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다이소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온 유찬이가 저녁을 먹고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배가 고프단다. 식빵 계란토스트를 만들어 식탁에 올려놓고 밀린 분리수거를 하러 나왔다. 분리수거를 다 하고 집으로 들어가는데 나올 때는 못 본 안내판이 주차장 라인에 놓여있었다. 우리 집 라인 쪽이었다. 보통은 언제 이사가 있으니 주차를 하지 말아 달라는 안내판이다. 어두워서 글씨가 잘 안 보인다. 몇 층에서 이사를 가나 궁금하기도 해서 가까이 호수를 확인하러 다가갔다.
‘604호. 604호? 어, 604 호면.... 뭐야 우리 윗집? 대박! 윗집이 이사를 간다고?’
의미부여가 취미인 나는 유찬이의 움직임이 나비효과가 되어 윗집을 이사가게 하는구나라고 해석했다. 계단으로 뛰어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내 다리는 소중하니까,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유찬아! 이유찬! 대박! 대박사건!
식탁에서 빵을 먹다 말고 나를 쳐다본다.
-윗집 이사 간 대. 내일 윗집 이사 가나 봐. 분리수거하고 들어오는데 이사 있을 때 주차하지 말라고 안내해 놓은 안내판이 있길래, 몇 층이 이사를 가나 싶어서 가까이 가서 보니까 604호인 거야. 첨에 604호가 윗집인지 인지가 안되더라니까. 대박 아니야? 네가 이겼어!
-뭘 또 이겨요~ 신기하긴 하네요. 근데 더 시끄러운 사람들이 올 수도 있는 거잖아요.
-퉤 퉤 퉤 해, 얼른. 퉤 퉤 퉤 취소해.
-퉤 퉤 퉤 취소.
-야! 말하는 대로 창조된다고 엄마가 했어? 안 했어? 찬물을 끼얹고 그랴~
어쨌든 최근에 겪은 일 중에 최고 신기한 일이다. 때마침 네가 일한다고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이런 일이 생기니까 의미 부여하기 딱 좋단 말이지.
-그거랑 무슨 상관이에요?
-몰라,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뭐. 빵은 어때?
-맛있어요.
**
아침 일찍부터 이사하는 소리가 시끄럽다. 오전에 이사가 나가고 오후에 이사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베란다로 나가서 아이들 물건이 있나 없나 봤다. 잘 모르겠다. 이삿짐센터 차가 컨테이너로 되어있으니 안에 물건들이 안 보인다. 그렇다고 내내 지켜볼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유찬이보다 내가 더 예민해진 거 같다. 사다리차가 가고 짐들을 거의 다 내린 듯했다. 1톤 트럭에서 남은 물건들을 꺼내는 듯했다. 큰 화분들과 오래된 세탁기가 보였다. 그 외에 물건들도 오래 사용한 듯한 물건들이었다. 짐작컨대, 아이는 없는 듯하고 오히려 어르신이 이사를 오셨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 짐정리를 하는지 새벽까지 발걸음소리가 들렸다. 유찬이는 헤드폰을 끼고 백색소음을 틀어놓고 잠을 청했다. 나는 윗집의 발걸음소리가 잠잠해질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며칠 전, 유찬이가 매트리스를 끌고 안방으로 쳐들어왔다. 여름동안만 안방에서 지내겠다는 것이다. 날이 더워지면서 에어컨 없이 자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있었다. 마침 프레임 없이 매트리스만 깔고 지냈기에 이동이 쉬웠다.
유찬이가 안방으로 오고 나서 나는 더 예민해졌다. 윗집에서 작은 소리라도 나면 심장이 쿵 내려앉는 거 같았다. 유찬이가 잠이 드는 것이 확인돼야 그제야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자기 전에 편하게 보던 유튜브도 눈치를 봐야 하고 가끔 침대에서 불 끄고 빔으로 보던 영화나 드라마도 못 봤다. 이게 무슨 감옥도 아니고 아들 배려하려다가 내가 병이 날 거 같다.
윗집이 이사 오고 다음날, 엄마 생신이셔서 가족모임이 있었다.
-유찬아, 할머니네서 하루 자고 올 거야. 저녁만 먹고 오려고 했는데 주말이라 이모도 올라온다고 해서.
