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아야 할 것 같은 불안함에 관하여
10년도 넘은 기억이다.
파티션 넘어 부장님이 말씀하셨다. 자녀와 배우자를 멀리 유학 보낸 부장님의 큰 취미 중 하나가 등산이었 던 터라 불쑥 주말 등산을 제안하셨다. 거절하기도 선뜻 따라나서기도 어려워 난처했던 기억이 난다. 솔직히 ‘등산’ 도 선호하지 않았고, ‘상사’ 와의 ‘동반’도 꺼려졌다. 복합적 난관이었다.
최근의 기사에서 COVID19로 Fitness Center 운영이 불가해, 건강관리를 하고 싶은 20~30대 사이에 등산이 ‘유행’이라고 했다. 주변의 후배들도 주말 산행을 즐기는 친구들이 많아졌다고 하고, 20대~30대 등산객의 유입으로 등산복과 등산장비의 판매액 폭발적 증가가 이를 객관적으로 반증하고 있는 것 같다. 난 등산이 그렇게 싫었는데 말이다. 특정한 활동이나 제품 등의 유행이 단순한 트렌드를 넘어 일종의 규범처럼 번지는 사례를 종종 목격할 수 있다. ‘개인의 특성을 강조하고 타인과의 차별화를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다.’는 현대인의 모습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조직의 경우는 어떨까? 기업 정책, 제도 및 경영전략에서도 특정한 방법론이 유행처럼 번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업을 영위하는 분야, 시장, 기간 (業歷)도 다르고 조직문화나 구성원의 특성이 상이한 기업들은 각자의 상황과 조직 별 목표의 추구에 최적화된 전략, 정책 및 제도를 수립하여 운영하고 개선시켜가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경쟁사와의 차별적 우위가 생겨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기업이 순수한 ‘합리적 경제주체’라고 한다면 위와 같이 행동해야 한다. 현상은 어떨까? 기업이 활동하는 많은 부분에서 유사성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경영기법이 발생하면 발 빠르게 이를 도입하고자 움직여 유사한 모습으로 수렴된다. 전 세계적인 정보 교환의 시간적 차이가 거의 없는 최근에는 이러한 움직임이 과거보다 비약적으로 빠르게 진행된다.
이와 같은 현상을 DiMaggio와 Powell (1983)은 ‘동형화 (Isomorphism)’로 설명하고 있다.
신제도주의 이론 (New Institutionalism) 관점에서는 조직이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존재가 아닌, 해당 조직이 포함된 사회적 구조 속에서 외부 환경 혹은 다른 조직과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존재로 인식하고, 기업이 유사한 제도와 구조를 수용하는 것은 제도적 압력에 의한 동형화로 설명하고 있다 (윤언철, 유규창, 2017; DiMaggio & Powell, 1983). 이론에서 언급하고 있는 ‘제도’는 각 기업이 운영하는 ‘조직 운영 상의 규범’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조직이 속해 있는 사회의 관습이나 도덕, 법률과 같은 사회 구조의 체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DiMaggio와 Powell (1983)에 따르면 동형화 (Isomorphism)는 다음의 3가지의 형태로 존재하며, 이하와 같은 기제에 의해 유사한 구조를 갖게 된다고 하였다.
강압적 동형화 (Coercive Isomorphism): 법령이나 규정 및 산업 내 표준에 따른 동형화
모방적 동형화 (Mimetic Isomorphism): 산업 내 선도(우수) 기업 모방
규범적 동형화 (Normative Isomorphism): 사회적으로 공유되는 가치에 따른 동형화
HR의 다양한 제도에서도 동형화 혹은 동형화 과정을 충분히 관찰할 수 있으며, 동형화의 기제에 따라 해석될 수 있다. HR 제도는 필연적으로 소속된 사회의 노동법에 큰 영향을 받게 되는데, 법정근로시간의 주 52시간 축소와 관련한 사항들을 강압적 동형화 (Coercive Isomorphism)의 사례로 들 수 있으며, 근로자 법정 필수교육 (성희롱, 개인정보보호,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 등이 기업교육훈련에 의무적으로 포함되어야 하는 것도 그 예가 될 수 있다. Business Partner의 ISO 인증 조건에 부합하는 HR 정책의 수립 및 운영 등도 일종의 강압적 동형화의 예로 들 수 있다. 일변, ‘강압적’이라는 어감이 부정적으로 느껴질 수 있겠으나, 법령과 규정 준수를 요구하고 이를 어길 경우 상응하는 불이익이 수반되는 ‘강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해당 표현의 사용은 불가피하다고 할 것이다.
