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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승수 Feb 16. 2021

조직이 의사결정에 이르는 법

조직은 합리적만으로 행동할까?

현미경과 망원경, HR의 두 가지 렌즈


HR은 조직과 사람을 직무 수행의 대상으로 한다. HR은 조직을 설계하고 개발하며, 리더의 역량과 구성원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적절한 Intervention을 적시에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전사 차원의 전략적 지향점에 빠르게 도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조직과 그 구성원을 HR 정책 및 제도라는 도구를 통해 정렬(Align)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하며, 우수한 인적자원의 유인/유지/육성과 생산성 제고를 위해 조직 문화를 건강하게 발전시켜야 한다.


따라서, HR 전문가로서의 전문성을 제고하기 위해서 HR professional은 ‘사람’과 ‘조직’에 관한 두 가지 렌즈의 적절한 활용이 필요하다. 즉, ‘조직’이라는 환경 하에서 행동하는 ‘인간’ 으로서의 구성원에 관한 이해를 위한 미시적 관점과 ‘산업’과 ‘사회’라는 환경 하에서 존재하고 있는 ‘구성체’로서의 조직에 관한 이해를 위한 거시적 관점을 두루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HR이 기업의 전략적 동반자 (Strategic HR Business Partner)가 되기 위해 구성원의 행동과 심리에 관한 이해와 동시에 조직과 기업에 관한 이해가 절실히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HR과 관련한 많은 주제들은 미시적 관점의 조직 내 구성원의 행동이 주가 되는 반면 상대적으로 거시적인 조직에 관한 사항은 논의가 미진한 것으로 보인다.

조직과 인사와 관련한 실무적/이론적 다양한 주제에 관한 생각을 HR professional 동료들과 나누며 Insight를 높여가고자 조직과 기업에 관한 거시적인 이론과 현상을 소개함으로써 조직/인사를 둘러싼 다양한 관점을 나눠보고자 한다.



합리적 인간, 합리적 조직?


전통적인 경제학과 고전적 조직이론에서 전제하는 인간은 합리적 경제주체이다. 이 전제에 따르면, 인간은 합리성과 최적화된 선택을 추구한다. 또, 고전적 기업이론에서 정의하고 있는 기업은 합리적 경제주체들이 모여 ‘이윤 창출의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집단으로, 이 집단의 의사결정 및 행동은 조직의 목표에 부합하는 철저한 합리성에 근간하고 있다는 관점이다.


이러한 전제하에서 조직 내 의사결정과 관련한 가정은,

의사결정의 순간에 의사결정자가 선택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대안이 수립되어 있고, 그중 가장 합리적인 것을 선택할 수 있음

의사결정자가 모든 대안을 선택하였을 때의 결과를 알고 있어, 선택이 합리에 주는 득실을 비교할 수 있음

의사결정자가 선택한 결과에 대한 완전한 선호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음을 가정한다.


현실에서 위의 전제 혹은 가정은 작동하는가?

조직 구성원으로서 또는 의사결정자로서 우리는 합리적인가?


Kahneman과 Tversky (1981)가 실행하였던 간단한 게임을 하나 해 보자.

여기 두 종류의 복권이 있고 이 중 하나를 선택하여야 한다고 하자. 각 복권을 선택했을 때 상금은 다음과 같다.


복권 1: 무조건 상금 100만 원 지급

복권 2: 상금 150만 원을 지급받을 수 있는 확률 85%,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는 확률 15%


무엇을 선택하였는가?

복권 1을 선택하였을 때 기대할 수 있는 효용은 100만 원이다 (100만 원 X확률 100%). 복권 2를 선택하였을 때 기대되는 효용은 120만 원이다 (150만 원 X확률 85%+0원 X확률 15%). 복권 2를 선택하는 것이 기대되는 효용이 더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복권 1을 선호할 것이다.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복권 2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었을 것이다. 저 유명한 Khaneman과 Tversky의 ‘Mirrored Game’을 해보지 않더라도, 나(필자)의 선택은 매번 합리적인 것만이 아님은 자명하다. 특히, 매 월 신용카드 고지서를 볼 때마다 강렬하게 그리고 참담하게 자각할 수 있다.


