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려는 마음과 잘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마음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여러 달에 걸쳐 만나고 있는 내담자 중 한 분이 늘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쓴다고 한다. 누군가 지적을 하면 못 견디겠다고, 태도가 나쁘지 않거나 건설적인 피드백일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나에게 지적질을 한다고? 하며 화가 나고 분노 속에는 상처받고 비난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리고 나의 쓸모와 가치에 대해 고민하는 작고 쪼그라든 자아가 있다. 작고 상처받은 속내를 들여다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생긴다. 상담을 마치고 퇴근길에 생각에 빠진다. 아닌 척하면서도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는 나의 못난 속내를 들여다보게 된다. 비슷하지만 결이 다른 마음인데, 내담자의 마음은 가슴이 쓰리고, 나는 못나게 느껴진다. 그리고 또 깨닫는다. 내담자가 타인의 시선에 신경쓰며 느끼는 감정에는 아프게 공감하면서, 나의 눈치와 나의 기준은 못나게 느껴지는, 나에게만 적용되는 이 가혹하고 높은 기준.
나 역시 완전하고 완벽한 모습에 대한 강박 같은 것이 있다. 완벽 자체에 대한 욕구보다 완벽해 보여야 한다는 강박에 가까울 것이다. 잘하는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 잘 나가는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 잘 보이려는 게 티 날 정도로 촌스럽게 노력해서는 안 된다. 내가 개업을 했다면 잘 나가는 개업가처럼 보여야 하고, 내가 엄마라면 적당히 괜찮은 엄마처럼 보이고 싶다. 아내로서 저런 아내 만나기 쉽지 않다는 평을 듣고 싶고, 딸로서 집안의 자랑이 되고 싶다. 자랑거리가 되어버렸다는 걸 인식하면 곧 불편해지고 만다. 조건 없이 사랑받고 싶은데, 혹시 이건 조건부가 아닐까. 내가 이 기준을 계속 채우지 못하면 언젠가 미끄러지고 말까. 공부를 하필 잘하는 바람에 스스로에 대한 기준치는 많이 높아지고, 공부랑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할 때에도 이 기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리고 나에게 중요한 일일수록 더 그러하다.
배영은 나에게 가장 편안한 영법이었다. 새로 수영을 배우면서 편안하게 놀면서 해야겠다는 다짐 아닌 다짐을 했다. 자유형을 어느 정도 연습한 뒤 배영 진도를 나가는데 킥이 수면에 가깝게 올라와야 한다는 코멘트를 들었다. 정확하게는 이런 말이었는데,
발차기 더 위로, 위로. 내 말 들렸어요? 들릴 때는 신경 써서 차고 아닐 때는 그냥 편하게 차고? (웃으며 절레절레)
반쯤 장난이 섞인 코멘트에 묘하게 기분이 상한다. 선생님 말 들을 때만 잘하고 안 그러면 꾀부리는 학생이 된 것만 같다. 발차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았으면서, 하는 원망과 함께 제대로 못하는 나에 대한 자책이 따라온다. 그리고 슬그머니 고개를 내미는 생각은 여지없이 잘해야겠다는 마음이다.
다음번 강습에 가서 선생님 코멘트대로 배영 발차기를 신경 써서 하려니 참으로 곤혹스럽다. 발을 제대로 차려니 몸이 자꾸 가라앉고 갑자기 물을 먹게 되질 않나, 물의 저항 때문에 다리를 차올리기 어려워서 자전거 타는 것처럼 무릎이 자꾸만 구부러진다. 편하게 잘못 차던 원래 발차기보다 속도는 안 나고, 체력소모는 크다. 지친 몸과 상한 마음으로 라커룸을 나서면서, 평생토록 나를 따라다닌 '잘해야만 한다'는 강박이 도졌음을 느꼈다. 즐기기로 했잖아. 못해도 괜찮잖아. 느리게 오래 할 거잖아.
남편이 매일 수영 영상 보는 걸 '뭘 저렇게까지 하나' 했었는데 이제 내가 배영 발차기 동영상을 찾아보게 된다. 남편은 내가 여유 부리며 다 괜찮아하는 줄 안다. 본인은 레벨 업하고 잘하는 것에 목을 메지만 자기는 편안하게 즐기면서 할 것 같아. 하고 말해준다. 나는 사실 더 잘하고 싶다. 그 욕심은 끝도 없다. 물속을 들여다보듯 가만히 마음에 떠다니는 감정과 욕구들을 바라본다.
잘하고 싶구나. 뭐든 잘하고 싶구나. 즐기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는구나. 잘 못하면 혼날 것 같고, 웃음거리가 될 것 같은 불안도 조금 있구나. 선생님하고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구나.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나 보다. 동료들이 수영 잘한다고 말해주기 바라는구나. 남편보다 늦게 시작했는데 얼른 따라잡고 싶구나. 그리고 잘하지 못하면 안 된다는 강박보다 오래 즐기면서 하기를 원하는구나. 이런 괴로움으로 마음 상하면서 수영에 흥미를 잃고 싶지는 않구나.
가만히 읽어가면 조금씩 정돈되는 마음이 있다. 중요한 건 즐거움을 잃지 않는 것, 조금씩 잘해지는 것. 잘하지 못하면 안 된다는 부담 말고, 잘하고 싶다는 욕구와 바람에 충실하면 배영 발차기 튜토리얼 동영상에 나오는 '자전거 타기 같은 잘못된 발차기 예시' 시범을 보며 나랑 똑같다면서 웃을 수 있다. 우리의 감정과 생각 속에는 늘 나에게 중요한 바람과 욕구가 숨어 있다. 잘 찾아서 알아주면, 그리고 제일 중요한 부분에 집중하면 다시 힘이 나는 법. 오늘은 수영 강습날이다. 배영 발차기, 조금 더 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