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는 결코 자유롭지 않다

서른셋에 자립을 결심한 이유

by 변민아

*이 글은 2017년 서른넷 어느 여름에 작성한 것입니다.





[프리랜서(free-lancer, 명사)]
일정한 소속이 없이 자유 계약으로 일하는 사람.
‘비전속’, ‘비전속적인’, ‘자유 계약자’, ‘자유 기고가’, ‘자유 활동가’로 순화


프리랜서가 되어놓고, 1년이 훌쩍 지난 이제야

이 말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12세기 유럽에서는 왕실에 고용되지 않은 용병들을 '자유계약자'라는 뜻의 프리랜서로 불렀다고 한다.


서른셋에 퇴사하여 독립하겠다고 선포하고 나온 후 약 1년 반이 지난 지금 나는

‘도대체 무엇으로부터 독립하려고 했던 걸까?’ 생각하게 되었다.

단순히 회사로부터의 독립이었던 걸까.

그때는 독립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썼는데, 그 앞에

‘무엇’으로부터 독립하겠다는 말이 빠져 있었던 것 같다.


프리랜서라는 말이 좋은 이유는 ‘free’ 때문이었다.

자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치이자 궁극적으로 도달하고 싶은 경지.

그런데 그 자유라는 개념과 항상 짝꿍처럼 붙어 다니는 말이 있으니, 바로 ‘책임’이다.


책임을 동반하는 자유는 자유로운가?

그렇다면 책임을 동반하지 않는 자유는 자유가 아닌가?

책임이라는 것은 일종의 족쇄다. 인간이 백 퍼센트 자유로운 존재가 되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자유에는 책임이라는 게 동반되고, 책임이 있는 자유만이 사회에서 인정받으며, 그래야만 성숙한 자유인에 대해 논할 수 있다.


그래서 프리랜서가 된 후, 그 자유와 맞닿아 있는 책임이라는 부분이 커지면서

사실상 자유로우면서 자유롭지 않은 과도기적인 시기를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당당함을 기반으로 맞서기에는 여전히 설익어 있다.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라는 꼬리표는 조직과 기관과의 협업에서

나를 완전한 을로 만들었다.


수직적인 관계가 싫어서 나왔는데,

이 수직적인 관계는 더더욱 냉정할 따름이다.

‘우리 사람’이라고 인정받기 힘든,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은 자유라는 타이틀 때문에 그렇다.

무언가에 소속되고 싶지 않아 나왔는데, 소속되지 않은 몸은 떠돌이일 뿐이고,

그런 상황에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실력’이라는 결론에 이르자

결국 ‘내가 너무 설익은 상태로 나왔나’라는 걱정의 고리로 이어지는 것이다.

즉, 퇴사의 타이밍이 문제였나 점검하게 된다.


그런데 나는 퇴사를 할 때 역순으로 계산을 하여 정확히 원하는 시점에 나왔다.

쉰이 넘어서는 내가 무슨 소리를 해도 꼰대가 될 거라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쉰이 넘고 나서는 내가 무슨 말을 던져놓고도

그게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쉰이 넘으면, 전문성을 가지고 일을 하되 누군가와 협업해야 하는 일은 최대한 기피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보면 그때부터 정말 진정한 ‘프리랜서’의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믿은 것이다.


그렇게 따지자, 나에게 약 15년이란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강산이 변하는 데도 10년이 걸린다는데,

한 인간이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 때까지

10년이 걸릴지 더 걸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15년은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당당하게 서른셋에 나올 수 있었다.

서른다섯에 나오지 않은 이유는 프리랜서 생활에도 적응 기간이 필요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프리랜서의 정의에서 눈에 띄는 건 ‘자유 계약’이라는 부분이고,

전속되지 않았다는 부분인데 참 이게 애매한 것이다.

자유 계약? 나는 계약서를 쓰고 있기는 한가?

계약서를 쓸 때 정말 자유로웠던가?

압박감에 물러나야 했던 것을 ‘협상’이라 표현할 수 있나? 그건 협상이 아니었다. 나는 자존감을 무너뜨려가면서까지 서명을 해야 하는 순간에 맞닥뜨려야 했고, 그럼에도 이 일거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서명을 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외치는 나에게 또다시 상처를 받았다.


적어도 처음 1년은 그랬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입에서 뱉지도 하지 못했다. 허공에다 억울함을 뱉는 순간 또 나에게 상처를 줄 거란 걸 알아서, 결국 뒷담화라는 수단을 활용해 상대를 욕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나는 협상에도 젬병이고, 나는 자유로워질 수 없는 실력인데도 자유를 찾아 나온, 설익은, 전속되지 않은 존재라고 스스로를 정의할 때마다 ‘나만 이런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그렇게 조금씩 수입을 얻어가고,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에서

비록 상처를 받긴 했지만 나의 판단 자체는 맞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아직, 나온 지 2년도 안 되었잖아’라는 말이 충분히 스스로에게 먹히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지금은 이래야만 하지만 얼마 후에는 판도가 달라질 거야.”


남편한테 이렇게 말했던 얼마 전의 나는 또 그 사이, 그 ‘얼마’라는 시간을 견뎌냈다.

시간이 흐르는 건지, 내가 시간을 견뎌내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서 자유 아닌 자유를 누리며 불완전한 상태로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오후 2-3시, 내가 좋아하는 햇살 드리운 카페에 앉아

노트북 하나 펴놓고 일할 수 있음을 행복해하는 지금의 삶을 사랑한다.


삶 자체가 자유와 책임의 산물 아닌가.

인생에도 진통이 있듯,

프리랜서 또한 그 이름을 온전히 쓰기 위해서는 그만한 대가를 견뎌야 한다.


그걸 믿고, 조금 억울했던 날들을 흘려보내야 한다.

그리고 소심한 건지, 자신이 없는 건지, 둘 다인 건지 알 수 없어 다쳤던 나는

결국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비폭력 투쟁을 하는 사람이었다고 포장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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