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께,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2019년 봄학기에 지스트에서 <행복의 조건>을 수강했던 김민아입니다. (그게 무려 4년 전이라니요!)
당시에 저는 <행복하게 사랑하기 행동강령>이라는 제목의 기말 리포트를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공대생의 행복>이나 <행복해지는 법> 등등의 주제와 견주며 고민하고 있던 중 교수님께서 이 주제를 강력 추천해 주셨어요. "민아 씨는 사랑을 주고받는 법을 잘 아는 분 같아 보여요. 그러니 다른 주제보다는 학우들에게 행복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방향으로 가면 어때요?"라는 따뜻한 말씀과 함께요.
실제로 저는 연애/결혼에 대한 학우들의 의견을 인터뷰하고 일부와는 심층 면담을 진행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해 초여름 저는 혼자 걷거나 자전거를 타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고독한 시간들도 줄곧 보냈는데요. 학우들의 귀한 의견을 듣고 한 편의 글로 정리하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쌓아온 신념들이 건강하고 현명한 선택을 하려는 노력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당시에도 많이 서툴렀지만 좋은 연애를 하고자 노력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결혼'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되면 나름 조리 있게 저의 입장을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대화 상대를 납득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럴 수 있지..."라는 말로 저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습니다. 저의 의견이 충분히 설득력 있지는 않지만, 그간의 우정 등을 고려하여 충분히 존중은 한다는 뜻임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자존심이 상하는 나날들이었습니다.... 이제 와서 조금 해명을 하자면 당시 그들의 "결혼할 거야?"라는 질문의 의도는 "많이 사랑하고 있니?"였던 반면, 저는 "결혼 제도에 찬성하는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학창 시절을 거쳐서 직장을 갖고 안정되고 나면 좋은 짝을 만나서 결혼을 하고 아기를 키우는 이런 삶을 사는데 이런 일생에 대한 적절한 근거는 무엇인지를 치열하게 고민했습니다. 평소에 치열하게 고민한다는 미사여구가 진짜 오글거린다고 생각해 왔는데요, 저는 정말로 치열하게 고민했습니다.
남녀가 쌍쌍이 짝을 이뤄서 때가 되면 각자의 가정을 이루는 것만이 정말 정답인지를 검토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말을 꺼내게 되면 지금 사귀는 애인이 결혼할 만큼 좋은 것은 아니라는 오해는 물론 '결혼할 인연들은 한 번에 알아본대~ 너도 언젠가는..' 등의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결혼까지 생각했어'라는 노래가 있을 만큼, 사람들은 '결혼하자'를 사랑한다 내지는 너를 진지한(?) 관계로 생각하고 있다와 동치로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교수님께도 "결혼을 하면 좋은가요?" 같은 다듬어지지 않은 질문을 드렸던 것 같습니다. 제 질문은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여러 어려움이 있을 수 있어도 충분히 '리워드'하다고 하셨던 교수님의 답변만큼은 기억에 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아름답고 성스러운 것으로 묘사하곤 합니다. 그러나 가부장제의 존립에 있어 가장 큰 공을 세운 제도가 바로 결혼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 (솔직히 제가 본 모든 청첩장이 그랬지만 그래도 논란을 피하기 위해 보수적인 단어를 선택하겠습니다)의 청첩장은 신랑 이름이 먼저 쓰입니다. 혼인신고서에도요. 물론 세상엔 상하좌우가 있으니 누군가의 이름은 앞에 쓰여야겠지만, 어떤 예외도 없이 그러하다는 것이 이상했습니다. 세상의 서류들은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기 위해 주로 가나다 순으로 이름을 나열하곤 합니다. 심지어는 역사 속에는 주모자를 숨기기 위해 둥글게 이름을 적은 사발통문도 있지 않습니까.
전통적인 남편상과 아내상에 대한 이야기는 생각만 해도 마음이 답답하니 생략하겠습니다. 게다가 다이아 반지를 주며 프러포즈를 하고 비슷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심지어 요즘엔 프러포즈로 명품백이 필수라서 예비 신랑들이 연차를 쓰고 샤넬 매장에서 새벽부터 줄을 선답니다. 결혼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기이한 점들만 눈에 들어왔습니다.
결혼제도에 이토록 허점이 많다는 것을 알아차리자 이 제도 안으로 편입하여 사랑하는 남자와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를 예약하고 1년 전부터 식장을 예약하고 청모(청첩장모임) 약속을 잡아 청첩장을 돌리고 축의금을 주고받는 이런 문화에 합류할 상상을 하니 왠지 우습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런 생각을 크게 말할 순 없었습니다. 세상엔 부부들이 참 많으니까요.
게다가 자식을 생산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는 동성 커플들은 포함하지 못하고 일부의 이성 커플만을 가족으로 '인정'하는 국가의 태도도 짜증이 났습니다. 가정을 꾸리려면 사랑하는 남녀가 만나서 아이를 낳아야만 하는 걸까요?
제가 만약 결혼을 한다면, 상대는 여러 가지 견해(당연히 결혼제도에 대한 것 포함)가 저와 같았으면 좋겠는데 그런 우리라면 결혼을 할 리가 없었습니다. 저에게 결혼은 모순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결혼에 대한 생각을 묻는 주변 이들에게 이렇다 할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 반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너는 왜 결혼이 하고 싶니?" 같이 살고 싶어서, 큰 수술 등의 상황에서 서로가 법적인 보호자가 되어 줄 수 있어서, 아이를 낳고 싶어서,... 등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역시 출산이라는 키워드를 빼고 논할 수가 없겠습니다. 출산할 생각이 없다는 저의 말엔 대부분이 이유를 묻지 않았습니다. 출산과 육아가 공공연한 리스크라니 슬프기는 하지만 어쨌든 설득할 필요가 없어서 편하긴 했습니다. 현실적으로 자식을 가지기 위해선 법적으로 부부가 되어 그 아이의 보호자가 되어야 하니 결혼을 하겠지만 만약 아니라면, 결혼해서 좋은 점들은 대부분 결혼하지 않아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 저의 대답이었습니다(예를 들어 서로의 온전한 편이 되어주기, 함께 살기 등등은 결혼하지 않아도 할 수 있지요.) 물론 서로의 법적인 보호자가 되어주지 못한다는 것이 허점이었습니다.
프랑스의 팍스(PACs) 제도는 결혼이라는 법적 제도가 아니더라도 자유롭게 동거하고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한다고 합니다. 덴마크의 파트너십 등록제는 (성별과 관계없이) 성인 2명이 서로를 파트너로 등록하면 재산상속이나 사회보장 등 기존 결혼 관계처럼 동등하게 권리를 보장합니다. 한국에서 아직 통과되지는 않았지만 국회에서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한 바 있습니다.
결국에는 같은 선택지를 고르더라도,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는 상황에서 고민 없이 그것을 고르는 것과 더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선택지 안에서 자유롭게 고르는 것은 다릅니다. 적어도 저에게 그렇습니다.
훗날 더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존중하는 세상이 된다면 결혼제도에 의문을 품던 저도 누군가에게 독점적인 사람이 되어 살아갈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게 서로의 보호자가 되어, 삶이라는 초행길을 함께 걸어갈 수도 있겠습니다. 하루빨리 어떤 형태의 가족이라도 국가와 법이 그들을 포용할 수 있도록 생활동반자법이 통과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