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7년 서른넷 어느 여름에 작성한 것입니다.
자신에게 귀가 있다는 걸 잊은 듯 사는 사람이 있다.
두 눈은 앞을 보고 있지만 앞에 있는 사람을 보고 있지는 않는다.
늘 본인의 시간과 본인의 상황, 본인의 사정만 보이고,
귀는 다른 사람의 말이 지나가는 통로의 역할을 할 뿐이다.
한쪽 귀로 들어간 말은 다른 한 귀로 나오면서 허공으로 사라진다.
그래서 듣는 법을 잊을 사람은
대부분 보는 법도, 느끼는 법도 잊은 경우가 많다.
상대에게 촉을 세우고 있지 않아
행간을 읽을 줄 모르고, 상대의 기분을 느낄 줄 모른다.
상대가 어제 말한 이야기도 기억하려 하지 않고,
그가 보낸 메시지를 다시 찾아보는 일마저 귀찮아
그 사람에게 다시 물어보며 그 사람의 시간을 쓴다.
상대에게도 아픔이 있고, 일이 있고, 일상이 있다는 걸 아예 생각하지 못한다.
상대가 한 배려가 배려인 줄 모르고,
자신의 귀의 역할을 잊은 채 상대의 귀에게만 역할을 강요한다.
‘너는 내 이야기를 들어야만 한다. 니가 어떤 상황이고, 니가 어떤 감정이고,
니가 지금 얼마나 힘든지는 나와 아무 관계가 없다.
너는 그냥 나의 두 귀가 되어주고, 나를 보듬어줄 멘트를 준비하라’고 압박을 가한다.
그런 부류는 대체로 바쁘다.
일을 벌이고 누군가를 만나는 것만으로
일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간에 자각을 할 법도 한데, 그 패턴을 끊지 못한다.
타인의 실수에는 격하게 분노하지만,
자신의 실수를 실수로도 인지하지 못해 사람을 잃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잃어버린 사람을 대체할 또 다른 사람을 계속해서 찾아다닌다.
그래서 그런 부류는 대체로 아주 많이 바쁘며 잘 돌아다닌다.
늘 사람을 찾아다니며,
사람에게 받은 도움은 결국 ‘빚’이라는 걸 모른다.
너무 많은 사람에게 빚을 지고 있어 결국엔 그 사람들을 다 챙길 수 없게 되고
항상 비난을 받는 일이 잦다.
그들은 바빠서 듣는 법을 잊었다기보다
듣는 법을 잊다 보니 바빠진 부류다.
자신이 늘 모든 관계의 중심에 있는
‘자(기를 중심으로 모든 일이 돌아가는)동인간’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분명 “미움받을 용기”도 필요하고,
때로는 “개썅마이웨이”를 가야 하는 건 맞지만,
타인을 보지 못하는 눈, 듣지 못하는 귀,
그리고 사실상 거를 건 거르고 상대에게 상처가 되지 않는 말을 하지 못하는 입을 쓴다면,
그래서 타인을 불행에 빠뜨리고 휘둘리게 하는 패턴이 계속된다면.
그냥 그건 잘못된 거다.
그 입을 진실로 사과하는 데 쓰거나
입에 휴식을 선물하는 게 관계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