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된 하루가 시작된 시점이 이때부터였다.
아침 6시 반쯤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아침이 준비되면 유찬이 깨워서 먹으라고 하고 출근준비를 한다. 나는 아침을 안 먹은 지 오래되었다. 씻고 나와서는 싱크대를 정리하고 설거지를 한다. 7시 40분쯤 집을 나선다. 유찬이 출근시키고 나도 학교로 출근한다. 협력교사 일이 끝나고 집에 오면 12시 전후가 된다. 유찬이가 퇴근하고 집에 오면 1시가 좀 넘으니 점심 준비를 한다. 같이 점심 먹고 치우면 공부방 수업시간이다. 유찬이는 그동안 낮잠을 자고 나 수업을 한다. 7시까지 다이소에 가야 하니 수업이 끝나자마자 저녁을 차린다. 초반에는 자전거를 타고 다녔지만 이내 나에게 출퇴근을 부탁했다. 거리가 애매하니 이해는 했다. 6시 45분쯤 다이소 데려다주고 와서는 저녁 먹은 거 치우고 정리 좀 하면 금방 또 픽업을 가야 한다. 다녀오면 또 배가 고프단다. 하루에 4끼를 챙겨야 한다는 게 보통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다 정리하고 내 방으로 들어오면 밤 11시다.
처음 유찬이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때는 방학이라 협력교사 일을 쉬고 있어서 크게 힘들다고 못 느꼈는데 개학을 하면서 버거웠다. 한편으로 어쩜 이렇게 시간대가 맞아떨어지는지, 누군가 계획을 해놓은 거 같은 생각이 들 정도다.
그제야 난 내가 10년을 혼자서 자유롭게 살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살필 가족이 없다며 슬퍼하기만 했는데, 주변에서 힘들다고 넋두리라도 하면 배부른 소리 한다며 나는 하고 싶어도 못하는 거라고 사람들 입을 막곤 했다. 그들이 가끔 나를 부러워할 때면 나를 놀리는 건가라는 자격지심을 가졌다. 하지만 유찬이 덕분에 이 모든 것이 진실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 케어하고 집안 살림에 일까지 하는 엄마들이 대단해 보였다. 집에 밥을 차려줘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 자체가 신경이 쓰였고, 매 끼니 무엇을 해 먹어야 하나 고민스러웠다. 이런 이야기를 가까운 지인들에게 하자, 이제 좀 사람 같다면서 자기들은 이미 그렇게 살고 있었다고 뒤늦은 나의 고달픔이 그들에게 작은 기쁨을 선사하는 듯했다.
#34
노브랜드 버거를 관두면서 유찬이가 후회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조금 있었다. 워낙 나는 먼저 일을 관두고 후회를 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혹시라고 나처럼 후회하는 건 괴로우니까 관두기 전에 먼저 일할 곳을 알아보고 천천히 관두라고 권하기도 했지만, 유찬이는 확고했다.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다니는 것이 더 괴로운 일이라고 했다. 맞다. 내가 그렇게 키웠다. 자신을 믿으라고 자신의 내면에서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말라고, 그렇게 키웠다.
심리적으로 힘들어지면 판단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이제 막 일을 시작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자신의 누구였는지 알아차릴 수 있는 기회들을 만나는 거 같아서 안심이 된다. 단지 그 목표가 말도 안 되는 소음 없이 조용한 곳에서 지내면서 안정을 취하기 위한 것이 아닌, 정신적으로 건강해지면 군대를 다녀와서 하고 싶은 일을 찾겠노라 라는 목표이길 바랐다.
