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글을 만지는 사람의 결핍

by 변민아

*이 글은 2017년 서른넷 어느 여름에 작성한 것입니다.




책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종이에 둘러싸여 일을 하는 게 행복했던 시절도 잠시,

한 권 한 권 세상에 내놓을 때마다 공허해진다.

올해는 그 이유를 파헤쳤다.


그러다 나로써 시작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편집자의 일은 남의 글을 받아야만 시작된다.

다른 사람의 글을 만지는 것만큼 위대한 일은 없다고 하는 명언이 있기도 하지만

그것의 위대함까지는 잘 모르겠고

누군가의 글을 평가하고 재단해야 하는 입장에 서면서도

그의 창작 과정에 동참하는 것이 꼭 그리 달가운 일만은 아니다.


왜 달갑지 않느냐고?


첫째, 책을 써본 적도 없으면서 어찌 책을 만드느냐는 질문에 나는 답을 못하겠다.

솔직히 이게 잘못된 질문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사실 직접 비즈니스를 하지 않으면서도 성공적으로 솔루션을 제공하는 수많은 컨설턴트의 존재가 이에 대한 변명거리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내 정서상 책 한 권도 써보지 못한 나는 당당하지 못하다.


참고로 나는 대학원에 가 세부 전공으로 경제사회학,

그중에서도 기업사회학을 선택해놓고,

한 학기가 지나, 나는 사회학을 공부하는데 ‘사회생활’도 해본 적 없어 사회에 대해서도 모르고, ‘기업’에서 일해본 적도 없어 기업도 모르니 기업사회학이라는 주제를 다룰 자격이 없다며 자퇴를 한 인간이었다.

그만큼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 아는 척하는 것을 유독 참지 못한다.


둘째,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로부터 시작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내가 먼저 저자에게 연락을 해 ‘이런 책을 만들고 싶은데, 선생님이야말로 그 책을 가장 잘 써주실 분이라 생각해요. 함께 작업을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면서 기획을 먼저 제안하여 시작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 경우에도 저자의 원고를 받지 못하면 그 일은 성사되지 않는다.


이처럼 나의 일은 저자의 원고를 받아야만 시작된다.

그런 류의 일이 이 일만은 아닌데 뭐 그리 심각하냐는 질문을 던질지도 모르나

그 또한 시답잖은 위로다.


저자의 창작 과정에 동참하며 저자와 내밀한 이야기를 나눠야 하고,

내가 글의 주인이 아닌데도 때로는 주인처럼 읽을 줄도 알아야 하니

마치 누군가에게 재료를 받아 내가 요리를 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내 것 아닌 내 것 같은 원고와 정이 된 시점에 책이 나오고 나면,

편집자는 스태프로서 조용히 뒤로 빠져 다음 책을 준비한다.


그러다 보면 감히 나도 남의 글을 만지는 주제 그것에 푹 빠져

내 것 아닌 내 것에 일희일비했다는 점에 허무해진다.

저자의 그림자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내면 되는 건데,

그림자는 때로 자신이 그림자인 줄 모르고 착각할 때가 있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나의 눈, 코, 입, 생김새와 컬러를 되찾는 일이 시급하다는 걸 알았을 때,

SNS도 끊고 온전히 나만의 글을 쓰는 데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책을 내보고 싶은 이유 중

저자의 마음을 이해해보고 싶었다는 건 대외적인 것이고

그냥 이제는 나의 글을 좀 써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다른 사람의 글을 만지는 사이에 이렇게 변비가 심해졌는지 몰랐다.

그래서 이제는 나도 내 감정의 똥을 좀 배설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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