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연휴를 맞아 친정인 부산에 내려갈 준비를 한다. 캐리어에 짐을 싸고 드라이하고 화장을 한다. 그런데 이미 11시 30분이다. 12시 30분 출발 열차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집에서 수서역까지 지하철을 타면 30분 정도가 걸리니 내 마음은 조급하다. 이번에는 아내 혼자만 부산에 내려가는데 정작 내가 시간에 쫓기는 듯하다. 오히려 아내는 요란한 드라이 소리 속에서도 콧노래를 부른다. 어찌나 저렇게 여유가 있는지 나에게는 아내의 모습이 신기할 따름이다.
콧노래를 끝내고 나서야 아내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는다. 열차 시간 맞추기가 간당간당한다는 것을. “어머, 늦었다. 지하철역까지만 태워다 줄 수 있어? 열차를 놓칠 수도 있겠는데.” 아내의 짧은 부탁에서도 아내의 내적 갈등이 내게 보인다. 아내는 내가 수서역까지 자신을 태워다 줄 것을 바란다. 하지만 토요일 12시, 이미 차량 정체가 시작되었기에 차보다는 지하철이 빠르고 안전하다. 그래서 아내는 자신의 바람은 억누르고 집 근처 역까지로 타협한 듯싶다. 또한 조금 더 일찍 준비하지 못한 아내 모습을 내가 못마땅해한다는 것도 느껴서 차마 수서역까지는 이야기하지 못한 듯싶다.
“그래”라고 나는 쿨하게 이야기한다. 이미 아내와 함께한 시간이 1년이 넘지 않는가? 아내의 느긋한 성격은 잘 알고 있기에 아내가 나에게 부탁하기 전부터 이미 나는 아내를 근처 지하철역까지 태워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역시 난 괜찮은 남편이야.
그때까지만 해도 좋았다. 하지만 아내가 차를 타고 이내 “아, 내 핸드폰 어딨지?”라고 말하자 내 마음이 불편해진다. 약간 짜증이 난다. 다행히 핸드폰을 가져왔다는 것을 알고 아내와 나 모두 안심했지만, 이미 감정이란 호수 위에 조약돌 하나가 던져진 이후다. 하지만 난 괜찮은 남자 아닌가? ‘미리미리 준비 좀 하지’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리고 다행이라고도 말해주면서 내가 괜찮은 남자라는 것을 아내에게 알린다.
아내를 역에 데려다주고 집에 도착해서 꽤 괜찮은 남편인 나는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역에 잘 도착했는지, 혹시라도 늦지 않았는지 물어본다. 다행히 아내는 열차를 놓치지 않았다. 아내에게 조심히 내려가라고 한다. 이때 문제가 발생했다. 내가 한 마디를 더 붙였기 때문이다. “다음부터는 조금만 더 일찍 준비해 보자. 매번 시간에 쫓기면 힘들잖아.” 아차 싶다. 핸드폰 너머 잠깐의 침묵은 나에게 많은 걸 알려준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한 내가 괜찮은 남편에서 잔소리 남편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느긋한 여자와 서두르는 남자. 서두르는 남자는 아내가 답답하다. 아내는 매번 시간에 쫓기면서도 준비가 늦다. 아내는 도착지까지 걸리는 시간을 항상 최소 시간으로만 설정한다. ‘혹시라도 중간에 차가 막히면 늦잖아?’라고 남편은 말한다. 반면 느긋한 여자는 남편이 갑갑하다. 남편은 아내에게 준비도 안 되었는데 늦는다고만 한다. 남편은 도착지까지 걸리는 시간을 항상 최대 시간으로만 설정한다. ‘그리고 좀 늦으면 어때?’라고 아내는 말한다.
서로의 시간이 다른 속도로 흐른다. 그래서 서로가 편하게 느끼는 여유 시간이 다르다. 그 차이를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있다. 그래서 남편은 잔소리를, 아내는 화를 내곤 한다. 하지만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면, 그래도 각자의 시간 흐름 속도가, 각자가 편하게 느끼는 여유 시간이 점점 비슷해지고 있다. 1년 전보다 나는 조금 느긋해지고 아내는 서두른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한다는 점이, 그리고 그 차이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 아내와 내가 같이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이자 그 결과이다. 가끔은 서로에게 잔소리하고 화내겠지만, 너와 나의 느긋함과 서두름을 맞춰가는 과정을 우리는 계속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