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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빌더 Jan 02. 2023

수영하는 심리학자 3

어른이 되어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

삼십 년 전, 아홉 살이었던 해에 수영을 배웠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고, 족히 9, 10개월 정도는 배웠던 것 같다. 계절이 몇 번을 바뀌는 동안 다녔던 것 같은데, 평영 발차기를 배우다가 그만뒀다는 기억이다. 수영을 조금이라도 배워본 사람은 알겠지만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 순으로 진도를 나간다. 아홉 살의 나는 어떤 마음으로 수영을 배웠을까. 잘 기억나진 않지만 먼저 배운 언니 때문이리라. 어린 나는 언니가 하는 것은 다 하고 싶었다. 언니가 아침 자습시간에 쓰는 동시가 멋져서 여섯 살 때는 한글을 떼자마자 시를 썼고(그래서 꿈이 무려 시인이었다), 언니가 입는 옷이 너무 예뻐서 얼른 커서 언니 옷을 입고 싶어 했으며, 슈퍼에 가면 언니가 먹는 아이스크림을 따라 고르다 혼나기 일쑤였다. 수영도 아마 언니가 배우는 게 좋아 보였을 테다. 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 시작한 것은 그래도 열 살은 넘어서였다.


내가 다니던 수영장은 집에서 한참 먼 거리에 있어 셔틀버스를 타고 다녔어야 했다. 운전하시는 할아버지가 무척 친절하셨는데 인사성이 밝고 어린 편에 속하던 나를 예뻐하셨던 것 같다. 타고 내릴 때면 정겹게 인사를 해주셨고, 수영을 그만둘 무렵 기사 할아버지께 귤을 선물로 드린 기억도 난다. 


수영을 배운 기간을 생각하면 무려 두 학기에 여름방학을 합친 것만큼 긴 시간이다. 그동안 고작 배운 것이 자유형과 배영이라니 지금 생각하면 조금 맥이 빠지기도 한다. 처음 만난 수영 선생님은 여자분이었다. 매서운 인상에 탄탄하고 마른 몸을 가진 키가 큰 선생님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선생님은 아이들을 지도하는 강사치고 아주 무서운 분이었는데, 그때 별다른 느낌이 없었던 걸 보면 90년대에는 무서운 선생님들이 많았던 것 같기도 하다. 당시 내 키에 허리까지 오던 아동용 풀에서 킥판을 잡고 발차기를 배운 뒤, 자유형 진도를 나가야 하는데 물이 무서운 내가 팔을 한 번 젓고는 호흡을 못해 자꾸만 일어나게 되었다. 발차기만 하면 물에 뜰 수 있는데 팔을 저으며 고개를 돌려 호흡하는 것이 무서웠던 모양이다. 어르고 달래고 혼내도 왼팔 한 번 젓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울음을 터뜨리니 선생님도 곤혹스러웠을까.


선생님의 선택은 나를 성인 풀로 보내는 것이었다. 사자가 절벽에서 자기 새끼를 밀어 떨어뜨리는 전략이었을까. 물이 무서웠던 나에게 홍수법 같은 노출치료가 되었다. 초등학교 2학년 보통 키의 나로서는 성인용 풀은 바닥에 발에 닿지 않는 까마득히 깊은 물이었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남자 강사님과 잘 기억나지 않는 중학생 언니들이 있었던 것 같다. 성인용 풀에 가서 자유형을 시작하고, 단 한 번에 25미터를 갈 수 있었다. 원래 담당 선생님은 내가 깊은 물에서 어떻게 하나 보고 다시 데려오려 했던 것 같은데 단 번에 완주하는 것을 보고 그냥 성인 레인에서 배우라고 하셨다. 조금 웃으셨던 것 같기도 하다. 전에 한 번 썼던 우박 내리던 날 웅웅 거리는 적막 속 기분 좋은 배영의 기억은, 성인 풀에서의 기억이다.


성인 수영강습에서 영법을 배우는 것은 오래 걸리는 일이 아니라고 한다. 강사의 스타일에 따라 다르겠지만 빠른 사람은 두 달 만에도 다 배운다 하고 남편을 봐도 여름에 시작한 수영인데 초겨울 들어 접영을 시작했다 하니 금방 배우는 셈이다. 어릴 때는 그렇게 오래 걸리던 일이, 어른이 되어 배우니 빠르다. 내가 취미라고 할 수 있는 뜨개질도 마찬가지인데, 학창 시절 가정 실습으로 코바늘을 배울 땐 어떻게 단을 올라가면서 코가 일정하게 유지될 수 있는지 어렵게만 느껴지던 것이 지금은 숨 쉬듯 자연스럽게 된다. 기둥코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수영 강습을 가서 부력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우리 척추뼈 생김새에서 시작해서 자유형 호흡을 할 때 뒤통수가 팔에 붙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수긍하고 적용하게 된다. 숨을 몸에 가득 넣고 떠있으려 하고, 자유형 호흡을 할 땐 천장을 보는 것을 매번 확인한다. 몸이 기울 때마다 원인을 찾고, 팔을 곧게 뻗으려 노력한다. 


신체의 노화와 더불어 흔히 동작성 지능이라고 하는 유동 지능은 조금씩 퇴화한다고 한다. 특정 영역에서는 갈고닦아서 좀 더 천천히 늙을 수 있겠지만. 몸이 낡아감에도 불구하고 몸으로 배우는 것을 어릴 때보다 잘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신선하다. 소소한 지시를 알아듣고 구석구석 내 몸에 명령을 내린다. 무엇을 질문해야 하는지 알고, 무엇을 찾아봐야 도움이 되는지 안다. 찾아볼 수 있는 능력도, 적용할 수 있는 능력도 생겼기에 잘 배울 수 있다. 사람에 따라 영 안 되는 분들도 있을 테고, 나이가 더 들어서 배웠다면 글쎄, 어렵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지. 체력도 운동신경도 어릴 때보다 딸리겠지만, 나는 더 늙었고 지쳤지만, 분명 더 나아지는 부분이 생기는 것 같다. 그게 참 감사하다. 우리가 한참을 나이 먹어도 무언가 계속 배워야 하는 즐거운 이유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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