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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5년 그레이스로부터 온 편지 #17

2025년 7월 4일 그레이스에게

by 두유진

사랑하는 그레이스

오늘따라 거실 복도 끝에 걸려있는 나의 그림 [on the Tetrapod]를 멍하니 바라보며 25년 그때의 나를 생각하게 되었어.

그림을 오래 바라보았어.

그림 속 그 사람, 너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더라.

하늘과 바다 사이, 혼자 테트라포드 위에 선 그 작은 사람.

무너지지 않기 위해 버티는 너의 마음이 거기 있었어.

그림을 그렸던 그 해 봄, 네가 혼자 감당해 내던 감정들을

나는 이제야 조금씩 이해해.

그래서일까, 지금도 그 작품은 우리 집 거실 끝 복도에 걸려 있어.

햇살이 드는 오후면, 그 그림은 여전히 너의 그 봄날처럼 고요하고 단단하게 나를 위로해.


사랑하는 그레이스

그 봄날, 너는 세상의 거친 파도 앞에서도

당당히 너만의 방파제를 그려낸 사람이었어.


네가 그때 이야기했지.

“요즘 세상이 너무 시끄러워. 뉴스 한 줄에도 마음이 요동쳐.

과소비도 안 하는데 소비에 대한 죄책감이 들정도로 물가는 계속 올라가.

수시로 현타가 오고, 어쩌면 매일이 전쟁 같아.”라고. 뭔가 잘못되어 간다 못 따라간다라는 말을 많이 했던 거 같아.


그래서 더더욱, 그 방파제가 너에게 필요했구나.

테트라포드는 완벽한 형태가 아니지만, 그 불완전함으로 바다를 막아내듯

너 역시 완전하지 않아도 충분히 단단했다는 걸


그림은 기억하고 있었던 거야.

세상의 소음과 자극은 언제나 바다처럼 몰아치고, 우린 그 앞에서 나만의 ‘방어선’을 만들어야만 해.

누군가는 글쓰기, 누군가는 그림, 누군가는 조용한 커피 한 잔,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으로.


그림 속 그 사람은 작지만 중심에 있어.

그게 너야. 흔들릴 수 있지만 무너지지 않으려는 너의 용기.

테트라포드는 완벽하지 않지만 그 자체로 파도를 막아주는 것처럼,

너의 모든 고민과 선택, 루틴과 사유들이 너만의 방파제가 되어주고 있어.


사랑하는 그레이스

그 불안정한 하늘 아래에서도

네 안에는 고요가 있고, 단단함이 있다는 걸 잊지 마.

그림이 보여주는 건 슬픔이 아니라, 바로 ‘내면의 평정’이야.


그리고 기억하자.

작은 사람이 거대한 구조물 위에 선다는 건

결코 무력함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스스로 감당해 낼 수 있다는 신호야.


오늘도 그렇게,

네 마음의 파도를 조용히 받아주며

스스로를 지켜내는 너에게 진심을 다해 응원을 보낸다.


그러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

지금 네가 하고 있는 모든 노력은

어느 날, 너의 안에 든든한 방파제가 되어줄 거야.

흔들리면서도

무너지지 않으려는 너의 용기,


내가 여기서 너를 응원하고 있음을 잊지 마! 애틋한 마음을 담아.

2035년의 쥴리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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