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병원에 가자.

by 한희정

7월 16일 대구 50사단 207기 신병교육대대 아들 수료식을 엄마와 다녀왔다.


언제부터인가 혼자 움직이는 게 편한데, 아들 입장에서 엄마 혼자 달랑 오면 좀 그럴 거 같아서 친정엄마께 동행을 부탁했다. 당일치기로 다녀올까도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거리가 꽤 되어서 전날 내려가 부대 근처에서 하루 자고 수료식에 참석하기로 했다. 전날 엄마가 3시 퇴근이시라 그 시간에 맞춰 엄마를 모시고 출발하기로 했다. 쉬엄쉬엄 간다고 하면 4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라 집에서 엄마 픽업해서 출발하려면 족히 5시간은 운전을 해야 하니, 공부방 수업도 이틀 뺏겠다, 출발 하루 전날 부모님 댁에 갔다. 즉 16일 수요일 수료식을 위해 난 3일 전 집에서 나간 거다.

어쨌든 내 새끼 일이니 같이 가주시는 엄마를 최대한 불편하게 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마음이 컸다.


나는 잠귀가 밝다. 그리고 혼자 산 지 10년이 넘다 보니 누구랑 같이 자본지도 너무 오래됐다.

출발 전날 부모님 댁이지만 잠자리가 바뀌고 장거리 운전에 다소 긴장도 되어서인지 잠이 쉽사리 들지 않았다. 겨우 잠이 들었으나 3시간도 안 돼서 부모님의 대화 소리에 잠이 깼다. 워낙 일찍 주무시고 일찍 일어나시니. 늦게 잠이 들었어도 잠귀가 밝아서 잠이 깨버린 거다. 그래도 운전을 해야 하니 엄마가 출근하시고 아빠 운동 나가시고 조용한 틈에 두어 시간 더 잤다.

그렇게 도착한 숙소에서는 오랜만에 한 침대에서 누군가와 함께 자려니 또 예민. 내가 이토록 예민한 인간이라니, 나도 몰랐다. 다행히 엄마는 금방 잠이 드셨다. 어제도 제대로 잠을 못 잤으니 잠이 들다가 엄마가 자세를 바꾸시면 잠이 깨고, 나 때문에 깨실까 봐 조심하다 보니 결국 잠이 달아났다. 혼자면 덜 힘들 텐데 누가 옆에 있으니 생각보다 힘이 들었다. 그렇게 겨우 잠든 나는 결국 3시간 만에 눈을 떴다.

-왜 그렇게 안 자고 뭘 보냐? 너도 가만 보면 잘 안자. 집에서도 너 자는 걸 못 본 거 같아. 항상 문 열어보면 깨어있더라고.

-잠이 없는 게 아니고 잠귀가 밝아서 잠이 깬 거야. 난 좀 늦게 자는 편인데도 엄마 아빠 이야기 소리가 들리면 잠이 깨.

-아니 그럼 매번 소리에 잠이 깬 거였어? 난 몰랐네.

-10년 넘게 혼자 침대에서 자다가 엄마랑 자니까 신경이 쓰여서 잘 못 잔 거야. 엄마는 그런 거 없었지? 잘 잤지?

-나도 깊이는 못 잤지만 그래도 잘 잤어. 그렇게 예민해서 어쩌냐….

나도 이 정도인지 몰랐어.


사실 불안 증상은 몇 주 되었다. 아니 어찌 보면 아들이 입대하고 오래간만에 혼자 지내야 하는 상황이 오면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안정을 찾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일어나지 않을 일들에 대한 걱정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가장 큰 불안은 장거리 운전을 앞두고, 고속도로에서 혹시라도 실수로 핸들이 돌아가서 사고가 나면 어쩌지?

이런 불안이 있다고 말하기도 무서웠다. 말이 씨가 될까 봐.


물론 그전에도 갑자기 넘어져서 다치면 어쩌지? 뭐 잘못 먹어서 아프면 어쩌지? 잘 못 하면 어쩌지? 이런 생각이 자꾸 늘고 있음이 감지돼서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있었고 잘 처리하고 있었다. 물론 그런 생각들을 처리해야 하니 에너지가 쓰여 피곤하긴 했지만 잘 버티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료식이 다가올수록, 엄마와 함께 가게 되면서 경험해 본 적도 없는 일들이 일어날까 바에 대한 걱정이 자꾸 나를 치고 들어왔다. 지금 생각해 보니 엄마랑 이야기하면서 중간중간 힘들었는데, 그게 내 생각 처리하기도 힘든데 가끔 부정적인 말씀을 하시면 그거까지 더해진다는 생각에 왜 그렇게 말하냐고 엄마께 짜증을 낸 거 같다.

결국 터졌다.

터져야 해서 비가 온 건가 싶기도 하다 지금은.

