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 한림대 심리학과 대학원 박사과정
우리가 표정을 읽는 데 있어 어떤 표정인지를 지각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있다. 바로 표정의 진위를 파악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표정의 진위는 어떻게 파악되는 것일까.
그의 웃음일까, 나의 착각일까
오랜만의 외출, 모자를 푹 눌러쓰고 편의점에서 막 나오던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와우. 어디서 용기가 생겼는지 나도 모르게 연락처를 물어보고 말았다! 그가 나를 향해 미소 지으며, 내 번호를 알려주면 먼저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미소를 믿은 나는 덥석 나의 번호를 주고 말았다. 그리고 이틀 뒤, 수많은 생각에 나는 내내 핸드폰만 붙들고 있다. 그 미소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의 연락을 받을 수 있을까? 그런데 왜 텔레마케팅 전화는 갑자기 많이 오는 것일까...
사람들은 공동생활을 하며 살아간다. 이런 공동생활에서 내 옆에 있는 사람의 내적 상태를 빨리 알아차리는 것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사람이 나에게 충분히 우호적인 상태인지 아닌지, 나의 요청을 상대가 들어줄지, 또는 나의 도움이 그 사람에게 더 필요한지 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사람의 시각 정보처리 기제는 얼굴의 표정을 처리하는 빠르고 정확한 방식을 가지고 있고, 그 결과 우리는 얼굴 구성 요소들의 작은 변화나 차이만으로도 슬픔이나 고통스러움 등의 표정을 구별해낼 수 있다.
이와 같은 얼굴 표정 지각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는 눈, 코, 입과 같은 얼굴을 구성하는 요소들과 주변 근육들의 움직임일 것이다. 하지만 표정 지각은 단순히 얼굴 내의 정보만을 사용해서 얻어지지는 않는다. 얼굴 표정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 주어진 상황, 맥락적인 정보들 또한 고려하게 되기 마련이다.
진짜 미소와 가짜 미소
그런데, 바로 이 ‘상황’에 대한 정보를 해석하는 데 문화권에 따른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아마도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이다. 2013년 EBS <다큐 프라임>에서 동양과 서양의 시각 차이를 주제로 다양한 테스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모든 테스트에서 동양권 사람들은 조화, 배경, 관계를 중요시한 대답을 선택한 반면, 서양권 사람들은 요소, 전경, 개인을 강조한 대답을 선택하였다. 이처럼 일반적으로 동아시아권 사람들이 상황적, 문화적 맥락에 영향을 더 많이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경향은 표정 지각에서도 나타나는데, 실제로 다양한 연구들에서 북아메리카 사람들보다 동아시아권에 속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표정을 지각할 때 주변 상황에 영향을 받기 쉽다는 연구 결과를 검증해왔다.
그런데 우리가 표정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표정 지각만큼 중요한 일이 있다. 바로 표정의 진위를 파악하는 일이다.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에서 표정의 알아차리는 일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상대방이 나에게 보여주는 표정이 진실한지를 구별해내는 일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미소가 진실한지를 구별하는 일은 상대가 나를 위협할 생각이 없으며, 상대에 대한 경계를 풀어도 되는지를 결정하는 것과 같이 나의 안전과 직결된 중요한 정보를 확인하는 과정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에게는 생각보다 가짜 미소와 진짜 미소를 잘 구별할 수 있는 능력(?)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미소의 진실성을 판단하는 데도 위에서 언급한 문화권의 영향과 동일한 기제가 적용될 수 있을까?
문화, 자극을 해석하는 눈
최근 진행된 한 연구에서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제시된 미소의 진위를 판단하는 과제에서 문화권에 따른 차이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연구진들은 사람들이 미소의 진위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맥락 정보를 이용할 것이며, 특히 동아시아권에 속한 사람들이 맥락 정보의 영향을 보다 강하게 받을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연구진들은 먼저 각각 20명의 코카시아인(백인), 동아시아인의 미소가 담긴 사진을 제작하였다. 이 사진 속 사람들의 미소는 실제 재미있는 영상을 보여준 후에 얻은 자연스러운 표정이었다. 동아시아인 83명, 북아메리카인 72명, 총 155명의 참가자들은 각각 미소가 담긴 사진만 제시되는 집단, 사진이 긍정적인 상황과 함께 제시되는 집단, 사진이 부정적인 상황과 함께 제시되는 집단에 무선적으로 할당되었으며, 제시된 사진 속 미소의 진실성 정도를 리커트 5점 척도 상에 평가하도록 요청받았다.
연구 결과, 인종에 상관없이 모든 참가자들은 미소의 진실성을 평가할 때 맥락 정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긍정적인 상황보다는 부정적인 상황에서 제시된 미소의 진실성을 더 낮게 평가하였다. 그러나 연구자들의 예측과는 달리 코카시아인집단이 동아시아인 집단보다 부정적인 상황에서 미소의 진실성을 훨씬 더 낮게 평가하여, 맥락의 정보에 더 많이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헷갈린다면, 맥락을 살펴보라
연구자들은 이에 대해, 앞서 설명했듯이 서구권은 맥락과 대상을 분리시키는 경향이 있는데 상황적인 정보가 뚜렷할 때, 대상보다 상황을 보다 더 의미 있는 진단 정보로 채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서구권 사람들이 얼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미소’라는 정보원 보다 맥락 혹은 상황이라는 다른 정보원을 과제에 더 필수적인 정보로 파악했을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맥락 정보에 의해 영향받는 정도가 동양인보다 적다고 알려진 서구권 사람들도 표정의 진실성을 평가하는 경우에서는 동양인보다 맥락 정보를 더 적극적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제시된 대상을 지각하는 과정에서 전 인류가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특성이 있다는 인지 균일성의 법칙을 넘어, 문화권에 따라 맥락 정보의 영향력이 미치는 크기가 상이하다는 기존의 연구들은 지각 과정에서 인지 과정의 영향을 보여주었다는 큰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문화권의 차이는 단순하게 동양권의 사람들이 서양권의 사람들보다 맥락 정보에 더 영향을 받는다는 단순한 설명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본 연구는 보여주고 있다. 예외가 없을 것 같았던 연구 내용, 신념들도 이렇게 새로운 결과와 해석이 생기는 것을 보면서, 앞으로 심리학이라는 분야에서 발전되고, 해결해 나가야 하는 연구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mind
<참고문헌>
Mui, P. H., Gan, Y., Goudbeek, M. B., & Swerts, M. G. (2020). Contextualising Smiles: Is Perception of Smile Genuineness Influenced by Situation and Culture. Perception, 49(3), 357-366.
이수진 한림대 심리학과 대학원 박사과정
한림대 대학원 심리학과 박사 과정 재학 중. 매력, 시청각연합과제, 시지각학습과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덕질의 연구화를 모토로 삼고 있는 한림대 지각심리연구실 구석에서 제가 좋아하는 드라마와 이야기를 지각심리학 영역으로 끌고 들어올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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