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밤의 시작

1장. 당신의 '토요일 밤'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by 미나리즘



"눈~만 감음!"



매일 밤 잠자기 전 딸아이가 의식처럼 외는 말, "눈~만 감음". '눈'에서 길게 늘이고, '감! 음!'은 스타카토다. 리듬감 있게 내뱉는 이 말은 마법의 주문처럼 아이를 스르륵 잠으로 이끈다.


다섯 살 때였던가? 아이는 "이이-"가 나오는 꿈을 자주 꿨다. 이이가 뭐냐 물으면 '원숭이처럼 생겼는데 무서운 것'이라 답했다. 그 '이이'에게 자는 게 아니라 단지 눈만 살짝 감고 있는 거라고, 제발 꿈에 들어올 생각 말라고 알려주기 위해 만든 말이 바로 "눈만 감음"이다. 나름 악몽에 대한 아이의 방어였고, 자신을 보호하는 주문이었다.


그로부터 또 다섯 해가 흘렀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아이는 자기 전 여전히 "눈만 감음"을 외친다. 이제 '이이' 꿈은 거의 꾸지 않지만 그건 하나의 의식이자 습관이 됐고, 어느 순간부터 아이와 나의 잠자리 신호가 되었다. 아이가 "눈만 감음"을 외치고, 뒤따라 "나도 눈만 감음"이라 대답하면 그제야 이불속이 조용해졌다. 나는 그 순간이 좋았다. 입술을 동그랗게 말아 조용히 내뱉는 그 숨결이 아이의 하루를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무사히 잘 지낸 오늘 하루'에게 건네는 다정한 굿나잇 포옹이었다.





그런 아이가 혼자 잠을 자기 시작했다. 초등 4학년, 요즘 기준으로는 분리 수면이 늦은 편이라 할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지금이 적당했다. 주변에서 분리 수면을 일찍 할수록 아이는 독립성이 생기고, 부모는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나는 내 마음속의 타이밍을 따르기로 했다. 누군가가 정한 기준 말고 우리가 준비되었을 때를 기다렸다.


그동안은 딱히 아이 방이 필요치 않았다. 하지만 아이가 커가면서 자연스레 혼자 집중할 시간과 공간이 필요했고, 2층에 '있던' 방을 본격적으로 꾸며보기로 했다. (사실 아이 스스로 '자기 방'의 필요성을 느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방을 정리하고 가구를 들여놓으며, 잠자리도 자연스레 옮겨지게 된 것이다.


솔직히 나는 아이가 이 도전을 금방 포기할 줄 알았다. 자기 전 화장실에 가는 것도, 부엌에 물을 마시러 나가는 것도 무섭다던 아이였기에 슬그머니 "엄마" 하고 부르거나, 몰래 이불을 들추고 내 품으로 기어들 줄 알았다. 조심조심 발끝으로 다가와 내 겨드랑이에 얼굴을 묻고, 양 팔로 내 배를 두르는 그 장면을 은근히 기대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웬일인지 아이는 단 한 번도 돌아오지 않았다. 방문 여는 소리도, 살금살금 발소리도, 엄마를 찾는 속삭임도 없었다.


혼자 자기 시작한 첫날 밤, 아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방에서 홀로 잠들었다. 사람들은 이런 걸 '성공'이라 부른다. 수면 분리에 성공했으니 이제 좀 더 편해질 거라며 등을 토닥인다. 나도 그런 줄 알았다. 이제는 오롯이 내 시간, 나의 밤을 맞이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그런데 막상 아이 없이 맞닥뜨린 첫 밤은 내 예상과 달랐다. 익숙하던 숨결이 사라진 이불속은 생각 보다 더 조용했고, 그 조용함은 공허함이 되어 밤새 이불 끝에 매달렸다. 시곗바늘은 무심히 흘러가는데, 나는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어렸을 적 나는 좁은 집에 살았다. 6학년 때까지 부모님, 그리고 남동생까지 네 식구가 함께 잤다.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좀 더 넓은 아파트로 이사하고 나서야 내 방이 생겼고, 가족은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다. 우리 딸도 6학년, 아니 적어도 내년까지는 품에 끼고 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보통의 기준에선 늦었을지 몰라도, 내 예상보다 빠른 잠자리 독립이었다.


분리 수면, 단번에 성공했다. 아이는 혼자서도 씩씩했지만 나는 그러하지 못했다. 사랑이 줄어든 것도 아니고, 아이가 멀리 떠난 것도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그 밤이 서운했다. 마음 한구석이 헛헛했다. 무슨 감정인지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서운함과 허전함, 아쉬움과 공허함이 뒤섞여 묘한 감정의 잔향을 남겼다. 아이 보다 내 마음의 준비가 덜 된 밤이었다.


이제 매일 밤, 나만의 토요일이 생긴다. 아직은 그 시간이 조금 어색하고 낯설지만, 부모라면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변화라며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아이는 혼자 잠드는 법을 배워가고, 나는 그 자리에 남아 함께했던 밤들을 조용히 되새기며 빈자리를 메운다. 오늘 밤도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제법 잘 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