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의 유효기간
확실히 일류대학 졸업장은 취업에 도움이 됩니다. 일류대학을 졸업한 사람이라면 굳이 같이 생활을 해 보지 않더라도 지능이 뛰어나고 성실하고 인내심이 있으며 규칙을 더 잘 지킬 것이라는 긍정적인 기대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리고 성적이 뛰어난 학생들끼리 모여서 생활하다 보면 서로에게 자극이 되어 공부를 하거나 자기 계발활동을 할 때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솔직히, 일류대학 졸업장이 개인에게 약점으로 작용하는 경우를 상상하기란 힘듭니다.
20세기에는 일단 직장에 입사를 하면 이변이 없는 한 대부분 정년까지 한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최소한 전혀 다른 산업 분야로 진출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결국 대학 졸업장은 일생에 걸쳐 막대한 영향력을 끼쳤고 따라서 일류대학 입학에 청춘을 바치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상황이 전혀 달라졌습니다.
산업과 시장은 계속 다가오는 변화를 맞이하며 불안정해지고 있고, 아무리 대기업에 입사했다고 해도 주력 사업과 제품은 계속 변화하므로 한 업무만 담당하거나 한 부서에서만 근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운 좋게 안정된 직장을 확보했다 하더라도 그 자리를 뛰쳐나와 스스로 변화의 속으로 뛰어들어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여하튼 이제는 평생직장이란 개념은 거의 사라지고 우수한 능력을 갖춘 인재는 수시로 직장을 옮겨 다니는 것이 일반화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직장을 옮기는 것은 단점보다 장점이 많은데, 우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 유능한 인재들과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 세상의 변화를 예측하고 대응할 수 있는 넓은 시야를 갖출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장점이 있습니다. 일도 하고 돈도 벌고 능력도 기르며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으니 좋은 기회가 생기면 직장을 옮겨다는 것을 나무랄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직장을 옮길 때 일류대학의 졸업장은 얼마나 가치가 있을까요? 아마 3년 이상의 경력자를 채용할 때는 출신 대학이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즉, 경력자를 모집할 때는 프로젝트 참여 실적과 역할, 성과, 주변의 평판 등이 중요하지 어느 대학을 졸업했느냐는 것은 하등의 고려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신 대학을 아주 중요하게 고려하는 경우가 있겠지만 저는 그런 회사는 오래도록 성장하며 존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일류대학에 올인하는 것은 현명한 결정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공부를 잘하는 아이의 성적을 끌어내릴 필요는 없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성적이 올라가지 않거나 다른 것에 재능을 보이는 아이를 억지로 공부 쪽으로 밀어 넣으려 하지 말고 냉철하게 판단하여야 합니다.
제가 회사 경영자라면 이런 인재를 원할 것 같습니다.
조직 내에 잠재해 있는 문제를 발견해 내고,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창의적인 방법을 생각해내며, 끈기를 가지고 팀원들과 협력하며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내고야 마는 인재.
이런 인재를 정의하는 용어가 기업가, 메이커 같은 것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