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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왕이 꿈꾼 치앙마이의 약속, 역사의 문을 두드리다

- 치앙마이 올드시티에서 발견한 란나 문명의 지혜 -

by 마르코 루시

치앙마이 오후 2시, 몬순이 절정에 달한 무거운 공기가 올드시티의 사각형 성곽 안을 감싸고 있었다. 삼왕상 앞 광장에서 석조 조각상들이 뿜어내는 무언의 위엄이 피부를 스치는 순간, 시간은 갑작스럽게 7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 명의 1238년생 동갑내기 왕들인 란나의 멩라이, 수코타이의 람캄행, 파야오의 응암므앙이 맺었던 삼국동맹의 메아리가 21세기 아스팔트 위로 스며든다. 청동으로 재현된 그들의 얼굴은 유독 평온해 보이지만, 그 평온함 뒤에는 몽골 제국의 잔혹한 침입과 크메르 제국의 쇠락 속에서 동남아 대륙을 재편해 낸 치열한 의지가 숨어 있다.


1296년, 멩라이 왕이 새 도읍으로 건설한 치앙마이는 단순한 도시 건설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새로운 도시'라는 '치앙마이' 이름 그대로, 이곳은 란나 왕국 700년 역사의 출발점이었다. 힌두교와 고대 점성술에 따라 4개월 만에 완성된 사각형 성벽은 물리적 방어막을 넘어 영적 보호막이기도 했다. 현재 올드시티로 불리는 이 성곽 안에서 도시를 살아있는 존재로 여기며 중심부와 주요 지점들에 신성한 의미를 부여했던 고대인들의 세계관이 오늘날에도 이 도시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그런데 정작 놀라운 것은 이들 세 왕의 우정이 단순한 정치적 동맹을 넘어섰다는 점이다. 람캄행 비문에 따르면 그는 파야오 왕국의 응암 므앙 왕과 치앙마이를 주도로 하는 란나 왕조의 망라이 왕 등과 가까운 사이를 유지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각자의 영토에서 크메르 제국의 잔존 세력과 맞서 싸우면서도 서로를 견제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 명의 왕이 서로 우정을 나누며 협력하여 치앙마이를 란나 왕국의 새로운 수도로 정하는 중요 결정을 내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현대 정치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신뢰와 의리의 정치학이었다.


삼왕상을 뒤로하고 치앙마이 시립 예술 문화 센터 백색 건물의 그늘 아래로 들어서자, 바깥의 뜨거운 열기와는 전혀 다른 서늘한 공기가 피부를 감싼다. 90여 년 된 치앙마이 정부 청사 건물을 개조한 이곳에서 란나 왕국의 일상이 축소 모형으로 생생하게 펼쳐진다. 전통 가옥과 생활 방식을 재현한 모형들로부터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고, 영상을 통해 치앙마이의 오래된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마주하는 것은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문화의 연속성이다. 전시실을 가득 채운 란나식 우산, 정교한 목조 조각, 불교 의식용품들은 모두 오늘날에도 치앙마이 장인들의 손에서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예술문화센터를 나서자 삼왕상 바로 앞에 식민지 양식의 또 다른 박물관, 란나 민속 생활 박물관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 들어서면서 느끼는 것은 시간의 압축감이다. 치앙마이의 8대 통치자에게 속했던 건물이 1935년부터 지방 법원으로 사용되다가 2012년 박물관으로 재탄생한 이 공간은 그 자체로 치앙마이 근현대사의 축약판이다. 18개의 전시실에서 사원 재현, 란나 민속 액세서리, 란나 직물, 란나 회화 등을 볼 수 있고, 불상, 민속 문화, 악기, 전통춤, 전쟁 장비의 방대한 전시가 펼쳐진다. 특히 란나 문화가 수 세기 동안 불교 신앙과 깊이 결합되어 발전해 왔다는 설명이 인상적이다. 불교 철학과 자연 친화적 세계관이 어우러진 란나 문화는 화려함보다 절제된 미학을 추구했고, 이것이 바로 그들만의 독특한 특징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전시품들을 둘러보며 느끼는 것은 란나인들이 품고 있는 독특한 정체성이었다. 200년간 버마의 그늘 아래 있으면서도 자신들만의 색깔을 잃지 않았고, 태국의 일부가 되었으면서도 방콕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고집했다. 이들은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소속도 배경도 복잡하지만, 바로 그 복잡함 속에서 독특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낸 것이다.


오후 5시, 박물관의 유리문을 밀고 나서자 다시 치앙마이의 뜨거운 공기가 얼굴을 감싼다. 30미터 앞 광장에서 삼왕상을 다시 바라본다. 석양이 기울어가는 시간, 청동상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자가 광장 바닥에 길게 늘어진다. 람캄행이 타이족을 역사상 최초로 통일하고 타이 문자를 창제했다는 기록이 사실이든 후대의 각색이든, 중요한 것은 이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살아있다는 점이다. 역사의 진실성보다 더 강력한 것은 그 역사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어떤 의미로 작동하느냐는 것이다.


여행은 우리가 어디에 가는지가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지를 발견하는 여정이라고 했던가. 치앙마이에서 만난 세 왕의 이야기는 개인의 야망보다 공동체의 번영을 택했던 리더십의 원형을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이런 협력과 신뢰의 정치학이 가능할까? 삼왕상 앞을 지나는 현지인들의 여유로운 발걸음 속에서, 그 답을 찾고 있다. 어쩌면 진정한 문명은 얼마나 높은 건물을 짓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 평화와 조화를 만들어내느냐에 달려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720년 전 세 왕의 약속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이 도시에서, 그런 깨달음이 몬순의 저녁공기처럼 부드럽게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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