-그래요? 저 아르바이트 때문에 못 온 거라고 엄마가 말씀 잘해주세요.
-이미 말씀드려서 알고 계셔. 나중에 전화드려. 저녁은 뭐 해놓고 갈까?
-그냥 배달시켜 먹을게요.
나는 ‘윗집이 조용해야 할 텐데?’라는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
이제는 유찬이보다 내가 소음에 더 민감한 사람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내 신경이 온통 주변 소음에 쏠려있는 느낌이다. 소음이 사라져야 하는 이유가 유찬이가 힘들어해서인지, 유찬이가 집을 나가지 않았으면 하는 나 때문인지, 이젠 나도 헷갈린다.
집에 오자마자 아들의 얼굴을 보니 편안해 보이지 않았다. 엄마의 촉이란... 참 무섭다.
-얼굴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
-왜? 윗집이 시끄러웠어? 애들은 없는 거 같았는데?
-... 시끄러웠던 건 아닌데... 불안해서 잠을 잘 못 잤어요.
-무슨 말이야?
-소음이 나면 나서 불안하고 안 나면 언제 날지 몰라서 불안하고....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불안이 심해지니까 숨이 잘 안 쉬어지고 가슴이 너무 답답했어요. 이렇게까지 심한 적은 없었는데 어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마음이 너무 아팠다. 유찬이의 이야기를 듣는데 어젯밤 유찬이의 모습이 마치 전쟁터에 홀로 앉아있는 아이의 모습으로 보였다. 페허가 된 집터에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웅크리고 앉아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폭탄소리에 불안해하는 아이, 폭탄소리가 사라져도 언제 또 날아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웅크린 자세를 풀지 못하고 여전히 불안해하는 아이 말이다. 그 모습이 그려지니 유찬이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어쩌면 유찬이에게 이곳은 전쟁터 같은 곳일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에 미안함이, 안쓰러움이 밀려왔다. 그럴수록 중심을 잡는다. 그럴 수 있다고, 괜찮다고 엄마는 항상 여기 있다는 태도를 보여주면 된다. 어쩌면 그것은 아들뿐만 아니라 내 안에 어린 나에게도 보내는 메시지일 거다. 내가 우리 부모님에게 바랬던 바로 모습으로.
-전화를 하지...
-전화한다고 뭐가 달라져요?
-힘들어서 어떡하니.... 너 병원 언제 가지?
-다음 주 화요일이요.
-이번에 가면 잊지 말고 오늘 있었던 일 꼭 말씀드려.
병원에 다녀온 유찬이는 쌀알처럼 생긴 약을 추가로 처방받아왔다. 너무 힘들 때 한알을 혀 밑에 넣고 녹여서 먹으라고 했단다. 엄청나게 쓰다고 했단다. 나는 약이 너무 써서 힘든 걸 잊게 되는 건 아닐까? 라며 농담을 건넸다.
비상시 먹을 약을 있는 거 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한동안 유찬이를 혼자두지 않기로 결심했다. 유찬이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이 생길 때까지는 말이다.
반드시 내가 유찬이를 회복시키겠노라, 마음을 다 잡아본다.
#33
노브랜드버거를 관두고 다시 아르바이트를 찾아보는 듯했다. 집주소를 등록하고 집으로부터 거리를 지정해서 가까운 곳부터 찾아본다고 했다. 반경 2km, 3km 이런 식으로 거리를 지정하고, 주방 관련 업무는 제외하고 1년 동안 채용 횟수를 꼭 확인한단다. 1년 동안 채용 횟수가 표시된다는 것을 알고 나서 관둔 노브랜드버거를 검색해서 보니 7월인데 벌써 채용 횟수가 70회가 넘어있었다며 이게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며 노브랜드버거 채용공고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점심을 먹고 공부방 수업 준비를 하는데 유찬이가 나를 부른다.
-엄마 여기가 어디예요? 멀지는 않은 거 같은데.