예민한 건 내 문제였고, 엄마랑 둘이 여행 온 거 같은 것도 좋았고, 아들도 봐서 좋았고, 이제 안전하게 귀가만 하면 되는 거였는데 애석하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5시에 아들이 복귀했으니 해가 지는 시간에 집으로 오는 고속도로 여러 구간에 배가 억수같이 퍼부어 난 초긴장 상태였다. 안 그래도 며칠 집에서 나와 잠도 잘 못 자고, 장거리 운전에 비까지…. 옆에 계신 엄마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안 그래도 차선도 잘 안 보이고 힘든데 옆에서 자꾸 걱정하시는 게 더 힘들어서 조금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을 여러 번 했는데도 엄마는 이내 말씀을 다시 하시고, 이내 다시 하시고…. 이해는 되나 내가 죽을 맛이다. 동서울 들어오기 전 마지막 퍼부음에 내 멘탈을 겨우 잡고 톨케이트를 들어서니 비가 잠잠한 구역이 나왔다. 그러고 나니 아까 내가 엄마가 옆에서 그러면 더 힘드니까 조금만 조용히 해달라고 한 부탁을 안 들어준 엄마에게 화가 났다. 비는 그쳤으나 왜 하지 말라고 부탁했는데 들어주지 않았냐고 엄마에게 퍼붓기 시작했다. 엄마는 엄청나게 당황하셨고, 그런 엄마를 항상 엄마는 이런 식이라고 또 퍼부었다. 그렇게 하면서도 난 생각한다. 왜 이렇게까지 하지라고.

엄마는 이틀 잘 다녀오고 왜 그러냐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말씀하시며 이해를 못 하시고, 이해해주지 못하는 엄마를 원망만 한 거다. 나에게는 이틀이 아니라 최근 몇 주 동안의 눌러놓은 불안이었음을 나도 이제 알았는데 엄마가 어찌 알리오. 물론 말씀드려도 모르시지만 내가 제대로 알았다면 폭발하진 않았을 것이다.

부모님 댁에 도착해서는 아빠한테 2차로 엄마가 그랬다고 막 이르고 울고불고하다가 집으로 왔다. 집으로 오면서 눈물이 자꾸 난다. 내 불안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엄마가 미워서 막 울다 보니 항상 그랬듯이 그 불안을 몰라준 건 엄마가 아니라 나였다. 그리고 더는 참지만 말고 진료받았던 정신의학과에 가자 상담을 받아보자 마음먹었다. 아니 진작 갔어야 했다.


오늘 아침 눈 뜨자마자 병원에 갔다. 상담을 기다리며 내 상태에 대해 정리가 되었다. 마치 나에게 불안한 생각이나 걱정은 통증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증이 찾아오면 참기도 하고 진통제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그것을 오로지 참기만 한다면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고 또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몇 주 동안 병마와 싸운 느낌이 들었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통증과의 싸움을 한 거 같은 느낌. 나만 아는 통증.


-선생님, 불안이라는 게 어떤 일을 경험하고 그런 일이 또 일어날까 봐 불안한 거 아닌가요? 저는 사실 말씀드린 그 걱정들이 한 번도 경험한 게 아닌데도 왜 불안한 건지 모르겠어요. 불안에는 원인이 있을 테니 그걸 찾아보려고 했는데, 없어요.

-원인이 없을 수도 있어요. 스위치 같은 거예요. 뇌에서 그곳이 눌려버린 거예요. 지금처럼 아들이 입대하면서 그랬을 수도 있고…. 그러고 나면 생각들이 자꾸 그쪽으로 흘러 들어가다 보니 그런 겁니다. 홍역처럼 면역이 생기는 병이 아니면 대부분 좋아졌다 발병했다 하는 거예요. 감기처럼.

거기에 완벽주의 성향이 강해서 실수하지 않으려고 하니 불안이 높아졌던 거 같아요.

어느새 내 손엔 휴지가 쥐어져 있었다.


-우울이나 불안은 매우 주관적이기 때문에 스스로가 진단할 수밖에 없어요. 본인이 그렇다면 그런 거니까요.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수치로 결과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안을 10이라고 했을 때, 일상생활을 하는데 불안도가 2~3 정도 하면 괜찮아요. 누구나 그 정도의 불안은 느끼고 있어요. 하지만 불안도가 6이 넘어간다 그러면 약물 치료하면서 조절하면 좋지요.


그렇게 하겠다 했다. 참는 것만이 미덕이 아님을 다시 한번 새기며.

몇 년 전 먹었던 같은 약으로 불안에도 좋다고 하시면서 갱년기 여성들에게도 효과가 좋다고 덧붙이셨다. 며칠 먹으면서 스스로 상태를 체크하며 하루에 한 번, 이틀에 한 번, 삼일에 한 번 조절해서 복용해 보라고 하셨다.


그러고 나니 엄마한테 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그런 내 마음을 좀 알아주시고 이해해 주셨음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그게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이미 내 안에서 불안의 신호가 왔을 때, 잡아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감기에 걸려 열은 열대로 나고 몸살은 몸살대로 앓고 나서야 내과에 간 기분이긴 하나,

그래도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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