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을 공유한 사이

by 변민아

*이 글은 2017년 서른넷 어느 여름에 작성한 것입니다.




운전을 하다가

그녀와 내가 사전을 공유한 사이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각자의 언어를 정확히 이해했기에 ‘소울메이트’가 된 것이다.

사실은 이상할 정도로 그녀가 요즘 나에게 무슨 신호를 주고 있다는 확신이 들어

마음이 이토록이나 쓰리다.


내 정신의 반 정도를 공유한 존재가

어느 날 갑자기 바람처럼 사라져버렸다.

연인이 아닌 소울메이트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건

생각보다 끔찍했다.


정확히 그녀가 사라진 게 아니었다. 그녀는 내 인생의 무대에서 스스로 퇴장했다.

그래서 나는 내 시야가 닿지 않는 경계에서 아슬아슬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그녀의 실루엣만을 지켜봐야 했다.


난 그녀가 어디 살고 있는지도 알았고

메시지도 보낼 수 있었고

맘만 먹으면 볼 수도 있었지만

그녀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라고 단 한마디도 할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때

이 무력함은 관계의 깊이가 만들어낸 건 아닐까, 좌절했다.

그 누구보다 가까웠지만 한순간에 세상에서 가장 불편하고 불안한 사이가 되었음을

인정할 수 없었다. 숨통이라고는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밀착된 관계는

이미 파멸이라는 결론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정확히 나를 끊어냈다.

인정하기까지 10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마지막 모습이 남긴 뜻은, 내가 알기로는

‘너는 내 인생의 구성물이다. 그러나 그렇기에 사라져달라.

너를 세상 그 누구보다 아낀다. 그러나 그렇기에 사라져달라.’였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느꼈다.

그럼에도 끊어냈다 생각한 끈의 실오라기가 아직도 몸의 어딘가에 붙어서

자꾸만 불쑥 나를 흐트러뜨린다.


너는 나에게 이제 온전히 나로서 자유로워지라 했지만,

그것이 널 도와주는 거라고 온몸으로 절규했지만

나는 결국 너의 비극까지는 안을 수 없는 존재라고 외치는 것 같아

아직도 난 너에게 무력함일 뿐이다.


너는 내가 살면서 감당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면

그게 어떤 건지 나에게 그림을 그려주었다.

일상을 영위하다가도

날 방해하는 것이 사실은 널 끊어내지 못하는 나라는 걸 이리도 절절이 알게 해줘서

계속 너에 대해 써야만 이 실체를 대면할 걸 알기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알고 보면, 내 입에서, 손에서 나오는 모든 노래는

다 너에 대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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