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초등학교 교실 안의 아이들이 시끌벅적하다. 유난히 눈에 띄지 않았던 고요한 나는 딱히 하는 일 없이 책상에 앉아있었다. 친구와 수다를 떠는 것도 아닌 지루한 이 쉬는 시간이 어서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전부인 것 같은.
그날은 7일이었다. 내 번호의 끝자리와 같은 날. 일자와 같은 번호를 가진 아이들은 언제든 이름 대신 번호가 불리며 그날 풀어야 할 문제와 발표할 것들에 대해 무방비로 노출되는 날이었다. 나는 7이 행운의 숫자라고 떠든 사람에게 따지고 싶었다. 공기 중에 부유하는, 먼지와 같은 나는 살아있었으나 살아있지 않은 듯했고 항상 그 자리에 있었으나 있지 않은 듯했다.
수학시간, 차례로 문제를 풀어야 했다. 7번, 17번, 27번…. 37번인 나는 어김없이 이름 대신 번호가 불렸다. 한참을 칠판 앞에서 분필을 잡고 길을 잃은 양처럼 어느 곳에 적을 두어야 할지 헤매고 있었다. 친구들은 문제를 쓱쓱 풀더니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나는 썼다 지우기를 수십 차례 반복하며 방망이질하는 심장을 겨우 부여잡고 달아오르는 얼굴을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그럴수록 눈앞에 있는 숫자는 더는 숫자가 아니었다. 빠져나오려 하지만 허둥댈수록 더 깊이 빠지는 늪과 같은. 풀이 과정은 더욱더 해괴해지고 답은 당연히 틀렸다.
선생님은 한없이 쳐다보더니 애먼 분필을 만지작거리는 내게 그만하라고, 자리로 돌아가라고 했다. 친구들의 시선이 종아리에 호되게 매질을 당한 것처럼 얼얼했다. 유독 나의 자리는 멀었고 공부를 꽤하는 짝의 표정은 아무 것도 읽히지 않았다.
다음 날도 수학 시간에 불려 나갔다. 문제를 푸는 친구들의 번호는 매일 달랐고 나의 번호만 고정값이었다. 매일 실패하고 매일 공포와 수치심이라는 괴물에 사로잡혀 '과연 이 학년을 제대로 마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달고 살았다. 먼지 같은 나에게 먼지 같은 날들이 뿌옇게 흘러가고 있었다.
어느 날 선생님은 나를 불러 자신의 컵을 닦아달라고 했다. 컵 닦이는 수업 전 아침 일찍 마쳐야 하기에 책임감이 동반되는 일이다. 나는 선생님이 왜 이런 일을 내게 시키는지 의아했지만 동시에 기뻤다. 아침마다 학생들을 대표해서 컵을 닦고 가지런히 놓는 것이 자랑스러웠지만 그렇다고 수학 문제 풀이가 제외되는 것은 아니었다. 뿌듯함과 좌절감이 반복되었다.
어느 날, 처음으로 수학 문제를 푸는 데 성공했다. 선생님의 환한 미소를 본 것도 처음이었다. 매일 컵을 닦으며 오물을 닦아낸 것처럼, 매일 수학 문제를 풀며 해결 과정의 오점을 덜어내었다. 선생님은 컵 닦는 작은 일로 나의 성취감을 키웠고, 문제 풀이도 이와 같다는 것을 알려주신 셈이다. 처음으로 검푸른 바다 깊은 곳에서 까무룩 숨어있던 내가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