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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안꾸'의 정석, 치앙마이 찡짜이 마켓에서 보낸 시간

- 치앙마이 찡짜이 마켓, 수공예와 유기농이 만들어낸 삶의 리듬 -

by 마르코 루시

주말 오전, 치앙마이 올드시티 북문에서 차량으로 15분쯤 지나면 도심의 분주함이 차츰 사그라들고, 나무 그늘아래 자연스레 펼쳐진 찡짜이 마켓 입구가 조용히 시야에 들어온다. 검은 철제로 새겨진 'JING JAI(찡짜이)' 간판 뒤로, 파란 하늘에 흩어진 구름들이 느슨하게 매달려 바람에 흔들린다. 찡짜이는 태국어로 '진심' 또는 '성실함'을 뜻한다. 이 말이 낯설지 않은 건, 이곳 공기 안에 그 이름처럼 조용한 정직함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입구 주변으로 퍼지는 갓 구운 코코넛 팬케이크의 달콤한 향과 바나나 잎이 내뿜는 신선한 풀내음이 어우러진다. 그 사이로 들어서는 사람들의 표정엔 설렘과 과 호기심이 고요히 번지고 있다.


입구에서부터 다양한 모양의 가판대들이 도로 양쪽으로 여기저기에 펼쳐진다. 도자기와 직물, 다양한 공예품들이 정돈된 텐트 아래 진열되어 있다. 더 안쪽으로, 더 깊숙이. 중앙 광장에는 파머스 마켓이 러스틱 마켓(빈티지한 수공예품 마켓)과 각각의 영역을 나누어 자리한다. 파머스 마켓에서는 농부들이 직접 가져온 신선한 야채와 과일들이, 러스틱 마켓에서는 지역 장인들의 수제 공예품과 레트로한 수집품들이 나무 그늘 아래 진열되어 있다. 파머스 마켓 사이사이로 작은 식당들이 푸드코트처럼 자리 잡고 있다. 툭툭과 붉은 트럭 송태우에서 내리는 여행객들, 스쿠터를 타고 도착하는 현지인들. 그들이 걷는 발걸음은 기대 속에 들떠있다.


2006년 설립된 찡짜이 마켓은 유통기업인 센트럴 그룹이 '조화로운 삶'을 지향하는 지속가능한 경제 실험으로 조성한 공간이다. 단순한 주말 농부 시장에서 시작해, 이제는 유기농 농산물과 수공예품, 지역 예술을 한데 모은 복합 문화 공간으로 발전했다. 주말 아침이면 치앙마이 전역에서 모여든 농부들과 장인들의 손길로 채워진다. 파빌리온 아래 가판대마다 사람들이 둘러서고, 시장은 이른 시간부터 가볍게 들뜬 분위기로 달아오른다. 파머스 마켓에서는 갓 따온 각종 야채와 과일들이 전시장이다. 그 사이사이에 펼쳐 저 있는 푸트코트는 파버스 마켓을 풋풋한 시골 장터로 탈바꿈시킨다 간단한 디저트부터 넉넉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음식들이 가득하다, 어느 곳 하나 그냥 지나치기가 힘들 정도다. 이곳에서 사고파는 건 물건보다도 그 뒤에 담긴 마음의 태도에 더 가깝다. 바나나 튀김을 건네는 할머니의 거친 손길과 온화한 미소. 직접 채밀한 롱간꿀(Longan Honey) 설명하는 젊은 판매자의 목소리에 담은 자부심. 단순한 거래를 넘어선 무언가가 흐른다.


하지만 찡짜이 마켓의 진정한 매력은 예상과 다른 지점에서 발견된다. 주말 시장은 분명 활기가 넘친다. 파머스 마켓에서는 농부들이 자신의 농산물을 설명하는 목소리가, 빈티지한 수공예 마켓인 러스틱 마켓에서는 장인들이 수제 작품의 제작 과정을 들려주는 대화가 들린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 수공예 작업 시연 중 들려오는 도구 소리가 공간을 채운다. 하지만 그 활기는 관광객들이 기대하는 상업적 소란과는 질이 다르다. 흥정의 시끌벅적함이나 호객행위 대신, 각 상인은 자신의 물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손님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눈다. 방문객들도 천천히 음미하며 둘러본다. 하나의 가판에서 다른 가판로 옮겨가는 사이에 충분한 여백이 있고, 그 여백 속에서 무언가를 충분히 들여다보고 음미할 시간이 생긴다.


찡짜이 마켓은 두 개의 시간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주말이면 파머스 마켓과 러스틱 마켓이 함께 열려 활기찬 장터로 변모한다. 하지만 평일의 얼굴은 전혀 다르다. 정갈하게 정리된 찡짜이 빌리지에는 유기농 전문 슈퍼마켓 Tops Green, 수공예 브랜드 Good Goods, 현대미술 갤러리, 라나 양식의 목조건물 카페들이 상설 매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을 찾는 현지인들의 일상은 시장이라기보다 오히려 조용한 마을 산책에 가깝다. 아이스 라테 한 잔을 손에 들고 갤러리 전시를 천천히 둘러보는 사람들, 대나무 그늘 아래 테라스에 앉아 책장을 넘기는 이들. 이 공간의 시간은 도시보다 한 박자 늦은, 더 느긋한 리듬으로 흘러간다.


찡짜이 마켓에서는 자연스러운 질서와 사람들의 호흡 속에서, 어떤 공간보다도 완성도 높은 장면들이 나온다. 방문객들이 여기서 가져가는 것은 구체적인 기념품이 아니라 '다른 시간의 가능성'에 대한 깨달음이다. 정작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다. 꾸민 듯 꾸며지지 않은 공간, 그러나 조화로운 리듬. 찡짜이는 그런 방식으로 도시의 속도를 바꾸고, 여행이 단순한 소비가 아닌 삶의 확장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Jing Jai', 진심이라는 이름처럼 이 시장은 꾸민 듯 안 꾸민 듯 정직함으로 방문자들에게 속도를 늦추고 삶을 다시 들여다볼 기회를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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