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홍학의 자리, 정해연 (엘릭시르)
<홍학의 자리>를 읽었다. 우리나라 작가가 쓴 추리소설이라서, 눈에 자주 띄여서, 표지가 매력적인 색이라서 읽게 되었다. 책을 이틀에 나누어 보았다. 정해진 시간에 잠을 자기로 결심한 내 삶의 철칙이 없었다면 앉은 자리에서 밤새 전부 읽어버렸을 것이다. 흡입력이 대단한 소설이었다.
첫 장면부터 나는 내 눈을 의심하며 책장을 넘겼다. 이미 나는 소설 속 장면에 들어가 있었다. 장면이 절로 상상되었다. 글은 매끄럽게 읽혔다. 한번씩 뒷내용이 궁금해서 나도 모르게 뒷부분으로 향하는 시선을 겨우 붙들고 내가 읽고있는 곳을 바로 보며 읽어야 했다.
추리소설이니만큼 스포일러는 하지 않겠다. 다만 이 책을 읽은 한 독자로서 주저없이 작가님께 한말씀 드리고 싶다.
"<홍학의 자리> 정말 재미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말을 전혀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놀랐고 또 놀랐습니다. 예상치 못한 변주를 통해 더 깊은 사유를 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님!"
( *하단 내용 역시 스포일러는 일절 생략했습니다. )
나는 겁이 정말 많은 사람이다. 공포영화는커녕 추적 60분 같은 시사 장르도 보기 힘들어할 정도로 담이 작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추리소설은 읽을 수 있었다. 심지어 좋아했다.
한때 추리소설만 주구장창 읽었던 적이 있었다. 셜록 홈즈같은 범죄 시리즈물에서부터 미제 살인사건을 다룬 다소 무섭고 잔인한 내용까지 섭렵했었다.
내가 왜 추리소설만큼은 읽을 수 있었을까.
나는 그 답을 예측 가능 여부에서 찾았다. 미리 예측해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나의 겁과 무서움을 상쇄시켜 주었다.
영상같은 경우 갑자기 느닷없이 무엇인가 튀어나온다거나 나의 상상을 초월하는 범죄가 나오는 등 다음 장면이 예측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책은 개연성을 따라가며 복선을 통해 암시를 얻을 수 있다.
특히 추리소설은 작가의 서술을 그대로 따라가며 사건을 차근차근 알아갈 수 있다. 소설 속 시점에 따라 등장인물들의 마음을 옅볼 수도 있고 사건의 범인을 차분히 짐작하면서 읽을 수 있다.
게다가 글이 주는 자유로움이 있다. 글은 독자에게 선택의 자유를 생각보다 많이 주는 편이다. 글을 읽을 때 독자는 자신의 상상력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 책과 자신 사이에 적당한 감정의 거리감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유는 어느 정도의 겁과 무서움을 해소시켜 준다. 겁이 나고 무섭다면 상상력을 작은 탁구공만하게 만들 수도 있고 소설에 더 깊이 빠져들고 싶다면 지구만큼 상상력의 크기를 키워 내 자신이 직접 커다란 세상 속에 들어갈 수도 있다.
글이 주는 유연함은 사고의 유연함으로 연결된다. 나는 추리소설의 매력을 글이 주는 유연성에서 찾는다.
나의 상상력의 크기를 마음대로 재단할 수 있는 것. 작가의 서사를 따라가면서도 나만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자유로움이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추리소설을 즐겨 읽는 이유일 것이다.
한편 생각보다 주변에서 장르문학에 대해 편견을 지닌 사람들을 꽤 보았다. 일부 사람들은 장르문학을 일반적인 문학보다 수준이 낮다고 폄훼하기도 한다. 재미만을 추구하고 목적과 뜻이 없다는 이유로 작품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일반 문학도 장르 문학도 모두 저마다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
사람 일은 아무도 몰라,
아무도
우리는 누구나 답을 찾고 싶어한다. 인생의 정답을 찾고 싶어한다. 범인을 찾고 싶어 한다. 문제의 답을 찾고 싶어한다. 추리장르는 이러한 인간의 순전하고도 강렬한 탐구적 욕구를 해소시킨다.
추리소설을 읽는 이유 중 하나는 누가 범인일까 추측해보는 것이다. 이런 저런 책 속 인물들을 꼽아보며 각각의 동기가 무엇인지, 저 사람의 알리바이는 타당한지, 거짓말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답을 찾는다는 욕구를 실현한다.
추리장르는 범죄가 점점 밝혀지고 범인의 신상이 드러날수록 그 답이 선명해진다. 하다못해 범죄 자체의 인과관계라도 밝혀진다.
우리는 살다보면 인과관계가 불명확한 일이 많다. 운에 의해 좌우되는 사건들도 수없이 겪는다. 우리가 평상시 겪는 예측 불가능한 사건들은 인생에 대한 답답함과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유발한다.
그런 답답함과 불안함을 우리는 추리소설을 통해 해소하는 것은 아닐까 추측한다. 시간과 공간의 인과관계와 선후관계에 따라 범인을 찾아나가는 추리 소설이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도 그 때문은 아닐까.
추리소설을 비롯한 장르문학은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을 건드리며 재미와 본질을 이끌어낸다는 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욕구 없는 인간은 없다. 그런 인간의 욕구를 극명하게 드러내며 서사를 구축해 나가는 추리 장르문학은 그 나름대로의 가치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스릴러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경고다.
호수, 살인 등의 키워드를 통해 예전에 읽었던 소설 <7년의 밤>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훗날 <홍학의 자리>라는 소설은 내게 어떻게 기억될까.
작가는 스릴러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경고라고 말한다. 우리는 작품을 통해 매번 경고를 받고 깨달음을 얻는다. 스포일러가 될지 몰라 자세한 내용은 생략했으나 나 또한 이번 작품을 통해 나만의 사고의 지평을 한 걸음 더 넓혀간다.
특히 인간의 선입견은 지독할 정도로 무섭다는 것을 깨닫는다. 인간이 갖고 있는 편견이 얼마나 맹목적인지 다시금 스스로에게 경고한다.
인간은 모두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인간의 인정 욕구가 극단으로 치닫을 때 어떻게까지 삶이 망가질 수 있는가 인지하고 깨닫는다.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을 내 삶속에서 어떻게 긍정적으로 풀어나갈지 고민한다.
이 책에서 당신이 얻어 간 그리고 얻어갈 깨달음은 무엇인가. 당신 마음속에 머물다 간 강렬한 경고 메시지는 무엇인가.
By. 민트별펭귄.
사진 출처 : pixabay
인용 출처 : 『홍학의 자리』정해연, 엘릭시르
본문 출처 : 민트별펭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