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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는 이름으로 혼자 걷는 길

퇴근 후 스타벅스에서, 엄마와 선생님으로 만나다

by 두유진

“이쪽이야, 여기 자리 맡아놨어!”


노을이 지는 창가 자리. 익숙한 스타벅스의 음악 사이로, 반가운 친구의 손짓이 보였다. 그녀는 나보다 한참 먼저 도착해 노트북을 펴두고 있었다. 화면엔 ‘엄마로 살아낸 날들의 기록’이라는 워킹 타이틀이 적혀 있었다.


“벌써부터 글 쓰는 거야?”

내가 웃으며 자리에 앉자 그녀가 말했다.


“요즘 하루하루가 책 쓰는 인터뷰 같아. 근데 네가 꼭 필요했어. 교실에서 아이들을 직접 보는 사람으로서 해줄 말이 많을 것 같거든. 오늘은 정말 인터뷰할게. 마음의 각오해!”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나도 엄마와 선생님 사이에서 오가는 이야기들, 나눠보고 싶었어.”


Q1. “아이를 혼내는 남편의 모습에서, 과거 아빠의 모습이 떠올라. 트라우마처럼. 난 괜찮지 않았는데, 남편은 왜 훈육을 같이 해야 한다고 고집할까?”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말을 들었다. 익숙한 고민이었다.


“음… 사실 훈육이라는 건, 아이를 위한 ‘조율’이어야 해. 그런데 트라우마를 끌어안은 채 훈육에 나서면, 그건 아이보다 자기감정을 다루는 시간이 돼버리거든. 남편분에게는 ‘당신이 훈육하는 모습이 나의 상처를 건드린다’고 정확히 말할 필요가 있어. 동시에 훈육은 함께하는 거지만,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고도 이야기해 봐.”


“훈육은 감정이 아닌 기술로 접근해야 한다는 말이네?”


“맞아. 상처는 분리해서 다루고, 훈육은 아이와의 관계에서 새롭게 고민해야 해.”


Q2. “아이를 키우다 보면 정말 화가 날 때가 있어. 그럴 땐 어떻게 해?”


나는 빙긋 웃었다. 교실에서 똑같은 질문을 아이들에게도 듣는다.


“화날 수 있어. 당연하지. 근데 그 화를 감정으로 터뜨리면 아이는 그 감정을 고스란히 ‘무섭다’는 기억으로 남기거든. 그래서 우리는 ‘아이 메시지’라는 걸 사용해. 예를 들면 ‘나는 네가 그렇게 말하면 속상해’처럼. 내가 느낀 감정을 설명하는 거야. 그러면 아이도 방어하지 않고, 오히려 들으려고 해.”


“분노는 금물, 감정은 설명하기… 기억해 둘게.”


Q3. “6살 첫째는 감성적이고, 4살 둘째는 쿨해. 자꾸 비교하게 돼. 중립이 안 돼.”


나는 그녀의 손등에 살짝 손을 얹으며 말했다.


“아이를 비교하지 말라는 말, 누구나 알지. 하지만 어렵지. 그럴 땐 ‘이 아이는 이래서 좋고, 저 아이는 저래서 멋지다’는 걸 입 밖으로 자주 말해줘. 서로 다른 매력을 눈에 보이게 칭찬해 주면, 그게 진짜 비교가 아닌 ‘차이의 존중’이 돼.”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Q4. “나는 내성적인 편인데, 아이도 내성적이야. 이걸 고쳐야 할까?”


“절대 아니야. 내성적인 성격은 고쳐야 할 게 아니라, 이해받아야 할 감정이야. 조용히 친구를 살피는 아이, 말은 적지만 공감력 있는 아이도 있어. 그 아이가 편한 방식으로 세상과 연결되는 길을 찾도록 옆에서 다리를 놓아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지.”


Q5. “부모님이 반대한 결혼이었고, 친정아버지와 연락이 끊긴 채 아이를 낳았어. 언젠가 외할아버지에 대해 묻는다면 뭐라고 해야 할까?”


그녀의 눈동자에 살짝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거짓은 안 돼. 하지만 진실도 방식이 있어. ‘너의 외할아버지는 만나지 못했지만, 좋은 분이었어’라고 말해줘. 부재가 곧 부정이 되지 않도록, 아이의 마음에 따뜻한 이미지를 심어주는 게 좋아. 결국 아이는 이야기로 세상을 이해하거든.”


Q6. “초등 2학년 아들. 숙제를 안 하고 생활 습관도 엉망인데, 잔소리만 하면 싫다고 해.”


나는 웃으며 답했다.


“모든 잔소리는 ‘강요의 언어’처럼 들릴 수 있어. 대신 선택지를 주는 거야. ‘숙제를 먼저 하고 나서 놀래?’ 아니면 ‘지금 10분만 집중하고 끝내자’처럼. 아이가 선택하는 경험을 통해 자율성이 자란다고 생각해 봐.”


그녀는 내 말을 가만히 적으며 말했다.


“너무 위로된다. 엄마로서의 부족함이 아니라, 방향을 잘 몰랐던 거였구나.”


Q7. “나는 임신 8개월이던 시절이 너무 불안했어. 엄마는 자주 집을 나갔고, 아빠는 화내고.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


그녀의 말에 나는 한참을 침묵했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상처를 끌어안은 채 아이를 키우는 건 무거운 일이야. 나도 그랬어. 그래서 더 중요한 건 ‘내 상처를 먼저 들여다보는 것’. 표현하고 나면 자유로워진다고 하잖아. 글도 마찬가지야. 쓰면서 치유되는 것처럼.”


그녀는 조용히 눈시울을 닦았다. 커피는 이미 다 식어 있었지만, 마음은 따뜻하게 데워지고 있었다.


카페를 나서기 전, 그녀가 말했다.


“오늘 나눈 이야기, 그냥 친구로서가 아니라, 진짜 고마워. 이 글 속에 네 목소리가 그대로 담겼으면 좋겠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혼자 걷는 길, 내가 옆에서 선생님으로 또 친구로 함께할게.”


그 밤, 스타벅스 창밖에 걸린 초여름 노을은, 엄마로서의 불안도, 교사로서의 고민도 살며시 감싸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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