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모랫말 아이들, 황석영 (문학동네)
모랫말 아이들은 6.25. 전쟁 직후 모랫말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옴니버스식으로 구성한 한국소설이다. 소설은 줄곧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그래서인지 전쟁의 참혹함, 무자비한 현실이 오히려 생생히 와닿는다.
소설 속에는 작가의 어린 시절 자전적 경험들이 녹아들어 있다. 모랫말 마을에는 우리네들 인생 선배들이 겪었던 과거가, 참혹하리만치 잔혹하면서도 때 묻지 않은 천진난만한 그들의 어린 나날들이 있었다.
별이나 달이나 해는 아주 멀리서
가끔 지거나 뜨거나 사라지곤 했지만,
사람이 죽는 일은
늘 우리 근처 우리 동네 가운데 있었다.
전쟁이 할퀴고 간 현실은 비참하다. 다시 돌아간 고향 옛 흔적들은 포탄에, 인간의 무자비한 마음에 흔적도 없이 날아갔다. 잃어버린 고향의 흔적들, 꺼지지 않는 불길이 이어진 화장터, 불구가 되어 겨우 돌아온 상이군인들. 그들의 삶은 전쟁이 남긴 참혹한 상처들로 가득하다.
참혹한 폐허 속에서도 꽃은 핀다. 살아남은 자들은 삶을 계속해 나간다. 살아남기 위해 산다. 먹고살기 위해 산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산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전쟁을 겪은 지 100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우리보다 앞전 세대 사람들은 전쟁의 기억을 갖고 계실 것이었다. 전쟁의 참혹함을 책에서, 학교에서 배운 나로서는 멀고도 낯선 이야기로만 느껴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테러 소식이 들려온다. 북한의 연이은 도발이 간간히 뉴스에 등장한다. 우리나라에도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말이 조심스레 들려온다.
여기에 나오는 때는
전쟁 직후의 시절이다.
이제 그 어린이들은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암울하던 사정은
세대를 물려서 지금도 진행 중이다.
작가의 말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우리는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 암울한 현실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 우리들의 미래 세대들에게 어떤 세상을 보여줄 것인가.
우리는 모두 어린아이였던 시절이 있다. 천진난만하고 엉뚱한,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모든 것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이 지닌 지나친 순수함이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투명한 천진함이 어른들의 그릇된 편견 마저 의심 없이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비단 아이들이 잘못된 것일까.
이 소설은 부제로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말한다. 동화 속에는 언제나 교훈이 있다. 소설이 어른들에게 남기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일까?
당신은 전쟁이 막 끝난 최악의 상황 속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시선에서 무엇을 느꼈는가. 어른으로서 어떤 교훈과 마음가짐을 얻게 되었는가. 어른이 된 우리들이 다음 세대들을 위해 남겨야 할 조언은 무엇인가. 수많은 물음들이 마음속을 정처 없이 헤맨다.
전쟁이 온 마을과 거리를
휩쓸고 있을 때에는
사람들이 죽건 말건
아직은 두려울 겨를이 없었다.
차츰 산과 들판과 강이나 나무 숲에 대한
눈길이 되살아나고
어느 정도 아이다운 생활이
시작될 무렵에야
우리는 그때를 악몽처럼
깊숙이 간직하고 있는 걸 알아차렸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이 들판을 노닌다. 아이들은 전쟁놀이를 한다. 시체를 몇 날 며칠을 태우던 화장터에 담력훈련을 간다. 모랫말 아이들에겐 죽음이 너무 가까운 존재였다. 가슴속엔 깊은 트라우마가 남은 채 마을을 곳곳을 누빈다.
겪는 순간에는 막상 모른다. 모든 일이 지나가면 그제야 알아차린다. 그들의 악몽이 되풀이되지 않으면 좋겠다. 아무리 해도 언젠가 아쉬움이 남는 삶이지만 저들이 남긴 기억의 전이를 느끼고 이해하고 싶다.
지금 어른이 되어 나는 알고 있다.
삶은 덧없는 것 같지만
매 순간 없어지지 않는 아름다움이며
따뜻함이 어둠 속에서 빛난다.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작품 속에서 혼은 아기들에게 옮는 거라고 말했던 주인공 수남이처럼 우리들은 우리 부모님의 부모님을 거쳐 혼을 전달받았다. 그렇게 어른이 되었고 그렇게 삶을 영위하고 있다.
때론 막막하고 그만두고 싶다. 덧없고 의미 없다고 느껴진다. 그럼에도 삶은 아름답고 따뜻하다. 공감하는 마음과 따뜻한 시선이 주위에 있다. 우리들의 윗 세대들로부터 이어진 혼에 담겨 있다.
혼을 이어받은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기를 원한다. 더불어 살아가며 서로 공감하고 나누기를 원한다. 그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미숙한 어른은 오늘도 책을 읽는다.
By. 민트별펭귄.
사진 출처 : pixabay
인용 출처 : 『모랫말 아이들』황석영, 문학동네
본문 출처 : 민트별펭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