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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빌더 Feb 16. 2022

밥 한 끼

저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아기를 낳고 보니 근사한 밥 한 끼가 참 어렵다. 힘들수록 악착같이 챙겨 먹는 편이라서 바쁠수록 살이 찌는데, 딸이 생긴 뒤로는 늘 바빠서 늘 살이 찐다. 아기를 돌보면서도 나름 잘 먹는 편이고, 워킹맘인지라 나와서 점심 한 끼는 사 먹게 되는데 혼자 먹을 수 있는 맛집을 발견하는 건 신나는 일이다. 


한참 병원 수련 중이었을 때다. 병원 식당만 다니고 스스로를 돌볼 여유는 많지 않아서 뭘 먹으면 연료 넣듯, 옷을 사면 작업복 고르듯 하는 마음가짐이었을 때가 있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마음에 들게 잘 해내지 못한다는 불만도 많았던 것 같다. 어느 날인가 본가에 가서 배달음식을 시켰는데 그게 그렇게 맛이 있었다. 이렇게 맛있게 음식을 해서 따뜻하게 배달해주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내일을 이만큼 잘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아 하는 부끄러움이 찾아왔다. 와... 진짜 잘한다. 나도 잘해야겠다. 나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


코로나 때문에 식당 가기가 꺼려져서 자주 포장을 해와서 혼자 먹곤 한다. 배달을 시키는 일도 많아졌고. 얼마 전 조금 힘들던 날, 따뜻한 밥 한 끼가 그립고 고기가 먹고 싶어서 근처 배달음식점을 찾아 항정살 덮밥을 주문했다. 한 숟갈 뜨는데 주책맞게 울컥하는 거다. 따뜻하고, 짭조름하고, 양파의 아삭함과 고기의 육즙이 계란 노른자와 만나 고소하게 입안을 채우는데 아, 고독한 일터에서 이만한 위로가 있을까. 동료가 없이 혼자 일하는 나는 많은 내담자를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듣지만 어느 때고 잡담을 나눌 사람은 없어서 고독한 시간이 저변에 널려있다. 따뜻한 밥 한 술의 위로는 그렇게 찾아왔다.


오늘은 뭘 먹을까 고민하다 근처 포장 가능한 식당을 둘러보던 중 적당한 가격의 돈가스가 있어서 주문을 했다. 시간 맞춰 픽업을 갔는데 젓가락 포장지에 '자주 봐요 우리, 정들게' 하는 위트 있는 멘트가 적혀있었다. 저렴한 메뉴를 주문하면서 마침 사이드 메뉴를 주는 리뷰 이벤트를 하길래 '도시락 하나 주문도 리뷰 참여 가능하면 텐더 부탁드려요. 해당 안되면 안 주셔도 괜찮아요'하고 소심하게 한 마디 남겨두었는데, 센스 있는 가게 사장님께서 리뷰 참여 가능에 빨강 하트를 그리시고는 돈가스 위에 소복하게 튀겨진 큼직한 텐더 두 개를 얹어주셨다. 맛있을 것 같은 집에서만 주문을 하고 대체로 리뷰는 잘 남기려고 하는 편인데, 이번엔 조금 더 진심으로 맛있다, 왜 이제야 이 집을 알았을까, 너무 든든하다, 오후 시간도 힘날 것 같다, 한 끼 먹는 게 정말 소중한 시간인데 너무 좋았다,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 누가 보면 웃을까 싶을 정도로 대여섯 줄을 적어놨다. 사장님 자주 봅시다 하고. 아줌마 오지랖인가 싶기도 하지만 싫은 말은 아끼고 좋은 말에는 좀 헤퍼지고 싶다. 맛있는 음식처럼이나 오늘도 열심히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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