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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의 첫 번째 거울, 아버지

나를 나답게 바라봐 준 한 사람의 시선

by 두유진

지난주, 예전에 함께 가주초등학교에서 근무했던 지인의 아버님이 운명하셨다.

함께 일산병원 장례식장을 찾았다. 고요한 조문실 한켠, 영정사진 속 아버님은 사진을 뚫고 나올 듯한 지혜와 총명함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바라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마음이 숙연해졌다.


지인은 조용히 내게 말했다.

“제 자존감의 원천이 여기 계세요.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저는 지금의 제가 아니었을 거예요.”

그 말 한마디에, 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아버지는 딸들의 총명함을 자랑스러워했고, 그 자랑은 단지 ‘잘하는 아이’가 아닌 ‘존재 자체가 빛나는 아이’로 바라봐 준 애정이었다.

그 시선은 딸들에게 세상을 살아갈 힘을 주었고, ‘나는 소중한 사람이다’라는 내면의 믿음을 심어주었다.

장례식이 치뤄지고 한주 후 지인이 캐나다 출국하기 전, 우리는 카페에 앉아 한참 동안 아버지 이야기를 나눴다.

지인은 말했다.

“다시 태어나도 저는 지금 저로 태어나고 싶어요. 그렇게 만들어 주신 분이 바로 아버지예요.”

그 말에서, 나는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깊은 뿌리를 가진 감정인지 새삼 깨달았다.


부모의 시선은 아이의 첫 번째 거울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처음 마주하는 ‘나’는,

거울을 통해서가 아니라 부모의 눈빛과 말을 통해 형성된다.

그 눈빛이 따뜻하면 세상은 안전한 곳이 되고,

그 말이 존중이면 나라는 존재는 귀하게 여겨진다.


그래서 자존감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처음에는 누군가의 믿음에서 피어나는 것이다.

누군가의 “넌 참 괜찮은 아이야”라는 말이,

“그래, 나는 괜찮은 사람이구나”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되기까지.


부모의 사랑이 심어준 ‘존재의 확신’


지인의 아버님은, 딸들에게 존재의 이유를 증명해주려 하지 않았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딸들을 믿어주셨고,

그 믿음은 딸들이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첫 번째 힘이 되었다.


『자존감은 그려지는 거야』를 쓰며,

나는 부모의 역할을 자주 ‘밑그림’에 비유하곤 했다.

도드라지지는 않지만, 결코 지워지지 않는 선들.

아이의 삶과 마음을 받치는 가장 중요한 바탕.


우리도 누군가의 자존감이 된다


그날 이후로 자꾸 생각이 난다.

나는 내 아이, 내 학생들에게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말하지 않아도, 아이는 알고 있다.

부모가 자신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지.


우리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지금 이 모습 그대로도 사랑스럽다”는 믿음을 전하는 것이다.

지인이 말한 것처럼, 다시 태어나도 나로 태어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지금도 나는 그 영정사진 속 아버님의 눈빛을 기억한다.

그 눈빛 속엔 딸들을 믿고 사랑해 온 세월이 담겨 있었다.

그 사랑은 이미 딸들의 삶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오늘, 우리도 누군가의 자존감의 뿌리가 되어주자.

부모로서, 선생님으로서,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출근 전 늘 들르는 스타벅스에서 소이라떼를 한입 적시며 이 글을 쓰고있다. 아이들에게 던지는 나의 순간순간의 눈빛이 그들의 자존감이 됨을 잊지말자고 다짐하며.


이미 충분히 좋은 아이들이니

나의 따뜻한 시선만으로도 누군가는

다시, 자기 자신을 믿기 시작할 수 있다.


#자존감은그려지는거야

#오늘도충분히좋은부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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