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서사
지난 주말 약속이 있어서 지하철역으로 가는 중이었다.
집 앞 건널목에서 넘어지신 건지, 쉬시려고 앉아 계신 건지 헷갈리는 모습의 어르신이 보였다.
어르신과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보니 왼손에 지팡이 두 개를 쥐고 계셨고,
오른손으로 바닥으로 밀면서 일어나려고 하시는데 아무래도 일어나지 못하고 계신 듯했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내민 내 손을 꼭 붙잡으시고도 다리에 힘이 없어서 잘 일어나지 못하셨다.
혹시라도 놓칠까 봐 난 온몸에 힘을 주고 어르신이 스스로 움직여 일어나시길 기다렸다.
내가 힘으로 일으키면 마치 부서지실 거 같았다.
그런데도 금방 일어나지 못하시니 지나가던 남자 어른분이 일어나시는 걸 도와주시고 가셨다.
일어는 나셨으나, 쉽게 걷지 못하시는 상태였다. 고관절 수술을 하셨다고 하셨다.
왼손에 있던 두 개의 지팡이를 양손으로 나누어 잡았으나 쉽게 걸음을 떼지 못하셨다.
큰 걸음이 아닌 동동거리는 걸음으로 이동하시는 거였다.
“앉아서 마누라한테 다시 전화해야 하는데, 전화를 안 받아.”
“이 근처에는 앉을 만한 데가 없는데…. 멀리 가시는 거보다 여기 그냥 앉으셔서 전화를 하시는 게 나을 거 같아요.”
마트 뒤쪽 작은 건널목이었기에 벤치도 없었고, 어디 멀리 걸어갈 수도 없었다.
그렇게 내 걸음으로 한 발이면 되는 곳을 동동걸음으로 겨우 걸어서 이동 후, 부축해서 앉혀드렸다.
“여기까지는 어떻게 오신 거예요? 혼자 걸어오신 거예요?”
“아니 마누라랑 차 타고 와서 내려줬는데 걸어가다가 넘어진 거야. 알려주면 여기로 올 건데 전화를 안 받네.”
느낌에는 걷는 연습을 하시라고 내려주신 듯했다. 그렇게 전화를 거시는 어르신 옆에 서 있었다.
초콜릿케이크에 커피 한잔 마시고 약속장소에 가려고 좀 일찍 출발해서 시간 여유가 있었다.
“왜 안 받지? 나보고 혼자서 오라고 안 받는 거 같기도 하고…. 이상하네. 혹시 전화기 있으면 마누라한테 전화 좀 해줘요.”
왠지 내가 하면 받을 거 같기는 한데…. 일부러 안 받으시나?라고 생각하며
전화기를 꺼내 불러주시는 전화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었다.
두 번째에 신호에 전화를 받는다.
“잠시만요”라고 말하고 어르신을 바꿔드렸다.
“여기 우체국 앞이야.” 그렇게 말씀하셨고, 전화기 너머로 "알았어요"라고 들렸다.
“이상하네, 왜 내 전화를 안 받았지? 고마워요.”
정말 왜 내 전화를 받지 않았는지 궁금해하시던 눈망울이 아직도 선하다.
그렇게 어르신을 그 자리에 두고 내 갈 길을 갔다.
발걸음 하나 떼기도 어려워하시는 어르신의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한편 그런 남편의 전화를 받지 않으신 아내가 순간적으로 야속했다.
몸이 아픈 것도 서러운데 가족이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올라오는 순간!!!
걸음을 멈췄다.
'내가 보는 것이 다가 아닐 텐데, 그 두 분의 서사를 나는 모르는데, 내가 감히 이러쿵저러쿵 할 수 있나?'
넘어지신 어르신에 대한 나의 호의가 누군가에는 무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그렇다면 호의를 베풀지 말았어야 했나?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감사하게도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남편에게 매몰차게 하는 사람으로 판단하려 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이다. 내 호의가 나에게 준 가르침이다.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을 하거나 엉뚱한 답을 적어오는 경우들이 있다.
그럴 때면 난 항상 묻는다. 그렇게 한 이유를.
왜냐하면 옳고 그름을 떠나 우리가 어떠한 말이나 행동을 할 때는 그만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야기하면서 아이 스스로 자신의 이유를 교정하거나 수정하기도 하고, 자신의 행동이나 말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어르신과 있었던 일을 숙고하며 초콜릿케이크와 커피를 마시고 집에 놓고 온 것이 생각나서 다시 집에 들렀다가 나오는 길에 도와드린 어르신을 봤다.
아까 그 자리에서 나의 걸음으로 4걸음 정도면 건너는 건널목을 건너 동동걸음으로 걸어가고 계신 것을….
어르신과 헤어진 지 40분이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결국 오지 않으신 모양이었다. 아마도 스스로 걸어서 집까지 가야만 하는 미션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