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명이 뭐예요?

좌우명에 좌우되지 말자

by 김콩순

별일 없으면 아메리카노.

늦은 오후라면 카페인이 없는 페퍼민트차.

유명한 메뉴가 있는 카페라면 시그니처.


세상 모든 게 다 좋아 보이는 나는 카페 메뉴를 고를 때도 한참을 서서 고민하기 때문에 이렇게 암묵적인 순서도를 정해두게 되었다. 좌우명이란 이렇게 메뉴판 앞에서처럼 중요한 결정을 해야만 하는 순간에 힌트가 되어주는 문장이 아닐까?


중학교 3학년 때 선생님께서 좌우명을 조사한다고 종이를 돌리셨다. 교실 맨 뒤에 있는 게시판에 걸어주신다는 것이다. 친한 친구는 'Time is gold'라고 적는다고 했다. 역시 시간을 금처럼 쓰는 녀석답게 금방 결정해버린 것이다. 나도 저렇게 폼나면서도(중요하다) 너무 고민한 티가 나지 않는(더 중요하다) 그런 멋진 좌우명을 적어 내고 싶어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 급기야 '좌우명에 좌우되지 말자'까지 떠올려버렸던 것이다. 다행히 그런 걸 적어내진 않은 것 같지만 결국 무엇을 적어 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좌우명에 좌우되지 않는 삶을 살아가던 나는 대학 입학 이후 처음으로 좌우명을 고민하는 시기를 맞게 되었다. 대학 졸업반이 되어버린 나와 내 동기들은 입학 또는 입사 면접을 위해 좌우명을 고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할 때 길잡이가 되어줄 만한 멋진 문장이 없었다. 남들의 좌우명은 다 멋져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내 인생관과는 달라 보였다. 김연아 선수의 좌우명 'No pain, No gain'을 떠올리고 생각했다. '역시 멋있다. 아니 근데 No gain, No pain 아닌가?'


애초에 인생 대소사를 한 문장에 기대어 결정할 수가 있단 말인가? 진짜 좌우명에 좌우되지 말자로 해야 되나? 그나마 와닿는 문장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였다.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자만하지 않게 해 줄 것 같았고, 나쁜 일이 있을 땐 좌절하지 않게 해 줄 것 같았다. 그래, 나는 이렇게 상황에 따라 내 입맛대로 해석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형 명언을 원했다고...


나는 재미있고 의미 있게 살고 싶다. 성취와 사랑 둘 다 중요하다. 매일의 루틴도 중요하지만 가끔씩의 이벤트도 중요한 사람이란 말이다. 고민 끝에 내 마음에 쏙 드는 좌우명을 찾았다.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


호기롭게 시작해놓고선 초심을 잃고 해이해진 나를 잡아줄 것 같았다. 그리고 가끔은 '정 안되면 내일 뛰면 되지' 하며 용기를 줄 것 같았다. 시험기간에 매일 도서관에 가서 계획된 공부를 예정대로 끝내는 것이 너무 뿌듯하면서도 가끔 시험 전날에 친구들이 부르면 당장 가방 챙겨서 술 마시러 나갈 때 가장 즐거웠던 나에게 잘 맞는 문장이다. 심지어 다음 날 아침 일찍 도서관에 가서 전 날의 공백을 만회하기까지 한다면? 성취와 사랑의 황금 밸런스 속에서 너무나도 행복해지는 나...


누군가 내 좌우명을 들으면 자기 관리 엄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 속으론 정 안되면 내일 뛰지 뭐, 하는줄도 모르고. 그래도 내 좌우명의 포인트는 내일모레는 없다는 것이다. 오늘의 행복한 일탈을 다음날 오전 정도까지는 잘 만회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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