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31일에 쓴 글

스물한 살의 열두 달

by 김콩순

1

칼바람을 그다지 싫어하지 않는 나로서는 나쁘지 않은 계절이다. 그러나 어딘가에 색감을 빼앗긴 듯한 분위기는 불유쾌하다. 목포에 다녀오기도 하고 신년 음악회도 가고 의식적으로나마 연시 같은 날들이다. 비슷한 의미겠지만 연초보다는 연시가 어감이 낫다.


2

답답함이 산재했던 이 달은 다른 열한 달보다 조금이라도 짧아준 것조차 고마웠다. 기대와 몰이해로부터 기인한 압박이 컸다. 벗어나고 싶었다.


3

학기가 시작하며 조금 더 활기찬 날들을 보냈던 듯하다. 전공을 변경하며 학업에 있어 내가 기존에 가지던 관점과 조금 다른 과목들을 접했다. 나는 항상 새로움으로부터 강한 인력을 느꼈었고 다시 한번 그런 나를 마주했다. 신기하고 즐거웠다. 한편으로 좋고 나쁨보다 옳고 그름을 끊임없이 고민할 수밖에 없었던 시기. 이상한 욕심들 때문에 본의 아니게 낭비한 시간들. 내 하루는 자꾸만 더 일찍 시작하고 늦게 끝난다. 이럴 때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들 했을까 궁금해서 슬며시 붙잡고 묻고 싶었다. 어렵지 않나요?


4

여름 가을 겨울이 봄을 더 빛나게 한다. 벚꽃은 매년 똑같은 모습이어도 사람들은 예년과 비슷한 태도로 개화(開花)를 기념한다. 개화라 하면 떠오르는 동음이의어들이 묘하게 느껴지는 봄이었다. 나에게 잠시 실망할 뻔도 했으나 적어도 나쁘지 않으려 애썼던 순간들이 자랑스럽다. 기승전결의 전형적인 구조에도 불구하고 소설 애호가들이 여전한 것은 등장인물들이 입체적이기 때문이다. 입체적 인물들은 독자들을 고민하고 오해하게 한다. 비난하게 하고 그와 동시에 옹호하게 한다. 두 가지 스탠스가 교차하며 독자 본인을 돌아보게 한다. 나라면 어떨까?


5

내가 틀렸다. 계절은 초여름과 초여름이 아닌 것으로 나뉜다. 사람마다 사랑하는 계절이 있을 것임을 잘 알지만 그중에서도 초여름은 최고로 삼을 것이 분명하다고 과격하게 주장하고 싶어진다. 누군가는 계절에 호불호가 없을 수도 있다 는 것을 이제는 알지만 아무튼 사람들이 꾸준히 예찬하는 자연은 초록색이다. 그러던 중 작고 따뜻하던 그들의 존재는 선물같이 느껴졌다. 그러나 선물이 아니라 교훈이었다. 교훈을 얻은 나는 손을 내밀고 싶을 때마다 책임질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졌고 그때마다 무거운 마음으로 손을 거두게 되었다. 좋음과 옳음 사이에서 망설이다 매번 비슷한 선택을 하는 내가 우스워진다.


6

한 학기를 마치며 찾아온 여유 덕분에 주변인들에게 더 관대해진다. 나에게도 관대해졌다. 지루한 것은 못 참는 줄 알았던 내가 언젠가부터 음악을 반복 재생한다. 이제 눈을 감고 어떤 음악을 들으면 한창 그 음악을 듣던 시기가 펼쳐져서 기분이 묘하다. 매월 내 음악차트를 정리해 주는 멜론의 친절함 덕분에 나는 타임머신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내 음악 취향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7

다향이 좋았던 여름. 덕분에 서투른 자신을 마주해도 웃어넘길 수 있었다. 겨울이 아니어도 한숨을 가시화할 수 있다는 것은 인류에게 혁명적이었지만 불운임을 안다. 무능한 개인일수록 더 큰 압박에 시달리곤 한다. 문장의 첫자를 무가 아니라 유로 바꿔도 그럴듯하다.


8

한여름에는 눈에 띄게 낮아지는 운고 덕분에 한창 하늘만 쳐다보며 다녔다. 내 태명이기도 했던 하늘이 더욱 좋았다. 이 낙천적인 성격은 이래서 편하다. 햇빛만 받아도 하늘을 나는 기분이다. 이런 날씨에 자전거를 타고 한 바퀴 돌면 더할 나위가 없다.


9

슬슬 시원해지는 밤공기가 심상치가 않다. 마주한 경관은 기껏 늘어놓았던 다른 계절에 대한 예찬을 잠깐 시치미 떼고 싶을 정도이다. 새로운 학기의 시작이 피곤해 죽겠다며 투덜 대지만 사실은 내심 들뜬다. 봄과 여름을 보내고야 문득 떠오른다. 초가을이 아름다운 이유는 가을이 아니라 초(初)에서 찾아야 했다. 새로 시작하는 모든 것은 새로워서 너무나도 아름답다. 둘러보면 반팔 티셔츠를 입은 사람부터 두꺼운 겉옷을 입은 사람까지 같은 가을 속에 있다. 그들은 같은 온도에서 다른 느낌을 받는 것이다.


10

내가 닮고 싶은 사람들은 여전히 내 곁에 있음을 느낀다. 확실히 단풍이 짙어진다. 사람을 참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이번 가을에는 혼자 있을 때 유독 편했다. 침묵은 금이기 때문일까? 나에게 금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지만 절반 정도는 맞는 말인 것 같다.


11

한 명의 어린아이가 온전히 자라기까지는 수많은 이웃의 배려와 관용이 필요하다. 도대체 무엇을 책임질 수 있는가 하는 질문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나 역시도 깊고 얕게 도움을 준 어른들 덕분에 미숙하게나마 그 이웃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에는 내가 지각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너무나도 많지만 그 속에서 늘 되새기는 어른과 아이의 선순환.


12

봄에 하던 묘한 고민들이 다시 반복되는 양상은 경계하는 것이 마땅했다. 예방주사를 맞았다고 그 무서운 독감을 보내는 내가 기특해지려고 한다. 반짝이는 연말의 분위기가 참 좋다. 사람들이 수고했다며 서로의 노고를 알아주는 것도 다가올 새해는 잘해보자며 격려하는 것도 분에 넘치게 따뜻하다. 이번 학기 어떤 수업을 들으며 종종 했던 생각. 역사는 과연 진보하는가? 개인이 모여 크고 작은 사회가 되고 그들의 집단적 움직임에 대한 기록은 역사학의 기초가 된다. 그렇다면 개인은 진보하는가? 어려운 질문에 대한 답변을 긍정적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너무나 다양한 방식으로 가르침을 준 수많은 개인들에게 깊이 고마운 밤이다.




2019년 12월 31일에 적었던 글

스물한 살이 끝나던 날 쓴 글을 일절 수정하지 않은 채 스물다섯 살의 내가 옮긴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일도 있고 당최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일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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