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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mnsee Nov 26. 2019

위인전에 대하여

월트 디즈니의 추억

10살 무렵, 아버님의 사업이 갑자기 기울어 경제적으로 몹시 힘들게 되었다. 그 전에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던 나를 위해 어머니께서는 책을 아끼지 않고 사주셨는데, 그중에는 12권짜리 세계 위인전과 50권으로 구성된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도 있었기에 더 이상 새 책을 사는 것이 어려워진 후로는 그 책들을 여러 번 읽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곤 했다.


위인전도 대여섯 번 반복해서 읽었는데 나중에는 책을 읽기보다는 위인들의 삶을 평가하고 감상하는 수준에 도달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가장 닮고 싶은 위인을 나름의 기준으로 골라 보기도 하였다.


우선 신계의 위인들이 있었다. 소크라테스, 공자, 예수, 마호메트같이 많은 사람들의 철학이나 삶의 목표를 좌우할 수 있는 분들이었는데, 나는 그런 분들처럼 될 자신도 없었거니와 그런 분들이 부럽다는 생각도 전혀 들지 않았다.


그다음으로는 지배형의 위인들이 있었다. 칭기즈칸, 한니발, 나폴레옹, 알렉산더같이 방대한 영토를 정복하고 지배자가 된 위인들인데, 역시 그런 분들도 전혀 부럽지 않았고 흉내 내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또 천재형의 위인도 있었다. 아인슈타인이나 에디슨, 파스퇴르, 퀴리부인 같은 분들인데, 나는 내가 천재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한 적이 없었기에 이런 위인을 본받고 싶다는 꿈조차 꿀 수가 없었다.


다음으로는 소유형의 위인들이 있었다. 카네기, 록펠러같이 오로지 자신의 노력만으로 엄청난 재산을 모은 사람들이었다. 이런 분들도 따라 할 의욕과 자신감이 생기지 않았다.


데레사 수녀나 슈바이처 박사는 베풂의 위인이었다. 자신의 삶과 안락을 다 버리고 보다 어려운 다른 이들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당연히 이런 분들도 나의 롤 모델이 되기에는 너무도 높고 먼 곳에 있었다.


결국 내가 유일하게 본받고 싶은 위인으로 남은 것은 딱 한 사람, 월트 디즈니였다. 엄청 노력한 사람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하늘이 내린 천재는 아닌 것 같고, 남들을 괴롭히거나 남의 것을 빼앗은 적이 없는 창조형, 창의형 인재이고, 또 어린이들에게 꿈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미키마우스와 도널드 덕같은 캐릭터를 만들어 내었으며 또 스스로도 부자가 되었으니 내 삶의 모델이 되기에 모자람도 넘침도 없는 위인이었다.


그 후에 월트 디즈니의 궤적을 따라보려고 특별히 노력한 적은 없지만 힘들고 지칠 때마다 월트 디즈니가 부럽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그러다가 30살 즈음에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나… 월트 디즈니가 엄청난 악덕업주였다는 것이다. 완벽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절대로 본받아서는 안 될 인물이었다니…


그 후론 위인전을 믿지 않게 되었고 아이들에게도 굳이 위인전을 사 주거나 위인을 본받으라고 이야기한 적은 없는 것 같다.

나보다 더 성실하고 착하게 사는 내 친구도 따라가지 못하는 내가 감히 위인을 본받겠다고 결심한 것도 우습거니와, 위인전에 실으려고 어떤 사람의 삶을 열심히 포장한 작가의 결과물을 믿고 고민하고 자책한 세월이 아깝기도 하였다.


진정한 위인은 우리 이웃집에 산다는 것이 요즘 내가 내린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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