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가 꿈인 적은 없었다.

by 한희정

지난주 토요일 영월에서 노래했다. 처음으로 돈을 받기도 했다.

9월까지 주말마다 하는 영월문화행사에 참여한 것이다.

영월에서 여러 문화사업을 펼치고 있는 현진 언니의 추천이었다.

그리고 내가 선뜻 참여할 수 있었던 건 이미 준비되어 있기도 했기 때문이다.


중학교 1학년 때, 잠실 롯데 시어터라는 공연장이 생기면서 주변 주민들에게 뮤지컬 초대권을 준 적이 있다. 남경주 주연의 ‘레미제라블’이었다.

맨 앞줄에서 고개를 90도로 꺽어들고 공연을 보면서 ‘나 저거하고 싶다’라고 생각했던 내가 기억난다.

하지만 난 그 공연 이후로 단 한 번도 뮤지컬 공연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지금 나의 둘째 아들은 뮤지컬 배우가 꿈이란다.

정말 삶이란 알 수 없다.


90년대 들어서면서 노래방이 생기기 시작했고, 가끔 노래방을 갔던 기억이 난다.

누구에게 칭찬을 들을 만큼 잘했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부모님이나 가족들에게 보일 기회는 더 없었다.


대학교 축제 때 단과대별 노래 경연에 나가고 싶었으나 망설였던 기억,

결국 망설이다 놓친 기회들.


그렇게 사회생활을 하게 되고, 술 먹고 가는 노래방에서 나는 꾀나 노래를 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다들 취해서 내 노래 실력 따위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음주가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내 곁에 있지 않았다.

같이 술을 마실 사람도, 같이 노래방에 갈 사람을 만나기란 하늘에 별 따기였다.


그러다 2022년 <싱어게인 2>의 우승자 김기태를 응원하게 되었다.

10대 때도 하지 않았던 팬질은 몇 개월 지속되었다.


언젠가 김기태가 팬 미팅을 할 텐데, 분명 팬들에게 노래를 시킬 거야.
난 반드시 김기태와 듀엣을 하겠어. 그러기 위해서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
그래야 언제 어느 때든 내가 자신 있게 손을 들 수 있으니까!

그날부터 난 꼬박 3년을 코인노래방에 갔다. 혼자서 말이다.

몇 달은 매일, 몇 달은 일주일에 세 번, 몇 달은 일주일에 두 번, 그 기간이 늘어날수록 텀도 길어졌지만,

꾸준히 연습하고 연습했다. 기회가 언제 올지 모르니까 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사이 김기태에 대한 내 마음은 처음과 같지 않게 되었고, 더 이상 그와 함께 노래하고 싶다는 마음은 옅어졌으나, 노래할 기회가 오면 손을 번쩍 들리라는 마음은 그대로였다.

난 후회하기 싫었다. 그렇게 3년의 세월이 흘렀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 기회는 드럼동호회에 가입한 아는 언니로부터 찾아왔다.

노래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에 나를 소개해줬고, 마침 내가 노래하던 그 타이밍에 강화예술문화단 기획부장님이라는 분이 내 노래를 들었고, 버스킹에 와서 노래해 달라고 요청하셨다.

그리고 첫 합주가 있던 날 노래방구석에서만 했던 티를 내며 열창을 했고, 그렇게 난 노래방구석 무대에서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노래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는 무대라는 곳으로 한 발을 내딛게 되었다.

그 3년의 연습이 없었다면 난 시도도 못 했을 것이다.


그리고 강화에서의 두어 달간의 버스킹이 있었기에 영월 문화행사에서 노래해 달라는 요청에 응할 수 있었다.

그리고 8월에 한 번 더 와달라고는 요청도 받았다.


항상 무엇인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다 보니 내가 원하던 그 무엇이 되어가지 않게 되면 포기하기 바쁘기도 했다.

목표를 가지고 시작한 나의 노래는 어느새 목표가 사라졌음에도 계속됐다.

영원히 코인노래방에서만 하게 되어도 괜찮다는 마음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일은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순간처럼 보이는 그 순간까지 어떻게 왔는지는 나만이 알 수 있다.


그래서 지금 나는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순간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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