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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민아 Nov 28. 2020

퇴사한 지 약 5년. 후회한 적 없다면 거짓말



퇴사 후 후회한 적 있어요?



만약 이 질문을 2-3년 전에 받았다면

전혀 후회한 적 없다고 대답했을 것 같다.


아침 지옥철 겪지 않아도 되고

평일에 은행, 우체국, 병원에도

누군가의 허락 없이 갈 수 있는 것,

원하는 공간에서 원하는 시간에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할 것 같다.


그리고 약간은 거짓말을 보태기도 했을 것이다.

내가 선택해서 회사를 나왔는데

구질구질하게 살고 있다고 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러나 퇴사한 지 약 5년 정도 된 지금은 조금 다르다.


후회한 적 있냐고?

있다. 당연히 있다.

다만 '아니야, 다시 돌아가더라도 어차피 또 퇴사했을 테니까.'라고

생각을 빨리 돌리는 데 도가 텄을 뿐.


사실 이건 프리랜서라면 누구나 겪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나는 약 5년 정도 출판사에서 (아주 빡세게) 일하다 나왔지만

프리랜서가 되었을 때 마치 '바보'가 된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프리랜서라는 '불안정한 구간'을 지나는 동안

어떻게 후회 한 번 안 할 수 있겠는가.


몸담았던 곳이 아무리 작은 회사였어도

회사 밖에 나오면 한 회사의 직원으로 있을 때는 알 수 없는

엄청난 심적, 경제적 부담감을 안고 살아야 한다.


인간관계도, 소통도, 계약도, 비품 구입도, 부당한 대우에도  

모두 나 혼자 대응하고 해결해야 하니까.

더구나 세금 문제나 소득 신고 이런 문제 앞에서는

'똥멍청이'가 된 것만 같았다.


출판사 편집자일 때는 내가 외주 계약서를 들고 나가

계약을 했었는데 갑자기 입장이 바뀌어 버렸다.


내 이름으로 처음 계약하는 자리에서

나는 얼마를 받아야 하는 사람인지,

그 미팅에서 외주자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외주자로서는 어떤 것을 조심해야 하는지,

어떤 것을 요구할 수 있는지 등등


입장이 바뀌니 이 또한 백지 상태였다.


이런 문제들 하나하나 스스로 예측하고 대응해야 했다.

그러다 보면 반드시 놓치는 일이 생겼고 오해가 생기기도 했다.

그렇게 편집 작업을 할 때마다 늘 자잘하면서(때로는 꽤 아픈) 사고가 터졌다.

그리고 그 사고마저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아마도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은

내심 퇴사한 사람이 불행하게 지내기를 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나 역시 자격지심(?)에

별 어려움 없이 사는 것 같은 모습을 많이 보이곤 했다.


그래서, 정말 별 어려움 없이 살았냐고?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고정수입이 없는 나는 늘 쪼들렸고 힘들었고

시간적 자유만 늘었을 뿐

나에겐 어떤 결정권도 없는 상황이 견디기 힘들었다.


말이 프리랜서지

이건 직장인도 아닌 실업자도 아닌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꽤 알려진 직업도 아닌.

늘 그저 그렇고 애매한 어떤 외딴섬에 놓인

'사회적 약자'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프리랜서 초반에는 열정도 에너지도 넘쳐서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을 만났지만

그 또한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람을 많이 만날수록 정말 집중해야 하는 시간을 빼앗기는 듯했다.


여러 사람에게 치이고 실망하다 보면 사람들과 멀어지며

약간 '고립'되는 시기가 오는데 이때가 또 위기다.


뭔가 잘못되어 가는 것만 같고

회사에 있을 때 내가 더 멋있었던 것 같고

내 앞에서는 티를 안 내도 이미 팀장, 리더가 된 동료들이 날 비웃는 것 같고


혹시 나는 회사에서 더 많은 경험을 쌓고 나왔어야 하는 건 아닌가

너무 섣부른 퇴사는 아니었을까.

.

.

.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남들은 일이 없어 문제라는데

의뢰가 끝없이 들어오는 그 순간에도

때로는 너무나 외롭고 숨이 막혔다.


하루를 지나다 보면 배고픔을 느끼는 시간이 주기적으로 찾아오듯

그렇게 후회의 순간들도 내 텅빈 마음을 찾아왔다.


그리고 그 후회가 온 몸을 잠식할 만큼 커지면

한없이 조급해지면서

그때부터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아닌

다른 것에 눈을 돌리게 된다.


그렇게 사이버대학교도 알아보게 되었고

여러 강좌나 유튜브를 뒤지기도 한다.

혹시 이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다른 지름길은 없을까

헛된 희망을 품다 보면 구직사이트도 뒤지고 있고

알바 사이트까지 뒤지고 있다.


그러나 다 뒤져도 결론은 한결 같았다.



아, 내가 또 초조했구나. 다시 일에 집중하자.



이런 과정을 거쳐 5년 정도를 버티다 보면

비슷한 시기에 퇴사했던 동료가 다시 회사를 들어가는 광경을 수없이 목격하게 된다.


그때마다 '그들이 더 옳은 판단을 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 또한 말이 안 된다.


회사를 나오고 들어가고. 프리랜서로 살고 말고.

여기서 옳고 그른 가치 판단이 들어설 수 있는가?


그래서 이제는 '실컷 후회하는 시점'은 다 지난 것 같다.

후회를 하기에는 이미 이 생활에 굉장히 익숙해졌고

어느덧 팀을 꾸려 일하는 단계로 넘어오면서

더 많은 기회를 보고 있다.

게다가 야생에서 버틴 저력은 생각보다 큰 자산이 되어주었다.


물론 다시 회사에 들어간다고 해도 패배자가 아니다.


그저 우리 삶에는 회사를 나와 있는 구간도 있는 것이고

직장인으로 사는 구간도 있는 것이고

1인 회사로 사는 구간도 있는 것이고

백수(탐색의 시간)의 구간도 있는 것일 뿐.


다만 나는 다시 회사에 들어가도

내가 업무와 프로젝트 등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는 내 회사를 만들기 위해 매일매일 고군분투 중이다.



https://blog.naver.com/eches84 

블로그에 포스팅한 글을 수정하고 보완하여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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