일을 시작하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 힘들게 번 돈을 좀 더 잘 써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으나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소음에서 벗아날 수 있는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 집보다 조용한 곳을 없다고 아무리 말해도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이해하지 못하고 반대만 하는 엄마로 생각하니, 같은 말을 반복해 봐야 아이가 입을 닫을 뿐 좋은 효과가 없을 거 같았다. 올해 안에는 600만 원을 만들어서 나가겠다는 계획을 좀 더 미루면 좋겠다는 생각에 유찬이에게 목표금액을 1,000만 원으로 올려보라고 권했다. 600만 원이면 너무 여유가 없으니 내년 봄쯤 나가라고 말했더니, 싫다며 자기가 계획한 대로 하겠다고 하길래 나도 이제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에 닿았다. 주거 공간에 소음이 없는 곳은 없다는 확신이 있었고, 결국 힘들게 번 돈을 날릴 것이 뻔하다는 생각이었기에 말한 건데 경험을 해야 끝날일이라면 날리게 될 돈은 인생을 배우는 수강료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예상하는 것이 맞다고 해도 그건 나의 경험이기에 유찬이에게 강요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순간들이기도 하다. 마음을 비우고 몇 주가 지난 어느 날 저녁 식사를 하고 “엄마 말대로 1,000만 원으로 목표금액을 바꾸는 것도 괜찮은 거 같아요.”라고 말했다. 무심한 듯 “나는 말해 놓고 어차피 나갈 거 빨리 나가는 게 좋을 거 같다고 생각했는데, 너 편할 때로 하세요.”라고 말하며 빈 그릇을 들고 싱크대로 가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
아침에 GS 마트를 가는 날은 일찍 일어나야 한다. 8시까지 출근이기 때문에 늦어도 7시에는 일어나야 씻고 아침 먹고 출발할 수 있다. 나는 지각을 해본 기억이 전혀 없을 정도로 시간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것이 가장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유찬이도 두 달 가까이 일하고 있지만 지각을 한 적은 없다. 하지만 일주일에 세 번 GS 마트에 출근하는 날이면 아침에 일어나는 것을 점점 힘들어했다. 안 하던 일을 하니 피곤해서 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침에 깨우기는 했다. 늦는 것이 싫지만 지각하지 않게 해 줘도 결국엔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 내가 왜 그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단지 난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해준다. 깨워주는 거, 준비가 다 되었을 때 출근시켜 주는 것. 어쩌면 아이가 지각했을 때 배워야 하는 것을 부모가 그 꼴을 못 봐서 아이가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되는 건 아닐까 한다. 각자의 일을 분리하는 것이 나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각설하고 유찬이는 점점 아침에 일어나기를 힘들어했다. 피곤이 누적돼서 인가보다 했는데, 어느 날 새벽에 화장실에 가려고 나왔는데 유찬이 방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에어컨 때문에 유찬이가 안방으로 쳐들어오고 어찌나 불편하던지, 결국 내가 유찬이 방으로 옮겼다. 여름 지나면 다시 자기 방으로 돌아가겠다며 미안하다고 한다. 덥지만, 자유가 있지 않은가.
‘출근해야 하는 애가 왜 안 자지?’ 걱정됐지만 그냥 모르는 척 내 방으로 들어왔고 아침에도 묻지 않았다. GS 마트 출근 전날은 일부러 더 일찍 자라고 하고 들어오지만 새벽까지 밤에 불빛이 며칠째 새어 나오고 있었다. 걱정도 되고 화도 났다. 누구보다 자신의 상태를 잘 아는 놈이 왜 자신을 저렇게 괴롭히고 있는지. 아침이면 퀭한 눈을 하고 겨우 일어나 씻고, 먹고, 공부방 수업하는 동안에 정신없이 자고, 저녁 먹고 다이소 다녀와서는 늦게까지 깨어있다. 걱정이 돼서 말하면 자기가 알아서 한다고만 하고, 내가 하는 제안은 일단 싫다고 한다.
이렇게까지 소통이 안 되는 사이였단 말인가? 주변에서 아이들 잘 키웠다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듣고 살았는데,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야 한다는 조언도 많이 했는데, 지금 유찬이가 나에게 하는 걸 본다면 내가 한 말들을 같잖게 생각할 것만 같았다. 결국 그것이 같이 살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던 건가?라는 자기 의심이 들었다. 유찬이 때문에 힘들다고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면 내 얼굴에 침 뱉기 같고, 혼자서 감당하자니 가슴이 답답했다. 내 맘대로 안 돼서 답답한 것인가 스스로에게 여러 번 질문해 보았다. 그러다 알게 되었다. 이 세상에서 자식을 순수하게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애들 아빠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혼 초반에 여러 번 시도를 했으나 애들 아빠는 협조하지 않았었다. 아이들에게 큰 문제가 없었기에 그것 또한 인지하지 못하고 지난 세월이었나 보다.
웬만하면 혼자서 감당하겠노라 다짐을 했지만, 답답한 마음에 다은언니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했다. 유찬이 어렸을 때 육아모임에서 알게 된 언니다. 모두가 ‘네’라고 할 때, ‘아니요’라고 할 줄 아는 독특한 매력을 가진 언니다. 삶의 기준과 신념이 명확하고 삶을 심플하게 운영하는 것을 본받고 싶은 그런 언니다. 자주 보거나 연락하지는 않지만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생각을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는 그런 존재이다. 다행히 주말에 시간이 난다고 해서 약속을 잡았다.
요즘은 웬만하면 주말에 외출을 하려고 한다. 유찬이가 혼자 집에 있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공부방을 집에서 운영하다 보니 엄마가 내내 집에 상주하고 있어서 혼자 있을 시간 없는 걸 아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래도 이번 주에는 약속이 생긴 거니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