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받는 날 (1)
토요일 아침 7시면 저는 외출 준비를 합니다.
9시에 병원 문을 여는데, 9시가 되면 벌써 진료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병원을 가득 메우고 있어 어머니 약을 받기 위해서는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줄 서서 순서를 기다리는 것을 몹시 싫어하는 저는 차라리 일찍 가서 기다리는 편을 택합니다.
병원에 도착하면 8시 정도가 되고, 예상했던 대로 저는 대기 번호 2를 받습니다.
대기 번호 1번은 항상 저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모녀 두 사람의 차지이니까요.
처음에는 딸의 진료 때문에 오는 줄 알았는데, 가만히 보니 어머니도 같이 진료를 받는 것 같습니다.
저는 혼자서 딸의 병 뒷바라지를 하다가 어머니도 병에 걸린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저 두 사람에 비하면 내가 참 행복한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토요일마다 병원을 방문하는 저의 모습을 보던 간호사가 저를 불렀습니다.
매주 똑같은 약을 타러 오는 것 같은데, 어머니처럼 치료가 불가능하고 처방도 똑같은 환자라면 굳이 와서 기다릴 필요 없이 전화로 먼저 주문을 하고 와도 된다고요.
그 다음 주에 저는 진료실에 들어가 의사에게 물었습니다.
오랫 동안 어머니의 증상에 변화가 없는데, 만일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굳이 진료를 받지 않고 약을 처방받을 수 있겠느냐고요.
의사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그러라고 합니다.
대신에 조금이라도 증상에 변화가 있으면 꼭 얘기를 해 달라고요.
그때부터 저는 편한 날 전화로 약을 주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약을 받으러 갈 수 있는 날 아침에 병원에 전화를 걸어 약을 주문하겠다고 말하면 간호사는 저에게 묻습니다.
"환자 분 성함과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세요?"
저는 어머니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얘기해 주고, 간호사는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습니다.
병원은 저녁 7시에 문을 닫지만 저는 5시 정도에는 도착을 해야 합니다.
약을 받아서 보호센터에 가져다 주어야 하거든요. 보호센터는 6시 20분에 문을 닫으니까요.
병원에 도착해서 어머니 이름을 말하면 오전에 전화로 주문한 약을 내어줍니다.
저는 약을 받으면 제일 먼저 봉투를 열어 약의 개수를 세어봅니다.
봉투 안에는 7봉지의 약이 들어있죠.
일요일에는 제가 약을 먹여드려야 하므로 저는 한개를 뜯어내어 주머니에 넣고 보호센터로 향합니다.
서둘러 보호센터에 가면 아직 어머니가 계시지만 저는 어머니 몰래 약을 전달하고 돌아서 나옵니다.
언젠가 한번 약을 가져다 주는 모습을 어머니께 들킨 적이 있는데 그때 어머니는 제가 회사를 그만 둔 거냐고 깜짝 놀라셨거든요.
약을 배달하러 온 것으로 착각을 하신거죠.
그래서 그 뒤로는 보호센터에서 어머니를 마주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합니다.
약을 전해주고는 저는 버스를 타고 재빨리 어머니 댁 앞으로 향합니다.
잠시 후에 보호센터 차가 도착하고, 어머니가 내리십니다.
저는 재빨리 어머니에게 다가가 팔을 잡고 부축해 드립니다.
어머니는 갑자기 나타난 저를 보고 깜짝 놀라시지만 얼굴에는 금방 자랑스러운 미소가 피어오릅니다.
어머니는 그 미소를 통해 보호 센터 직원과 친구 분들에게 이렇게 얘기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 아들이야. 일이 바쁠텐데도 애미 얼굴 한번 보겠다고 뛰어왔나 봐.'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