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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다가서면, 세상이 열린다.

워너 브롱크호스트 | 그 속에 숨은 인간의 터치

by 두유진

온 세상이 캔버스, 그 속에 숨은 인간의 터치


– 워너 브롱크호스트 전시

‘The Whole World’s a Canvas’

늘 기대감으로 들어서게 되는 그라운드시소 서촌


처음엔 그저 귀엽고 기발한 그림들이라 생각했다. 포르쉐 보닛 위에서 잔디밭을 미는 사람, 거대한 크림색 물감 벽을 오르는 작은 인물들, 인공수영장의 파란 물결 속에서 노는 듯한 장면들. 일상 속 장난기 어린 상상 같기도 했고, SNS 속에 자주 보이던 ‘요즘 감성’ 그림 같기도 했다.


하지만 전시장을 직접 찾은 순간, 나는 이 그림들을 둘러싼 아주 생생한 ‘감촉’ 앞에 멈춰섰다.


그림은 단지 보는 것이 아니었다. 느끼는 것이었다.

가까이 다가서면, 세상이 열린다.


멀리서 보면 인테리어 벽지 같기도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세상이 열린다.

전시를 보고 나온 뒤 가장 먼저 떠오른 내 마음의 문장이었다. 작품은 전반적으로 평면적인 구도와 균일한 색면을 갖고 있다. 멀리서 보면 한 장의 깔끔한 디자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조심스레 한 발짝 다가가고, 고개를 살짝 기울여 옆에서 보게 되는 순간.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작품 위에 덕지덕지 쌓인 물감의 결. 칼날로 밀어낸 듯한 표면의 질감. 그리고 그 거칠고 자유로운 물감 위에 정밀하게 자리한 아주 작은 사람들. 이 대비는 화면 안에서 마치 두 개의 시간이 교차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하나는 즉흥적이고 감각적인 창작의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정교하고 세심한 조율의 시간이다. 그 두 시간이 한 공간 위에 겹쳐지며, 우리는 그 틈을 ‘감상’한다.


AI와 사람, 예술의 갈림길에서


이 전시를 보며 나는 자연스럽게 요즘 자주 떠오르는 질문을 떠올렸다.

‘앞으로 그림은 AI가 다 그리는 것 아닐까?’

‘사람이 그린 그림과 AI가 만든 이미지의 차이는 무엇일까?’


워너 브롱크호스트의 그림을 보며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나만의 대답을 찾았다.

두터운 물감의 질감 속에서 느껴지는 손의 떨림, 리듬, 강약과 흐름은 AI가 흉내 낼 수 없는 생생한 생명의 표현이라는 것.


AI는 정교할 수는 있어도, 우연을 품을 수는 없다. 예측 가능한 아름다움을 제공할 수는 있어도, 예기치 못한 감정을 건드리지는 못한다. 워너 브롱크호스트의 그림은 그 생생한 감각의 밀도를 품고 있다. 마치 작가가 손끝에 고개를 기울여 ‘여기쯤’이라고 찍어낸, 정답 없는 감각의 응답들.


그림 속 인물들은 아주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다. 하지만 그 작은 존재들이 거대한 물감 위를 미끄러지고, 뛰고, 자전거를 타고, 수영을 하며, 우리 삶의 축소판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그것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또 다른 방식으로 통찰하는 시선이었다.


예술은 결국, 사람을 향한다


전시장을 걷다 보면 문득, 내가 이 안에 들어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관람객은 작품을 ‘보는 사람’에서 ‘작품 안의 인물처럼 존재하는 사람’으로 점차 바뀐다.

잔디가 깔린 섹션에 들어서면, 실제로 바닥의 촉감을 느낄 수 있고, 수영장 존에 들어가면 시원한 색감이 공간을 감싼다. 어떤 작품은 거대한 붓질이 된 벽과 사람만큼 커다란 설치물로 구성되어 있어, 관람객이 거대한 붓질 한 획 안에 서 있는 느낌을 준다.


온 세상이 캔버스라면, 우리는 어디쯤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그림 속 작은 사람들처럼, 우리도 거대한 흐름 위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전시는 단지 시각적인 자극만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우리 일상과 정서를 곱씹게 한다.

그리고 그 정서의 무늬는, 결국 사람이 만든 것이다. 사람의 손, 사람의 감정, 사람의 시선으로.


“캔버스는 결국 삶의 비유였다”


워너 브롱크호스트의 그림은 말하고 있었다.

‘예술이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당신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장면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고.


우리는 종종 ‘예술’을 어려운 것으로, 분석하고 해석해야 하는 것으로만 생각하지만 이 전시는 그 벽을 무너뜨린다. 그냥 보고, 느끼고, 웃고, 걷고, 감탄하면 된다. 그러다 문득, 내 일상에 묻어 있는 감정의 색감과 연결된다.


AI의 시대가 오고, 모든 게 효율로 재편된다고 해도.

이런 그림 한 장 앞에서,

손으로 덜컥 그린 듯한 색면 위에 놓인 ‘한 사람의 감정’을 보며 웃고 울 수 있다면,

그것이 진짜 예술일 것이다.


#질문노트 #전시추천 #감정코칭


@mind_gr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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