개인의 비합리적 선택 가능성의 존재와 마찬가지로 기업과 조직이 ‘이익 극대화 (Profit Maximization)’에만 부합하는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않고 비합리적 행동을 하는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M&A 결과 발생하는 ‘승자의 저주’를 예로 들 수 있는데, 인수합병의 결과로 심각한 자금난에 봉착하는 회사의 전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승자의 저주’는 빈번하게 반복 발생하고 있다. 긍정적인 측면도 있는데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 기업의 실적과 무관한 꾸준한 R&D 투자, 특정한 영역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적자를 감내하고서라도 사업을 유지하는 경우 등과 같은 사례들이다.


HR의 맥락으로 옮겨보면, 많은 HR professional들이 조직의 중요한 경쟁력 중 한 요소인 인적자원을 선발, 유지, 및 육성하는 업무를 위해 조직의 변화와 혁신을 갈망하며, HR 정책과 제도 그리고 조직문화 진단 및 개선을 통해 변화와 혁신을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와 동시에, 많은 노력들이 조직의 관성이라는 벽에 빈번히 가로막힌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합리한 상황은 비단 HR professional 들만이 겪는 것은 아니며 조직의 구성원이라면 겪게 되는 상황일 것이다.


논의의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합리적 판단에 근간한 이윤의 극대화 추구만이 조직의 본질이라면, 구성원의 직무만족과 조직몰입을 목적으로 한 HR 정책 및 제도의 도입 혹은 개선, 부조리한 조직 관행의 제거 및 혁신은 분명히 조직의 이윤 추구에 도움이 될 것이므로 수용되어 시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많은 경우 조직의 의사결정은 합리적이지만은 않다. 종종 그 반대의 경우가 발생한다. 의사결정자의 비합리적 판단이 문제일까? 의사결정자의 판단을 지원하는 수많은 스텝의 역량 부족이 문제일까? 내가 속한 조직이 아닌 다른 조직에서만 발생하는 문제들일까?



기업 행동 이론 (A behavioral theory of the firm)


의사결정 장면에서 조직과 개인은 언제나 합리적이지만은 않다. H.A Simon은 1956년 ‘제한된 합리성 (bounded rationality)’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의 비합리적 선택을 설명하고 있는데, 인간은 정보의 부족, 인지능력의 한계, 물리적/시간적 제약으로 인하여 완전히 합리적이지 않고, 부분적으로 합리적 존재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제한된 합리성’을 갖는 사람들이 모여 구성된 조직 역시 합리성에 대한 제약을 받을 수 있는데, 이것이 Cybert & March (1963)의 기업 행동 이론 (A behavioral theory of the firm)이다. 이 이론을 통해 저자들은 기업 및 조직이 의사결정 및 행동에 이르는 현실적인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기업은,


첫째, 기업은 다양한 개인들로 구성된 연합체 (coalition)로, 구성원들은 서로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서로의 목표에 부합하도록 행동하므로 조직 내에서의 갈등은 필연적이고 항시적으로 발생한다.


둘째, 기업과 조직에서 발생하는 의사결정들은 ‘제한된 합리성’하에 시행된다. 그렇기 때문에, 조직에서의 의사결정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보인다.  

갈등의 의사 해결 (quasi-resolution of conflict): 조직 내에서의 의사 해결은 갈등의 본질에 대한 완전한 해결의 형태로 진행되지 않는다. 연합체 (coalition)의 구성원들이 모두 다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갈등은 항상 발생하며 피할 수 없다. 따라서, 갈등의 원인을 완벽히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문제 해결에 ‘비슷한’ 수준까지 다다를 수 있는 형태로 시행된다.


