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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타 Apr 11. 2023

말 센스를 장착하시겠습니까?

- 너와 나, 우리 사이에 있는 긴장 해소법


"이디야, 어디야?"

"…"

"…풋!"


점심시간, 밥 먹고 커피 한잔하려는 사이 나의 실없는 말장난에 동료들이 코웃음을 친다.


"OO님, 차장님이랑 잘 맞으실 것 같아요."

"네?"

"차장님이랑 코드가 잘 맞으실 것 같다고요."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인가.

차장님이라면, 50대 중반의 결혼 안 한 독신녀다.

시시때때로 이상한 농담을 하는 양반인데, 꼰대 성질이 다분하다.

그녀의 말을 듣고 있자면 '아재 개그다,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그쪽으로 천재'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안 웃어주면 속이 배배 꼬여 응급실에 실려 갈 것 같은, 배배 꼬았던 속을 차곡차곡 모아놨다가 배로 갚는 독한 영장류 아니, 신인류.



근데, 내가 차장님과 코드가 같다고? Oh, my god.



"무슨 소리예요. 아니지… 에이, 큰일 나지."

눈치를 쓱 보니 다들 그녀의 말에 동조하는 것 같다.

기분이 이상하다, 아니 이상하게 나쁘다.








나는 누가 조금만 웃겨도 웃음이 난다.

그냥 조용한 웃음이 아니라, 큰 소리로 시원하게 웃는다.

아재 개그든, 신인류의 개그든 그냥 재밌는 걸 어떡해.

나는 유머러스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확실하다.






내 생각에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상위 수준의 대화법은 유머인 것 같다.

이것은 적절한 상황에서, 상대의 기분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타이밍을 포착하여 뱉는 고도의 언어전략이기 때문이다.

찰나의 순간에 던지는 유머는 순간을 포착하는 센스, 탁월한 언어 감각,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기저에 깔려있다.

이는 사람이 여유로울 때, 편안할 때 자연스레 나오는 말이므로 사람들 사이의 긴장을 낮추고 대화의 마디마디에 쉼표를 찍어주는 역할을 한다.

또 거울효과로 웃는 사람을 보면 기분 좋게 따라 웃고 싶어진다.

웃으면 고통을 줄여주는'엔돌핀'의 분비를 도와 스트레스도 감소된다.






한편 들으면 웃음이 나지만, 생각해 보면 기분 나쁜 농담이 있다.

예를 들면 상대를 낮추면서 웃음을 유발하는 말, 저속한 언어로 억지웃음을 유발하는 말, 아슬아슬하게 경계선을 넘나들며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말 등이다.


예를 하나 들어본다.



어느 의대에서 의학부생들이 물리학 강의를 듣고 있었다. 한 학생이 질문했다.

“왜 의대생들이 물리학을 배워야 합니까?”
“생명을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물리가 인간의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까?”

학생이 다시 묻자 교수가 대답했다.
“물리학은 너와 같이 머리 나쁜 학생을 의대에서 내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불신과 절망이 숨어있는 ‘블랙유머’의 한 예이다.

이 유머를 들었다면 큰 웃음은 아니더라도 대부분 작은 코웃음 정도는 지었을 것이다.

이처럼 웃음은 항상 유쾌하고 즐겁고 행복할 때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보다 심하게 우울하고 인간의 내면 중 추악한 부분을 들추는 블랙 유머들에도 우린 웃음을 짓는다.



내 생각에는 이런 말들은 건강한 유머라기보다 지나가는 농담에 불과하다.

적절히 흘려버려야 하는 것이다.

때로는 기분 나쁨을 정확하게 표현해야 하는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유머인 줄 알고 무례하게 계속 뱉는다.

모르면 알려줘야 하고, 성정이 원래 그러하면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따라서 시간, 장소, 상황에 맞는 적절한 유머 감각은 최고의 매너이자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이다.

이런 사람들이 곁에 있으면 부자가 된 것 처럼 든든하다.

무의식중에 '좋은 사람, 신뢰감 있는 사람'이라고 절로 각인된다.

나는 얼마나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주고 기분 좋게 대하고 있나?

확실히 꼰대 성향의 유머는 버려야겠다.



이디야, 아니야… (이것은 라임이라 우기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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