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트별펭귄 Mar 14. 2024

남이 훼손할 수 없는 기쁨과 자유가 나 자신에게 있다.

[책 리뷰] 가녀장의 시대, 이슬아 (이야기장수)

 어디에선가 <가녀장의 시대>를 쓴 이슬아 작가님에 대해 들은 적 있다. '월간 이슬아' 라는 간행물을 자기 자신이 직접 메일로 연재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나에게 작가님은 굉장히 혁신적인 시도를 하는, 상업적 글쓰기 분야에서 독창적이고 좀 특이한 분으로 인상에 남아있었다.


 시간이 흘러 민트빛 표지의 <가녀장의 시대> 책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가부장도, 가모장도 아닌 가녀장은 어떤 형태일까. 호기심이 동했다. 한편으로 제목만 보고는 정치적인 색깔이 짙은 소설이려나 색안경이 절로 쓰이기도 했다.

 


 이 소설은 '가부장제에 저항하고 가녀장의 시대를 만들자' 그런 거창한 주제를 담고 있는 소설이 아니다. 정치색이 짙은 소설도, 우리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열렬히 비판하고 권력을 깨부수자는 소설도 아니다.


 오히려 이 소설은 지극히 상업적인 소설에 가깝다. 간결하고 위트있고 재미있다. 에피소드 형식의 글들은 길이가 제각각이다. 소설로부터 받는 나의 감정들과 느낌들도 제각각이다.


 다만 다 읽고 나면 이런 삶을 사는 가족도 있구나, 우리집은 어땠었고 지금은 어떠한가, 돌이켜보게 된다. 책을 읽는다는 건 나의 삶을 돌이켜 본다는 것과 같다.


 작가는 독자들에게 우리가 그동안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것들에 대해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보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싶다. 가녀장이 주축이 된 가정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가부장적 사회 질서에 새로운 방식을 제안한다. 저자의 시도는 남녀와 노소를 가리지 않고 범인들의 사고를 넓혀주었으리라 생각한다.










나의 삶을

돌이켜 본다는 것



고향이 어디니? 본적이 어디야? 부모님은?


 학연, 지연, 혈연의 루트를 파악하기 딱 좋은 질문들, 일상생활 중 가장 많이 접한 질문들에서 가부장적 사회 질서를 느꼈다.


 세상을 너무 순진하게만 바라봤던 사회초년생 시절, 학연·지연·혈연이 우리 사회 속에서 얼마나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권력의 형태를 띠고 사람들 사이사이 녹아 있는지 처절하게 경험했다.



 물론 위 질문들 속에는 관심과 애정의 표현도 있다. 단순히 궁금해서 묻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그 안에 차별과 혐오를 담는다. 꼰대와 라떼들은 다른 범주의 출신을 비아냥대고 무시하며 자신의 소싯적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한동안 후자의 사람들을 마주하며 허탈해 했다.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나 고민도 많이 했다.


 모든 차별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현재의 이야기다. 지금도 버젓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이데올로기다.


 우리 지역과 남의 지역 같은 이분법적인 세계, 권력과 갈등에 휩싸인 채 답답함 투성이인 세상에 진절머리가 날 무렵 <가녀장의 시대>를 읽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내가 이 책을 골랐던 것은 나의 무의식 속 소심한 반항이지 않았나 싶다.


 가볍게 읽기 좋은 책은 지친 내게 피식 웃을 수 있는 순간순간들을 선사해주었고, 일상의 소소한 힐링으로 다가왔다. 오히려 새로운 삶의 방식은 자연스레 그리고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에서 나온다는 것도 함께 배웠다.



 내가 이 책을 통해 위안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인생의 선배들과 우리 윗 어른들의 세대를 다시금 돌아볼 수 있어서지 않을까.


 난 그냥 시간이 흘러서 나이가 먹은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나이들 것인가.





 



본받고 싶은

사람들



 책에서는 가녀장이 된 슬아와 복희씨와 웅이씨가 등장한다. 복희씨, 웅이씨라고 지칭하지만 그들은 슬아의 부모님이다. 슬아는 출판사의 사장으로써 부모님을 고용했고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 그들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야기는 마치 우리 옆집 마냥 친근하고 마냥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문득 지나가던 옆 팀 남자 과장님의 농담이 뒤섞인 푸념어린 목소리가 생각난다.


"아내와 딸은 절대 못이겨요. 이제는 집안에서 내 목소리 하나 내기도 힘들더라니까요."


 가녀장이 다스리는 가정을 다룬 이 책을 본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누군가는 공감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역정을 낼 수도 있다. 다양한 가정의 형태는 그렇게 우리 사회에 천천히 녹아든다.



 복희씨는 슬아의 매 끼니를 매일같이 챙겨주는 출판사 직원이자 엄마로 그녀의 가녀장 시대에 합류한다. 복희씨는 복희씨만의 삶의 고단함과 서러움이 있었다. 그럼에도 가모장이 되겠다고 나서고 잘난 체 하기 보다는 하루의 행복에 감사해하고 주변 사람들의 끼니를 챙기며 하루에 충실한다.


 한편 웅이씨는 청소, 운전, 목공 등 좋게 말하면 만능 해결사 나쁘게 말하면 잡일꾼으로 가녀장 슬아 밑에서 일하는 아빠이자 말단 직원이다. 웅이씨는 생존을 위해 버텼던 삶 속에서 다양한 생존 기술을 익혔고, 지금의 그는 그 기술들을 십분 활용하여 슬아네 만능 엔터테이너로 활약하고 있다.



 복희씨를 보며 세상의 모든 끼니를 책임지시는 부모님들이 존경스러웠다. 웅이씨를 보며 가정을 위해 무슨 일이든 발벗고 나서는 모든 부모님들을 한번 더 깊이 감사함으로 마주하게 된다.


 나는 다른 사람들 기억 속에 배경이 될 나 자신이 좀 더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이길 바란다. 따뜻한 말을 해주고 응원의 말을 해주는 사람들의 배경으로 기억되고 싶고 남아있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복희씨와 웅이씨는 나의 좋은 본보기가 되어준다.







더 넓은 세상

탐구하기



 사실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분법적이고 고리타분한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 건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게 두쪽으로 갈라지지 않는다.


 세상에는 다양한 책들이 있고 수천 수백만 가지의 이야기들이 있다. 나는 이 세상에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형태를 다양한 방식으로 경험하고 읽고 쓸 것이다. 내키는 대로 무수히 많은 나라, 많은 작가들의 각종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볼 것이다.


 다시금 상기시킨다. 내가 지금 밝게 빛나는 이유는 내 주변에 있는 이들이 뒷 배경으로 아름답게 반짝여 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좌절은 옅어지고 다시금 용기가 난다.



 

By. 민트별펭귄.


사진 출처 : pixabay

인용 출처 :『가녀장의 시대』이슬아, 이야기장수

본문 출처 : 민트별펭귄



매거진의 이전글 모든 사람은 각자 자기만의 사연을 갖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