 할 수 있는 요즘과 달리, 모든 걸 혼자 감당해야 하는 집안일만 하기에도 엄마 손에는 물 마를 날이 없었다. 내가 살던 동네에는 반찬가게도 없었고(혹은 있었지만 엄마가 사먹지 않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외식은 연중 행사였다. 기념일이 있을 때만 갔던 중국집, 칼국수집이 생각난다. 급식도 안했던 때라, 야자를 하는 고등학교때는 도시락을 2개씩 싸주었다. 점심, 저녁을 다른 반찬으로. 하루 종일 집 치우고, 빨래하고, 밥 하느라 바빴을 우리 엄마. 다시 나의 상황으로 돌아와, 아이들의 방학을 목전에 두고, 앞으로 해내야할 끼니를 계산해보니 무려 150여끼가 나왔다. 대형 마트에 가서 아이들 먹을 것을 쓸어오고, 음식을 소분했다. 그렇게 냉장고를 채워놓고 겨울을 버텨낼 준비를 했다. 아이들과 또 얼마나 지지고 볶아야 이 겨울이 끝날까 하는 생각도 스쳐지나갔다.  엄마는 매일 했을 그 일을, 나는 여전히 분투하고 있다.

  

정여사 지금처럼 건강하게 우리 곁에 있어주세요. 사랑합니다.

그럴 때마다, 엄마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되뇌어 보려고 한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 호언장담을 했던 소녀는 어느새 마흔을 앞둔 아이 둘의 엄마가 되어, 엄마의 마흔을 돌이켜본다.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고, 가진 것이 없었지만 누구보다 마음은 풍요로웠던 엄마의 마흔. 엄마가 되어 비로소 엄마가 살아온 삶의 가치를 깨닫는다. 그리고, 이제는 말 할 수 있다. 엄마처럼 살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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