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드로잉으로 삶이 변했다

6장. 분명 행복한데, 어쩐지 사는 재미가 없다면

by 미나리즘
분명 행복한데, 어쩐지 삶의 재미가 없다



언젠가부터 호기심이 사라졌다. 예전엔 뭐든 궁금했고, 한 번쯤은 직접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마흔을 넘기고 나니, 새로운 걸 시작하는 일이 괜스레 귀찮아졌고, 세상이 점점 심드렁하게 느껴졌다. 분명 지금도 행복한데, 어쩐지 재미가 덜한 나날들.


'사는 게 이렇게만 흘러가도 괜찮은 걸까?' 혹자는 "행복에 겨워 그런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삶이 안정될수록 내 안의 생기는 조금씩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올해는 다짐했다. "다시, 사는 재미를 찾아보자."


평소라면 스쳐 지났을 전단이 눈에 들어왔다. '어반드로잉 수업,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12시.' 잠시 망설이다가, 올해의 목표를 떠올리며 등록 버튼을 눌렀다. 그 날 이후, 매주 목요일 두 시간. 아무리 바빠도 이 수업만큼은 절대 빠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고, 그 다짐은 석 달째 이어지고 있다.


어반드로잉. 간단히 말하면, 일상 풍경을 펜, 물감, 색연필 등으로 그려내는 작업이다.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그림의 소재가 된다. 우리 동네 골목 어귀, 카페 창밖, 오래된 간판 하나, 마트 앞에 세워진 자전거 한 대까지. 그림은 이 모든 것을 바라보는 내 시선에서 시작된다. 세상은 똑같은데, 나의 시선이 달라졌다.





수업에는 총 네 명의 학생이 있다. 나 보다 연세가 조금 더 있는 분들이 두 명이고, 한 분은 나 보다 서너 살 어린 남자다. 선생님도 연세가 지긋하시지만, 말씀 한 마디 한 마디에서 나 보다 더 소녀같음이 묻어난다.


"급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선이 조금 삐뚤어져도 괜찮아요. 그것도 멋이에요."


그 말들이 좋았다. 그림뿐 아니라 삶에까지 스며드는 말이었다.

특별히 튀는 사람도, 모난 사람도 없는 모임. 누구 하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모두가 서로의 그림을 바라보며 한 마디씩 따뜻함을 건넨다. 꼭 잘 그리지 않아도 괜찮은데, 그리고 나면 꽤 잘 그려 보이는 게 어반드로잉의 매력이다.


"저는 이 빈 공간이 참 좋네요."
"이렇게 표현하니까 새롭게 보여요!"
"색감이 정말 따뜻하네요."





얼마 전, 또래들과의 모임에 나갔을 때다. 그곳에서, 요즘은 사라진 '빠른 생일'을 기준으로 윗사람을 정해야 한다는 말이 오갔고, 말끝마다 반말을 해도 된다느니, 존댓말을 써야 한다느니 하는 언쟁이 붙었다. 나는 그 대화를 들으며, 마음 한 구석이 씁쓸했다. 마흔이 넘은 지금, 고작 몇 살(몇 살도 아니었다. 한 살!) 차이로 서열을 나누는 것이 과연 의미 있는 일일까. 숫자 보다 더 중요한 건 마음의 자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보다 훨씬 연배가 높은 분들과 함께하는 어반드로잉 수업에선 대화가 더 자연스럽고, 훨씬 많이 웃는다. 우리는 서로를 '나이나 지위'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삶'을 존중하며 함께한다. 누가 더 많이 가졌는지, 누가 더 대단한 일을 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오늘의 내가 되기 위해 어떻게 살았는지, 이 계절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지가 더 깊은 대화의 재료가 된다.


처음엔 그냥 그림 수업이었는데, 멤버들은 어느 새 서로의 집을 오가며 담소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지난 주엔 우리집에 초대해 따뜻한 저녁을 대접했고, 이번 주엔 청평자연휴양림 근처에 살고 계시는 분 댁에서 브런치를 함께 했다. 그림이 없었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 우리는 그림, '어반드로잉'이라는 매개를 통해 삶을 공유하고 있다. 함께 노트를 펼치고, 조용히 계절을 바라보며 "이 순간, 참 좋다"는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 그들과 나눈 말 한 마디, 그려낸 선 하나가 요즘 내 삶을 풍요롭게 한다.


양평으로 이사 와서 이런 기회를 갖게 되어 참 다행이다. 빠르게 흐르는 도시의 시간에서 벗어나 느리게, 하지만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삶이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토요일이 있다. 나에겐 어반드로잉이 있는 목요일 오전 두 시간이 그렇다. 한 장의 그림으로 펼쳐지는, 아름답고도 느긋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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