-어? 여기 엄마 전에 일하던 사무실 앞에 있는 GS 마트 같은데. 엄마는 가끔 걸어서 출근했었는데 꽤 멀어. 여기서 가는 버스는 1대 있는 걸로 아는데 버스가 다 그렇지만 좀 돌아서 가더라고. 차로 가면 다이소보다는 먼데 지름길이 있어서 1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곳이긴 해.
-자전거는요?
-차가 가는 길로 가면 되니까 나쁘진 않은데 추천하고 싶은 코스는 아니라는. 지원하려고? 무슨 일 하는 건데?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시급이 12,000원이에요.
-최저 시급보다 2,000원이나 더 주네.
-보통은 문자로 지원을 했는데 이렇다 저렇다 대답이 없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연락 기다리는 것도 진 빠지고 전화가 가장 빠를 거 같아서 이번엔 전화를 해볼까 싶어서요.
-근데 남자들은 군미필자는 싫어할 수도 있을 거 같아.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일 다 가르치고 잘한다 싶을 때 군대 가야 한다고 관두는 경우가 있으니까. 그래서 남자들은 군필, 군미필 그런 거 체크하잖아.
-에이, 아닐 거 같은데...
말을 하면 일단 믿지를 않는다. 어렸을 땐 내 말만 믿더니 이제는 내 말만 안 믿는다.
핸드폰을 들고 전화번호를 누르고 있는 아들의 뒤통수를 한 대 때리는 시늉을 하는 것으로 마음을 달래 본다.
핸드폰 너머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군대를 다녀왔는지 묻는 듯했다. 그리고 오늘 오후에 면접을 올 수 있는지 묻는 거 같았다. 통화한다고 했을 때 방을 나올 것을, 나가라도 안 해서 그냥 있었는데 통화하는 내내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은 마음은 언제쯤 거둬질까?
-엄마 말이 맞는 거 같기는 해요. 군대 갔다 왔는지 묻더라고요. 4시쯤 면접 오라고 해서 알았다고 했어요. 지원서를 써서 가는 게 낫겠죠?
-출력해 놓은 거 있으니까 작성해서 가봐. 하는 일이 정확히 무엇인지, 근무시간 등등 궁금한 거 있으면 잘 물어보고. 노브랜드버거 때처럼 대충 넘기지 말고. 사회는 학교처럼 친절하지가 않아.
유찬이는 살짝 들떠 있었다. 면접이 4시이니 이번엔 공부방 수업 중에 면접을 보러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유찬이는 수업 전에 나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수업 끝나는 시간에 맞춰 오겠단다. 편하게 왔다 갔다 하라고 해도 그게 잘 안되나 보다. 아니 유찬이는 그게 더 편한가 보다.
6시가 좀 넘으니 유찬이가 들어온다. 결과가 궁금했지만, 이번엔 나도 묻지 않고 기다렸다.
-고생했네, 면접은 잘했고? 출근하기로 한 거야?
-어떻게 됐을까요~?
-뭐야? 농담하시는 걸 보니 출근하기로 했나 보네.
-네, 내일부터 출근하기로 했어요.
-내일부터 바로? 몇 시까지 가는 건데?
주 3일, 오전 8시~오후 1시까지 근무인데 중간에 12시에 30분 휴게시간이 있다고 했다. 마트에 들어오는 야채, 공산품등 창고와 매장에 정리하고 진열하는 일이라고 했다.
-주말에 근무표를 단톡에 올려준대요. 다이소하고 비슷한 일인 거 같은데 왜 그렇게 시급이 높은지는 모르겠어요. 참 그리고 여기도 8주는 수습이고 그동안은 11,000원 준대요. 대신 식대가 2000원 나온대요. 개꿀.
-세상에 공짜가 없는데, 시급이 높다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일수도. 월급은 언제 주는 거야.
-25일이래요. 다이소는 10일, GS는 25일.
전체적으로 느낌이 좋았다. 오후 1시 퇴근은 12시 30분으로 앞당겨졌다. 30분 휴게시간을 빠른 퇴근으로 바꾼 셈이다. 매니저가 그렇게 제안했고 오전에 일하는 사람들 모두 그렇게 하고 있다고 있다. 8주 후에는 12,000원 시급에 식대 2,000원까지 이런 아르바이트가 없다며 열심히 했다. 출근은 내가 차로 시켜주고 퇴근은 버스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