불확실성 회피 (Uncertainty avoidance): 불확실성은 조직 의사결정 환경에 항상 수반되는데, 조직은 장기적인 불확실한 사건의 예측보다는 단기적인 대응과 대응에 대한 피드백에 집중하는 의사결정 전략을 활용하는 것을 선호한다. 조직은 불확실성을 회피하고자 하는 성향이 크므로 업계의 관행이나 내부적 관행이 일종의 판단 기준으로 작동하는 것은 불확실성 요소를 회피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문제 해결형 탐색 (Problemistic search): 조직은 목표를 설정함에 있어서 조직이 수용 가능한 수준의 목표가 무엇인지, 대안은 무엇인지에 대해 ‘선택’하여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선택’을 가능하게 하려면 수용 가능한 수준과 대안에 관한 ‘탐색’이 선행되어야 한다. ‘탐색’은 무작위적 호기심의 해결이나 이해를 도모하기 위한 탐색과 구분된다. 기업의 탐색은 ‘통제 가능성’에 보다 초점을 맞춰 시행된다. 다시 말해, 기업은 탐색을 통해 ‘공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해결책을 찾아 ‘일’을 하려고 한다.


조직 학습 (Organizational Learning): 조직은 시간의 경과에 따라 경영 환경에 적응하는 행동 (adaptive behavior)을 통해 학습한다. 조직은 설정되거나 변경된 목표에 적응하고, 목표의 달성을 위해 무엇에 주목해야 할지 적응하고, 마지막으로 탐색 절차를 수정하는 방식으로 의사결정 과정을 학습한다.


누구의 잘 못도 아니다.


Cybert와 March의 기업 행동 이론은 현대 조직이론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이론임은 분명하다.

조직과 기업의 행동에 관한 다양한 설명과 예측이 이 이론에 기반하여 지금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기업의 의사결정 장면에서 왜 그러한 결정이 내려졌고, 어떠한 행동을 할 것인지에 관한 메커니즘을 설명하고 예측 가능하게 하는 점에서 이 이론은 가치가 있다고 할 것이다. 관심이 있는 분들께 일독을 권한다.


HR professional들과 다양한 주제로 의견을 나누다 보면 자주 듣게 되는 이야기는 “우리 조직은 아직 멀었어요……다른 기업들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시행하고 앞서 가는데.” 혹은 “아무리 뭔가를 하자고 해도 의사결정자들이 답답하게 관행만을 중시합니다.”, “매번 땜질처방만 합니다. 본질적인 것은 회피하고……” 와 같은 내용들이었다. 또, 인사담당자들이 스스로의 역량이 부족해 변화를 도입하거나 선도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자괴감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런데 조직이 가지고 있는 태생적 제약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해 보면 앞서 언급한 상황은 조직의 탓도, 의사결정자의 탓도, 인사담당자의 부족한 역량 탓 만도 아니다. 오히려,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발현된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조직의 변화 발전을 도모하고자 할 때, 조직의 이러한 행동의 특성을 이해하고 이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조직의 발전이라는 대의적 명제 만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조직 내 구성원들의 각기 상이한 목적을 이해하고 이를 수렴하고 반영하는 것, 중/장기 지향점에 대한 강조와 동시에 단기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Milestone과 대안을 제시함을 통해 의사결정자의 불확실성을 낮추는 방법도 대안이 될 수 있다.


그 수준이 다를 수 있겠으나, 조직은 시간의 경과에 따라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행동을 하며 학습한다. 일거에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비합리성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다음 논고에서는 유사한 정책과 제도들이 기업에 유행처럼 번지는 현상에 대해서 신제도주의 이론을 통해 논의해보고자 한다.


- Note -

Wanted에서 운영하는 HR Community '인 살롱'에 기고한 내용입니다. 

 http://hr.wanted.co.kr/insights/조직이-의사결정에-이르는-방식/ ‎


참고문헌

Kahneman and Amos Tversky, 1979: 263-272; Tversky and Kahneman, 1981: 453-458


Cyert, R. M., & March, J. G. (1963). A behavioral theory of the firm. Englewood Cliffs, NJ, 2(4), 169-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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