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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색을 되찾는 여행

잊고 있었던 기억의 문

by 두유진

하루와 회색의 기억


하루는 어릴 적부터 모든 기억을 회색으로 떠올렸다.

사람들은 “추억을 떠올리면 따뜻한 색이 떠오르지 않아?“라고 묻곤 했지만, 하루의 머릿속엔 오직 흐릿한 회색빛만이 가득했다.

웃었던 순간도, 울었던 순간도, 기뻤던 일도 모두 흐릿했다.

마치 색을 잃어버린 흑백 사진처럼.


하루는 언제부터 색을 보지 못하게 된 걸까?


그것은 아주 오래전, 하루가 마음 깊이 묻어두었던 기억 때문이었다.


잊고 있던 기억의 문


어느 날, 하루는 소아를 만났다. 색을 잃은 아이.

그리고 그 아이를 도와 색을 되찾아주는 ‘치유의 미술관’에서 하루는 한 그림 앞에서 멈춰 섰다.


거기에는 흐릿한 회색으로 덧칠된 한 장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무슨 그림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가만히 바라보던 하루의 가슴 속에서 이상한 감정이 꿈틀거렸다.


“이 그림… 어디선가 본 것 같아.”


그 순간, 하루의 기억 저편에서 잊고 있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감춰진 기억 속으로


그는 조용한 방 안에 앉아 있었다.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방 안은 너무나 조용해서, 마치 소리마저 사라진 듯했다.

어린 하루는 꼭 껴안은 무릎 위로 얼굴을 묻고 있었다.


어떤 사건이 있었던 걸까?


그 기억 속에서, 하루는 깊은 상처를 받았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감정을 꾹 눌러 담은 채, 시간이 지나면 잊힐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상처는 그의 기억 속에서 색을 하나둘 지워버렸고, 결국 모든 기억이 회색으로 변해버렸다.


기억을 바라볼 용기


하루는 조용히 눈을 감고 그때의 자신을 마주했다.

이제는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그때의 감정, 외로움, 슬픔, 억울함, 두려움…

모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그때의 나는 충분히 아팠고, 충분히 힘들었어. 하지만 나는 이제 그 기억을 그대로 바라볼 수 있어.”


그 순간, 흐릿했던 회색의 기억 한가운데에서 작은 색이 피어났다.


빗속에서 빛나는 노란빛. 따뜻한 햇살 같은 색이었다.


새로운 색을 입히는 삶


그날 이후, 하루는 과거의 기억을 덮어두는 것이 아니라, 담담하게 바라보고 흘려보내기로 했다.


더 이상 그 기억이 하루를 지배하지 않도록.


그리고 그는 조금씩 자신의 삶에 색을 입히기 시작했다.

소아와 함께 그림을 그리고, 따뜻한 순간을 담아내고,

웃을 때는 밝은 오렌지색을, 눈물이 날 때는 맑은 푸른색을 떠올렸다.


그의 삶은 더 이상 회색이 아니었다.


이제 하루는 알았다.


“슬픔이 있어도 괜찮아. 기쁨이 있으면 더욱 좋아. 나는 다양한 감정 속에서 나만의 색을 찾아가며 살아갈 거야.”


하루의 세계는 다시 다채로운 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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