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에 잡아 먹힐 뻔한 엄마를 구해준 그것
삐비 비빅- 삐비 비빅-
오후 5시 30분, 시끄럽게 알람이 울린다. 작은 아이의 유치원 하원을 알리는 알람이다.
오늘은 프로젝트 시작 단계라 생각할 시간이 많이 필요한 날이었다. 아침부터 진득하게 생각해도 모자랄 판인데 큰 아이 원격 수업을 돕느라 일의 진도가 영 더뎠다. 그러다 겨우 약간의 실마리가 잡히는 그 순간에 작은 아이의 하원 준비 알람이 울린 것이다. 좀 더 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강제 퇴근이다. 서둘러 나갈 채비를 하고 종종걸음으로 하원 장소에 도착했다.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메모 앱에 아이디어를 끄적거린다. 이놈의 오타는 왜 이리도 나는지, 단어를 지웠다 썼다를 수회 반복한다. 잠시 후 익숙한 노란색 버스가 모퉁이를 돌아서 내게로 다가와 멈춘다. 결국 몇 개의 단어밖에 쓰지 못한 채 휴대폰 위로 바쁘게 움직이던 내 손가락도 멈췄다. 천천히 버스 문이 열리고 노란색 활동복을 입은 귀염둥이가 내리며 활기찬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엄마~!!
응~ 우리 귀염둥이 잘 다녀왔어?
응!!
유치원에서 별일 없었고? 오늘은 뭐하고 놀았어?
응, 블록으로 우주선 만들고 놀았어
우와 우주선? 엄청 멋있었겠다!
응 진짜 크게 만들어서 친구랑 같이 타고 놀았지~ 그리고 또 뭘 만들었냐면…
신나게 이야기하던 아이가 말을 멈추며 참새방앗간 앞에 서서 잡고 있던 내 손을 자기 쪽으로 당긴다. 내가 멈춰 아이를 바라보자 배시시 웃으며 말한다.
엄마, 나 목마른데 망고 요거트 사주면 안 돼? 저기 앉아서 시원하게 먹고 가고 싶은데~
에이, 안돼. 집에 가서 밥 먹어야지~ (엄마 빨리 가서 너희 밥 차려 주고 일해야 해ㅠ) 그리고 코로나 때문에 앉아서 먹는 건 불안해. (빨리 집에 가야 해)
힝.. 그래도 먹고 싶은데…
흠… (사주지 않으면 집에 빨리 가기 어렵겠군) 그럼 사서 집에 가서 형이랑 나눠 먹자. 어때?
응! 좋아.
아이와 대화 중에도 내 머릿속은 온통 일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이의 요구를 적당히 내치다 들어준 이유도 서둘러 집에 가서 하던 일을 마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래야만 하는 일정이었다. 아무리 일상과 일이 뒤섞인 카오스 같은 재택근무라도 주말에 일하는 불상사는 맞닥뜨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아이와 함께 걷고 있는데 아이가 맞잡은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엄마! 내가 엄마한테 줄 선물이 있어
그래? 뭔데??
비밀이야 ㅋㅋㅋ 집에 가서 보여줄게!
그래? 뭔지 되게 궁금하네~
이때까지도 나는 반사적인 대답을 하며 일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못한 채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도착한 아이는 부리나케 손을 씻고 망고 요거트를 한 모금 마시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나도 손을 씻고 노트북 앞에 앉아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들을 박아두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유치원 가방을 뒤적거리며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흐음.. 어디 갔지? 내가 분명히 여기 넣었는데… 하나가 없네 어디 갔지…
나는 그런 아이를 곁눈으로 보며 말했다.
지금 못 찾겠으면 나중에 다시 찾아봐~
아이는 안된다며 엄마에게 꼭 오늘 줘야 한다며 계속 가방 안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이내 찾았다를 외치더니 내 옆으로 다가와 찾은 물건을 내 앞에 쓱 내밀었다.
짜잔~~!!
응?? 어머~ 이게 뭐야~?? 반지인가?
응! 내가 엄마 주려고 금반지 만들어왔어! 엄마가 좋아할 것 같아서.
이야~ 진짜 딱 맞네~ 정말 맘에 든다♥ 고마워~~
히히 엄마 좋아? 내가 금색 큰 거랑 금색 줄 딱 집어서 엄마 주려고 반지 만들어 온 거야!
응 그래 정말 좋다 :-)
그제야 일 생각에서 벗어났다. 퇴근과 출근의 경계가 모호하고 쉬어도 틈만 나면 못다 한 일에 대한 걱정에 좀처럼 쉬지 못하는 날이 지속되고 있었는데 그래서 더 지치고 힘들었는데… 아이를 통해 이렇게 위로를 받고 쉼을 얻는다. 그래~ 디자인이란 게 기획이란 게 안될 때 잡고 있어 봐야 더 수렁으로만 가는 거지. 오늘은 좀 쉬자. 짧게라도 진짜로 쉬자. 그래야 더 좋은 생각이 떠오를 틈이 생길테니까.
귀염둥이야~ 사랑둥이야~
엄마에게 쉼을 줘서 고마워~
사랑해♥
(상단)이미지 출처 : Photo by. Janko Ferlič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