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백만 원 갖고'라는 폭력

by 변민아

*이 글은 2017년 서른넷 어느 여름에 작성한 것입니다.




정당하게 받아야 하는 돈에서

백만 원을 굳이 깎으려 하면 화나는 이유를 정확히 남기겠다.


사실 백만 원은 상징적인 액수일 뿐이다.

그런데 신기할 정도로 늘 ‘고작 백만 원’이 되는 일이 많았기에 백만 원으로 쓰기로 한다.


‘고작 백만 원 갖고’라는 생각은 나를 두 번 죽인다.


당연히 회사가 어렵거나 정말 그 정도 돈도 주기 힘든 상황이면 나도 심사숙고하여 일을 받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겠다고 할 때는 분명 다른 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에 하겠다고 선택한 것이다. 따라서 그렇게 내가 자발적으로 백만 원도 더 못 받는 상황을 받아들인 경우는 제외한다.


정말 고작 백만 원을 ‘깎네 마네’ 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속으로 ‘고작 백만 원 갖고’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회사에 쏘는 화살은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


왜냐하면, 그 말에는 이런 뜻이 숨어 있으니까.


‘고작 백만 원 갖고 나는 왜 이렇게 치사해져야 해.’

‘솔직히 말하면 나한테는 그 백만 원도 지금 너무나 소중하거든.’

‘내가 백만 원에 이렇게 자괴감을 느끼려고 회사를 나온 게 아닌데.’

‘하지만 고작 백만 원이라고 하기에는 나에겐 사실 [백만 원씩]인 거야.’


'고작 백만 원'은

고작 그것 때문에 치사하게 나오는 회사와

고작 그것 때문에 자괴감을 느껴야 하는 나를 오묘하게 연결해준다.


결국엔, 나에겐 '고작'이 될 수 없는 문제기에 다치는 것이다.


당신에겐 그냥 돈을 좀 아낀 것이겠지만 나에겐 생계가, 내 자존심이, 내 몸값의 하한선이 달린 문제다. 그런 문제 앞에서 때로는 수긍해야만 할 때, 나는 뒤돌아서서 ‘에라이 갑질, XX’라는, 전에는 입에 잘 담지도 않았던 욕으로 입을 더럽히는 것이다.


쌍시옷의 향연은 이 일이 끝날 때까지,

아니 다음 일을 시작할 때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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