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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엮는 치앙마이 라탄 거리

- 치앙마이 라탄 거리에서 마주한 손끝의 예술 -

by 마르코 루시

치앙마이 올드시티 북동쪽, 창모이 까오 로드(Chang Moi Kao Road)에서 창모이 로드(Chang Moi Road) 방향으로 걷다 보면, 갑자기 풍경이 달라진다. 도로 양옆에 걸린 전선들이 그물처럼 엮인 채 머리 위로 드리우고, 한쪽 벽면에는 조용히 문을 연 라탄(Rattan) 공방들이 길게 이어진다. 마치 누군가가 오랜 세월을 들여 한 올씩 짜놓은 직물처럼, 거리 전체가 일정한 리듬으로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다. 현지인들은 이 일대를 "라탄 거리"라 부르지는 않지만, 여행자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다.


라탄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제일 먼저 향이 다가온다. 햇빛에 말린 등나무 특유의 고소한 풀냄새다. 플라스틱이나 가죽에서는 절대 맡을 수 없는, 생생한 재료의 냄새다. 가게 구석에는 물에 담긴 라탄 줄기들이 있다. 조용히 불어나고 있는 줄기들 사이로,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는 장인의 손이 움직인다. 라탄은 한 시간 정도 물에 담가야 부드러워지고, 너무 일찍 쓰면 부러지고, 오래 담그면 흐물흐물해진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도 라틴 장인의 손은 멈추지 않는다. 엄지와 검지로 줄기의 탄력을 확인하고, 표면을 쓰다듬듯 살핀다. 이곳에선 손이 곧 시간이다.


여행객들은 종종 바구니나 조명을 살펴보다가, 결국엔 가방 앞에서 멈춘다. 이 거리의 라탄 가방은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다. 하나의 작은 우주다. 바닥부터 올라간 짜임은 정교하게 곡선을 만들고, 손잡이는 사람의 손안에 가장 편안히 감기도록 조율된다. 어떤 가방은 좁고 길며, 어떤 것은 넓고 둥글다. 그 형태는 기능에서 왔지만, 완성된 결과는 하나의 조형 예술이 된다.


실제 작업 장면을 보면 더욱 그렇다. 라탄은 환심(얇고 부드러운 중심부), 평심(넓은 평면 조각), 피등(껍질) 같이 용도에 따라 나뉘고, 보통 2~3mm 굵기의 가는 줄기를 많이 쓴다. 국수 가닥처럼 얇고 유연한 줄기를 손으로 비틀고, 감고, 교차시키며 시작된 작업은 몇 시간 후엔 하나의 구조를 이룬다. 완성된 가방은 햇빛 아래 말려지며 마지막 단단함을 얻게 된다. 말리는 과정에서 라탄이 수축할 때 나는 삐걱거리는 소리는 마치 오래된 나무 마루를 밟을 때처럼, 라탄이 제 몸을 기억하는 순간이다.


과일이 나무에서 매달려 있듯 주렁주렁 매달려 전시된 가방을 하나를 집어 들었다. 짙고 오묘한 녹색 사각 바디에 밤색 나무 손잡이가 달린 형태다. 예상보다 가볍지만 단단한 촉감이다. 손끝으로 문지르면 거칠지도 매끄럽지도 않다. 마치 시간이 지나 길들여진 가죽처럼 편안하다. 특별한 색과 디자인이 이이라고 설명하며, 조용히 뷰티풀을 연발하는 가게 주인의 말은 라탄처럼 부드럽고 담백했다. 한 세대가 다른 세대로 기술을 넘겨주는 이 거리의 전통은, 말보다 짜임으로 증명된다.


치앙마이가 라탄으로 유명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북부 산악지대와 라탄 자생지에 인접해 원재료 확보가 쉬웠고, 오랜 전통을 지닌 수공예 중심 도시로서 장인의 기술이 계승되어 왔다. 여기에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자들이 이 도시의 느림과 손끝의 미학에 매료되며, 라탄은 단순한 재료를 넘어 치앙마이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라탄 가방들은 거리에서도, 카페에서도, 숙소에서도 잘 어울린다. 그것들은 치앙마이라는 도시의 시간성과도 닮아 있다. 화려하지 않지만 단단하고, 빠르지 않지만 변하지 않는다. 어떤 가방은 곡선 속에 물의 흐름을 담았고, 어떤 건 손잡이 하나에 산의 능선을 닮았다. 디자인은 단순하지만, 반복된 손길 속에 감춰진 철학은 복잡하다.


오후가 되면, 이 거리는 여행객들로 가득 찬다. 가게 앞에는 갓 만들어진 가방들이 줄지어 걸려 있고, 가게 뒤편 그늘 아래 앉은 장인은 조용히 다음 작품을 준비한다. 손에는 젖은 라탄, 발치에는 반쯤 완성된 가방, 그리고 그의 앞엔 여전히 시간이 흐르고 있다. 이곳은 어느덧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골목 코너, 건너편 커피숍과 라탄 가게는 한쌍이 되어 이곳의 풍미를 더 한다.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라 '시간을 담은 물건' 하나를 들고 떠난다. 그리고 그 가방이 여행을 마친 후에도 곁에 머문다면, 그것은 단지 물건 이상의 무엇이 된다. 손끝으로 엮은 삶의 감각, 느림이 주는 견고함, 그리고 자연의 리듬이 담긴 등나무, 라탄은 그렇게 여행자들의 기억과 함께 곁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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