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7년 서른넷 어느 여름에 작성한 것입니다.
프리랜서가 되어 내 시간을 좀 더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생겼고,
월요병 따위와는 결별하게 되었고, 남들 일할 때 카페에서 여유를 부리는 일도 생겼고,
남들이 쉴 때 일을 하는 패턴이 이어지기도 했고,
원래 올빼미형 인간인 데다 전화 혹은 수많은 통신 등에 방해받지 않는 새벽이라는 시간에 일하는 게 편해
모든 리듬은 철저히 내가 주관하게 되었다.
그런데, 규칙성이 파괴된 것의 대가는 생각보다 가혹했다.
프리랜서라고 해도, 거의 협업이 필요 없는 일을 한다면 이 패턴이 참 잘 맞을 것 같은데
사람을 계속해서 만나야 하는 일을 하다 보니
새벽에 일을 하면 아침에 자야 하지만
오전 전화로 깨야 하는 일도 허다하고,
교정지를 주고받기 위해 퀵을 기다리고, 퀵을 보내기 위해 잠 아닌 잠을 자게 되고,
휴식 아닌 휴식을 취하게 된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휴식’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뜻이 나온다.
[휴식]
하던 일을 멈추고 잠깐 쉼
밑줄을 긋고 싶은 부분은 ‘하던 일을 멈추고.’
그런데... ‘잠깐’은 왜 들어간 거지?
그럼 길게 쉬면 그건 휴식이 아니란 말인가?
길게 쉬는 것은 무엇이라 하는가.
나는 오늘 하루 종일 잠을 잤다.
그걸 휴식이라고 표현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잠깐’이라는 말은 조금 거슬린다.
언어라는 것은 사회를 반영한다. 이미 저 휴식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휴식은 일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으며,
일의 상대적인 개념으로서 휴식은 존재하며,
일이 계속 연속되는 상황에서 잠깐 틈을 내는 개념이 휴식인 양 쓰여 있다.
휴식은 일의 하위개념처럼 보인다.
아무튼, 저 정의에 의하면 나는 휴식을 취하지 않은 게 확실하다.
우선 하던 일을 멈춰야 하는데
일은 멈췄을지 모르겠지만 뇌는 멈추지 않았다.
손을 계속해서 스마트폰 위를 춤추며,
오해를 낳지 않기 위해 SNS 친구 글에 반응도 해주고,
누군가가 올린 글을 보면서 캡처를 뜨고 ‘기획에 도움이 될 만한 얘기야’,라는 생각으로 저장한다.
그러다 보면 SNS를 하는 건 쉬는 건가, 놀이인가, 일의 연장인가, 사회생활의 연장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라는 말은 이미 이런 뜻을 폴폴 풍긴다.
이 또한 너가 타인과 관계를 맺는 하나의 장이고,
그것은 너가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현실과는 또 다른 공간이니라.
그러다 보니 개인적 자아, 사회적 자아를 넘어서 ‘SNS 자아’가 또 생겨버린다. 그 SNS 자아는 좀 특수해서 가끔 이게 나인지 아닌지 헷갈리고, 그냥 혼자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서 썼으나 알고 보면 누군가를 생각하며 쓴 글이고, 분명 독백인데 독백이 아닌, 사람들의 반응을 요구하는 글이 된다. 나는 그런 SNS를 나를 마케팅하고 알리는 수단으로 잘 쓰지 못하기에 나에게는 그저 개인적이고 사적인 기록이기도 하다.
‘사회적’과 ‘사적’은 충돌하는 개념이지만 SNS에서는 그것은 사적이지도 않고 사회적이지도 않은 애매함을 낳는다. 그럼 그 안에서 누군가의 글과 사진을 보고, 반응을 해주고, 그리고 나도 글을 쓰며 내 근황을 알린다. 나의 기록을 타인에게 공개하는 행위는 정말 누구를 위한 것일까.
그리고 내가 스마트폰으로 SNS 자아를 작동시키고 있는 시간은 휴식의 시간인가 아닌가. 하던 일을 멈추지 않고 뇌가 작동하고 있는 건 휴식일까 아닐까.
프리랜서가 되어 자유 아닌 자유를 누리고,
휴식 아닌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건 너무나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직장을 다닐 때는 휴식 자체가 없는 삶을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꼬박꼬박 내 통장을 채워주는 수입이라는 게 쉼 없는 삶을 정당화해주었다.
하지만 프리랜서가 된 지금의 나는 쉬는 만큼 돈을 벌지도 못한다.
그리고 심지어 일하는 만큼 돈을 벌지도 못한다.
‘일을 하기 위해 쉬는 거야.’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수입을 벌고 있기에
온전한 휴식을 더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 와중에 가족행사에 함께하는 사람들의 스케줄도 챙겨야 하고,
이 와중에 머릿속에서는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아이를 상상하며
그 아이가 생기면 나의 삶은 구렁텅이에 빠지는 건 아닐까, 공포에 휩싸인다.
온전한 휴식은 나의 몸과 마음에 신선한 공기를 넣어주는 것일 텐데.
아무 생각 없이 있는 시간에 대해서 좀 더 관대해지려면,
나는 얼마만큼의 돈을 벌어야 하며, 그 돈을 벌기 위해서
나는 또 얼마만큼 일을 해야 하는 걸까.
또 한 번, 글과 생각은 비극을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나는 이 글을 쓰며 쉬는 걸까, 일을 하는 걸까?
지금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이 행위는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