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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성 Jul 21. 2020

천재성

오늘의다짐

어느 날 나에게 언어를 조율하는 천재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가 그런 능력만으로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천재성이 있으니 더 잘 쓸 수 있는 거 아냐? 무슨 오만인가! 하지만 난 천재성을 가지고 있다. ‘있었다’라고 적어야 하나? 별로 오만하지 않다. 내 천재성은, 내 안의 것을 완전히 믿고, 믿는 만큼 의심하고, 그만큼 다시 믿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사람의 사고 안에서 내 것을 찾으려고 애쓰지 않았다. 첫 시집을 준비할 당시 그랬다는 거다. 그리고 그때는 그래도 괜찮았다. 내 안에 뭐가 많았거든. 

뭐가 많았을까? 시를 쓰고 싶다는 욕망, 시로 쓰지 못한 풍경과 감정, 인상 깊게 본 작품, 엄마와 나눈 이야기, 친구들 사이에서 느낀 외딴 마음 같은 것들? 더 있었다. 좋은 시를 쓰고 싶다는 의지. 이런 것들이 내 안에서 무엇인가 쌓아갔을 거고, 나는 꺼내기만 하면 되었다. 모든 답은 내 안에 있다고 믿었다. 하물며 고민도 질문도 내 것인데 답을 다른 사람의 것에서 찾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게 없다. 웃긴 이야기지만, 난 이제 천재가 아닌 것 같다. 확실히 ‘아니다’라고 적기는 싫다. 이제 별로 번뜩이지 않는다. 좋은 언어도 떠오르지 않는다. 내 안에 훌륭한 무엇이 있다는 믿음도 사라졌다. 내가 별로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왜지? 

생각해봤다. 정말 많이 생각해봤다. 애당초 천재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어떻게 천재적인 작품을 썼지? (내 생각에 그렇다는 거니까, 뭐라고 하지 마요!) 그렇다면 천재가 아니었던 것은 아니다. ‘천재였다’라고 확실히 적기 어려운 건… 이것도 뭐라고 하지 마! 그렇다면 그때 내 안에 있었던 것들이 지금은 사라졌나? 그래서 아름다운 언어들이 마구 솟아나지 않는 건가? 이우성의 위대한 두 번째 시집은 결국 그 무엇인가가 사라졌기 때문에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있는 건가? 도대체 뭐가 사라진 걸까? 이것도 정말 많이 생각했다. 그랬더니… 간절함. 간절함이 사라졌다. 아, 어쩜, 이 따위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물며 진부하기까지!) 시인에게 자격증 같은 게 주어지는 거라면 박탈해버려야 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라고 해야 하나. 나 솔직히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 

나 별로 간절하지 않은가 봐. 그러면서 미련이나 아쉬움은 남아서 다른 시인들이 새 시집을 낼 때마다 부러워나 하고, 나도 열심히만 하면 언제든 시집을 낼 수 있다고 나 스스로 거짓 위안을 한다. 뭐, 그런 거지.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저 정도 시는 쓸 수 있다고! 아니야, 우성아. 네가 바로 알아야 해. 이제 너 쓸 수 없어. 천재성이 사라졌거든. 누가 가져간 게 아니라, 너 스스로 잃어버렸어. 


- 그렇군. 그랬어. 근데 그거 어디 가면 찾을 수 있어? 절실함. 

- 그러게. 나도 그걸 몰라서 괴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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