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불시 검문이 시작되었다. 이 한 마디에 나는 머뭇거린다. ‘뭐라고 말해야 하지?’ ‘종종 듣는 말인데도 왜 항상 나는 준비되어 있지 않을까?’ 내 입에서 “그냥 좋은 거지, 뭐.”라는 무미건조한 말이 나오자 아내는 뾰로통하다. 나도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데 아내 반응이야 안 봐도 척이다.
참으로 어려운 질문이다. ‘네가 예뻐서’라고 하면 될까? 그러면 너무 외모만 보는 것 같다. 왠지 만족스러운 대답은 아니다. 아니면 ‘네가 날 잘 이해해줘서?’ 근데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면이 많은데, 간혹 서로 이해가 되지 않아서 다투는데 아내가 믿지 않을 것 같다. 왠지 거짓말을 하는 듯한 묘한 죄책감이 든다. ‘그냥 너여서 그렇지.’ 내가 좋아하는 빌리 조엘의 노래 ‘Just the way you are(당신 모습 그대로)’는 현실에서 먹히지 않는다. 적어도 매번 인공지능 알파고처럼 말하는 나, 그리고 그런 나를 아는 아내에게는 먹히지 않는다.
이번엔 내가 아내에게 질문해본다. 소심한 반격이다. “너는 그럼 내가 왜 좋아?” 아내는 “아니야, 됐어.”라고 토라진다.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나는 아내의 대답을 속 시원히 듣지 못한 것 같다. 아니, 들었는데 잊어버렸을까? 음, 그러면 더 큰 문제인데.
우리는 듣고 싶은 말을 상대방으로부터 듣기를 원한다. 내 속내는 숨긴 채 상대방이 ‘딱’ 알아주기를 원한다. 기대한 만큼 실망한다. 실망한 만큼 화가 난다. 어떤 대답을 해도 만족하지 않는 아내에게 간혹 화가 나기도 했다. ‘나보고 어쩌라고?’라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이성의 힘으로 그 욕구를 억누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사실 나도 억울하다. 나도 아내가 ‘딱’ 알아줬으면 한다. 아내를 향한 내 사랑의 크기는 감히 형언할 수조차 없을 만큼 넓다는 사실을! 다만 표현이 서툴고(그래서 실제로 형언하지 못한다) 불시 검문에 잘 대처하기 위해 필요한 순발력이 약하다. 또한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기에 크게 고민하지 않을 뿐이다. 숨 쉬는 공기가 왜 내게 필요한가를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것처럼.
그런데 잘 생각해보니 나에게 화나고 억울하다는 감정만 있는 게 아니더라. ‘오빠는 내가 왜 좋아?’라고 나에게 물을 때 아내의 기대감과 내 대답을 기다리며 약간의 불안감, 그리고 내 대답을 들을 후 아내의 실망감과 섭섭함도 같이 느껴진다. ‘사랑받길 원하는 아내’와 ‘채워 주지 못하는 남편’이 만났다. 별생각 없이 사는 나야 그래도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지만 갈구하는 사람은 애가 탄다. 아내에게 새삼 미안해진다. 못난 남편에게 그래도 계속 물어봐주니 고마운 마음도 든다.
내가 순발력이 떨어지기에 이 글을 통해 아내에게 질문의 답변을 전하려 한다. ‘부족한 나에게 그 질문을 계속해줘서’라고. 그리고 여전히 나를 사랑해 주어서 고맙다고. 약간 진부하지만, 항상 ‘당신 모습 그대로’ 있어 달라고.
P. S. 음, 과연 이번 대답의 점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