‘성인지 감수성 제고를 위한 노력’, ’ 다양성의 포용’, ’Work & Life Balance’ 등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구성원과 이해관계자들이 영향을 받는 사회적 가치의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일종의 ‘규범적 동형화’로 해석될 수 있다. 이상의 동형화 사례는 반드시 어떠한 하나의 동형화 압력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사회적 가치의 변화를 반영한 법령 및 규정’ 등과 같이 복합적인 동형화 압력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마지막 동형화는 모방적 동형화 (Mimetic Isomorphism)로, HR 제도와 관련해 가장 빈번하게 볼 수 있는 사례들이다. HR을 둘러싼 수많은 새로운 기법들의 부침을 생각해보자. 1980년대 GE의 상대평가제도는 성과주의 HR의 도입과 함께 국내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도입되었으나, 2015년 GE의 상대평가 제도 폐지와 더불어 국내의 많은 기업들도 상대평가제도의 폐단을 사유로 절대평가제도의 도입 및 운영으로 많은 조직들이 돌아서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성과관리 체계인 OKR의 도입을 고민하고 검토하는 조직도 부쩍 늘어났다. 연공서열제도의 폐지 및 성과에 따른 보상제도 (Pay for Performance)의 도입도 특정 시점을 기준으로 다수의 조직들이 도입하고 운영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수평조직문화의 정착’을 위해 영어 이름 부르기, 직책명 없애기, ‘님’으로 통일하기 등과 같은 제도를 도입하고, Google의 Oxygen Project 이후 주목받기 시작한 HR Analytics (혹은 People Analytics)는 ‘증거기반 HR 의사결정’을 위해 많은 기업에서 시도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대한 기민한 대응을 위한 ‘조직 민첩성’이 강조되며, ‘Agile’ 혹은 ‘Agile조직’ 및 ‘Agile leadership’에 관한 고민도 다양한 방법으로 시행되고 있다. 심지어 Facebook 사무실 Lay out까지도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다. HR과 관련된 각 기업 주관의 Conference 혹은 교육에서 많은 주목을 받는 것은 ‘Best Practice’로 칭해지는 ‘사례’ 들임이 모방적 동형화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 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될 수 있겠다.
모방적 동형화는 양날의 칼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모방적 동형화가 발생하는 이유를 Cybert와 March (1963)는 조직이 모호한 문제에 직면하거나 독자적인 해결방안을 찾을 수 없을 때 모방 행동은 경제적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모방적 탐색 활동(Problemistic Search)이 비용적으로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방적 탐색 활동의 전제인 ‘문제의 정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조직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 명확할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선택해야 하는 해결방안이 무엇인지를 결정할 수 있으며, 이와 같은 해결 방안을 모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당면한 문제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분석이 수반되지 않은 채 다른 기업의 사례들을 모방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의 차용일 뿐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책 및 제도의 최초 취지에 역행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픈 곳을 치료하거나 체력을 보강하기 위해 의사의 처방에 따른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 그러나, 타인의 처방을 내 증상을 위해 활용하는 것은 득 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는 것도 유념하여야 할 것이다.
- Note -
Wanted에서 운영하는 HR Community '인 살롱'에 기고한 내용입니다.
http://hr.wanted.co.kr/insights/왜-hr-제도는-비슷할까/
참고문헌:
DiMaggio, P. J., & Powell, W. W. (1983). The iron cage revisited: Institutional isomorphism and collective rationality in organizational fields.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147-160.
Cyert, R. M., & March, J. G. (1963). A behavioral theory of the firm. Englewood Cliffs, NJ, 2(4), 169-1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