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사탕 제조법_20240913
나는 루틴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MBTI로 치면 확신의 대문자 J. 계획하는 일을 좋아한다. 다만, 계획한 것을 모두 실행해야 하는 사람은 아니고 계획하는 자체를 좋아한다. 무언가를 계획하며 생각을 정리하고, 최적의 시간이나 상황, 동선을 맞춰 보는 일이 즐겁다. 효율성과도 연결되고, 욕심이 많은 편이기도 해서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이 많은 만큼 그 일들을 잘 해내기 위해서는 계획이 필요하다. 그래서 반복되는 일들은 루틴으로 만들어 두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일상이 매일 똑같이 흘러가지 않고 변수가 많기에 루틴을 지키지 못하는 날이 더 많을 때도 있다. 그래도 루틴이 있으면 흐트러진 뒤에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 그 이유만으로도 계획하고 루틴을 만들어 두는 것이 좋다.
[알사탕 제조법]에 나오는 샛별 문구사 할아버지도 알사탕을 만들기 위한 자기만의 의식, 즉 루틴이 있다. 밤이 오기를 기다리고, 요가로 몸을 풀고, 냄비에 별을 담아두고 기다리면 다음 날 아침, 알사탕이 완성된다.
그렇다면 무언가를 할 때 나의 루틴은 어떨까?
가장 집중이 잘 되는 시간은 새벽이다. 5-6시 사이, 겨울이면 7시까지 새벽은 어둡다. 어둡지만 잘 자고 일어나면 하루 중 컨디션이 가장 좋고, 몸도 마음도 충분히 쉬어 머리가 맑아지고 집중력이 가장 좋은 시간이다. 낮에는 대부분 연락을 주고받으며 관계 속에서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새벽에는 그런 연락을 하지 않으니 자연스레 휴대폰과 멀어진다. 하루 일정을 시작하기 전이라 계획하기에도 좋다. 무엇보다 어두운 창 밖을 두고 거실 보조 등 켜두면, 무대 위 핀 조명이 나에게만 쏟아지는 것처럼 그 시간에 하는 일들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보통 이 새벽에 하는 일은 ‘계획’. 짧게는 오늘 하루, 일주일, 혹은 월말이 다가오면 다음 달, 연말이면 다음 해의 계획을 궁리한다. 계획하는 시간을 넉넉히 가지면 든든하다. 모든 계획이 그대로 이루어질 리는 없겠지만, 출발 전 방향을 잡고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고 나아가는 것이 막연히 움직이는 것보다 훨씬 편안하다. 무엇보다 계획을 세우는 동안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디에 더 비중을 두고 싶은지, 포기해야 할 것과 그럼에도 남기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등, 나에 대해 끊임없이 알아가고 발견하게 된다.
이런 새벽 루틴에 늘 함께하는 것은 따뜻한 물 한 컵과 조용한 적막이다. 앉아서 따뜻한 물을 마시는 것이 여유라는 사실을 예전에는 잘 몰랐다. 바쁘게 하루를 보내다 보면 물 2리터 마시는 일조차 쉽지 않다. 그런데 물 한 잔 옆에 두고 차분히 계획을 세우는 그 시간은 내가 잠시 여유를 누리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적막. 낮에는 내가 아무 소리를 내지 않아도 어딘가에서는 늘 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없으면 TV나 음악, 영어 뉴스라도 켜 놓는다. 하지만 새벽은 온전히 조용하다. 가족들도 아직 잠든 시간이라 내가 일부러 소리를 내지 않기도 하지만, 이 적막을 깨지 않고 즐기는 것이 좋다. 플래너에 연필이나 펜이 스치는 소리,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이따금 들리는 것이 좋다. 가끔 책이라도 읽으면 책장 넘기는 소리도 새벽이라는 시간과 공간에서는 유난히 잘 들린다. 그 조용함이 주는 즐거움이 있다.
그렇게 계획을 세워두고 가끔 지나간 페이지들을 들여다보면, 어느 날은 계획한 대로 잘 해낸 날도 있고 어느 날은 전혀 다르게 보낸 날도 있다. 계획대로 잘 해낸 날도 좋지만 계획과 다른 날을 보낸 것도 좋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있었겠지만 잘 보냈을 것이고, 아무것도 하은 날이었다면 아마 쉬어가는 시간이 필요한 날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계획을 세우고, 그날들을 살아내고, 지난 계획을 다시 돌아보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나는 매번 조금씩 새로운 나를 알아가고, 조금 더 나답게 하루를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간다. 이렇게 조금씩 조용히 쌓아가는 새벽의 시간들이 결국 내가 삶을 바라보는 방향을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나만의 속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어주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