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원청, 위화 (푸른숲)
모든 사람의 가슴에는 원청이 있다.
청나라 말기에서 내전시기에 이르기까지 중국 역사의 흐름 한복판에서 겨우 헤어나왔다. 책을 덮은 지금도 소설 속 장면이 생생하다. 한동안 글자를 적는 법도 잊은 채 책 속의 사람들 하나하나를 곰씹어보고 있었다.
나는 원청의 발끝에라도 미쳐 보았을까. 소설을 다 읽고 난 뒤에도 나는 생각했다.
긴 여정은 시작만 있고 끝이 없었다.
린샹푸는 이미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자신이 애타게 찾는 도시 원청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 모든 게 인연이고 운명이었다면, 원청 역시 인연이자 운명의 도시일 것이다.
그들의 역사는 비극이었다. 끝나지 않은 전쟁, 곳곳을 침략하는 토비들, 회오리바람과 폭설을 비롯한 자연재해까지, 모든 상황은 그들에게 가혹하기 그지없었다.
토비들의 잔혹함, 사람들의 피를 토하는 울분에 나도 덩달아 피가 끓었다. 잔인하고 긴박한 순간에 몰입되어 페이지가 재빠르게 지나갔다. 토비들의 흉악함이 도가 지나칠 때면 그만 보고 있던 책장을 덮어버리고만 싶었다.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끝까지 본 이유는 책 속 아니 역사 속에 살았을 순박하고 진심어린 사람들 때문일 것이다.
린샹푸가 어린 딸을 품고 젖동냥을 하며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닐 때 그를 도운 이들이 있었다. 백 여명의 여성들이 젖을 먹여 살렸다는 뜻으로 지은 딸의 이름, 린바이자. 그녀의 이름 속에는 어머니 없는 슬픔 그리고 아이를 보듬어 주었던 수많은 이의 따뜻한 정이 흠씬 묻어나온다.
난세에 토비로 사는 게
창피한 일은 아니지만
아무리 토비라도
선한 마음을 가져야지요.
세상 끝까지 가서라도 찾겠다는 린샹푸의 마음, 린샹푸를 가족처럼 받아들이고 함께 나누었던 천융량 가족들, 아무리 토비라도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사람들의 곧은 마음들은 모두 이 세상이 말하는 도였고 공감이었고 삶이었다.
목공에는 분야만 있을 뿐
귀천은 없습니다.
세상 각지에서 제 역할을 다하며 묵묵히 사는 사람들이 있다. 린샹푸의 한 마디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공허한 마음을 건드린다.
내가 살고 겪은 현대사회는 직업의 귀천이 나누어져 있는 듯하다. 당연히 실제로는 없겠지만 사람들이 은연중에 그어놓은 편견의 선, 선입견의 줄이 가로지어 놓여있다.
나 역시도 어느 순간 직업의 귀천을 나누어 본 것은 아니었을까 되돌아본다. 나만의 기술을 갈고 닦아 연마하겠다는 마음이 더욱 깊어진다.
세상과의 작별을 앞둔
어머니 눈앞으로
이런저런 장면들이 떠올랐다.
아들의 몸이 작은 걸상과
탁자 사이에서 점점 커지고
글 쓰는 붓이 아들 손에서
점점 작아졌다.
그런 광경을 떠올리자
그녀의 얼굴에
평생의 고생을 보상받은 듯
편안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어머니의 죽음을 앞두고 작가가 표현한 문장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어느새 어머니 입장이 되어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책상에 앉은 아들의 몸이 점점 커지고, 아들의 쥐고 있는 붓이 점점 작아지는 환영이 보이는 듯했다.
상상은 공감과 연민을 데려왔다. 어머니의 죽음에 마음 아플 린샹푸가 안쓰러웠다. 그럼에도 아들이 남은 여생을 잘 살아주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그는 그 모든 게 인연이고
운명이라고 결론지었다.
중국인들의, 더 넓게 보면 동양사적인 운명론적 사상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삶은 고달프고 힘들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운명으로 결론 짓는 그들에게는 삶을 대하는 그들만의 철학이 있었다.
여전히 내게 삶이란 모호하고 어렵다. 다만 그들이 대대로 이어온 인본주의적 마음을 헤아려본다. 사람을 위하고 사람을 구하려고 했던 그들의 마음을 잔잔히 헤아려본다.
세상에는 알고 싶어도 알 수 없고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는 일이
너무도 많지요.
그럴 때 우리는 상상 속에서
찾고 추측하고 조각을 맞춥니다.
이 시대의 뛰어난 작가의 작품을 읽으며 소설의 위대함을 다시금 느꼈다. 결국 모든 시대는 제각기 어려움을 지니고 있다. 토비들이 날뛰고 말도 안되는 일들이 벌어지는 세상. 그안에도 사람들은 정이 있었고 웃음이 있었고 연민이 있었고 죽음 역시 있었다.
위화는 인간을 그리고 인생을 이야기하는 소설가이다. 인간의 잔혹성, 자비, 해학, 연민, 공감 등 모든 감정들이 한데 녹아 잃어버린 도시 원청을 구성한다.
소설을 좀 더 생생하게 보고 싶은 분들을 위해 중국 장이머우 감독 <귀주 이야기>영화와 천카이거 감독의 <황토지> 등 영화들을 몇 편 추천한다. 시기적으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원청>같이 지역적 특색과 사람들의 순박하고 따뜻한 마음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By. 민트별펭귄.
사진 출처 : pixabay
인용 출처 : 『원청』위화, 푸른숲
본문 출처 : 민트별펭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