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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카소 Oct 22. 2023

뭐?! 장돌뱅이? 피바람을 부른 그녀 집 금기어

운이 없었다. 하필 그날은 그녀가 백화점 디자이너 마켓에서 아무것도, 열쇠고리 하나도 판매하지 못한, 차비와 식대로 마이너스를 친 날이었다. 그런 날이 왕왕 있었다.


그녀는 일요일에도 오전 10시까지 백화점에 도착해서 물건을 보기 좋게 정리하고, 고객님들을 맞아 판매할 준비를 완료해야 했다. 그러려면 집에서 8시 전에 출발해야 한다. 10시 30분 백화점 오픈부터 저녁 8시 30분 문을 닫을 때까지 10시간을 매대 앞에 서 있었음에도 아무것도 판매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우울해지기 딱 좋은 조건이었다. 심지어 그날은 백화점 행사가 끝나는 날이었다. 다 팔지 못하고 남은 제품들은 캐리어에 싸서 끌고 가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 그녀는 재고의 무게만큼 묵직해지는 마음을 떨쳐내고자 친한 친구에게 현재 상황을 톡으로 남겼다. 친구는 안쓰러웠는지 조금만 더 힘내라고, 맛있는 저녁 같이 먹자고, 백화점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온다고 했다. 고마웠다.


친구랑 그녀는 백화점에서 만났다. 두 번째 회사에서 인연이 된 친구를 만난 그녀의 얼굴에 그날 처음으로 편안한 미소가 번졌다. 한 손에는 한 주의 고단함이 그대로 응축되어 있는 캐리어 손잡이를 꼭 잡고 있었다. 근처 파스타 집에서 리코타 샐러드와 크림 스파게티, 샌드위치를 먹기로 했다. 친구는 음식으로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걸 싫어했다. 특히 슬플 땐 더 잘 먹어야 한다며 늘 푸짐하게 주문해 주었다.

친구는 그녀의 신혼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국내 패션 대기업 브랜드에서 액세서리 핸드백 디자이너로 일하던 중이었다. 그날뿐만 아니라 그녀가 집에 혼자 일하다가 수시로 마주하는 울적함을 감지한 날이면, 밥 먹자고 혹은 커피 마시자고 그녀를 불러내곤 했다. 중국집에서 기름진 자장면도 사주고, 일식집에서 카이센동 등 맛있는 저녁도 사주었다.

그녀는 파스타를 먹으며 친구에게 아무것도 판매하지 못한 하루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것저것 다 쑤시고 결국 아무것도 안 사고 가버린 진상 손님과 옆에서 얄밉게 구는 다른 셀러 작가를 일부러 떠올리며 한참을 욕 했다. 말하는 순간에는 조금 울적함이 해소되는 듯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은 그렇지도 않았다. 왜인지 그녀 스스로 더 무능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친구가 계산하기를 기다렸다가 함께 지하철을 탔다. 사는 곳은 달랐지만 가는 방향이 같았기에 둘의 수다는 계속 이어졌다.


이번에는 친구가 썸 타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는 쫄깃쫄깃 썸남 썸녀 이야기를 분명히 두 귀로 듣고 있는데 아무 이야기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무의식에서 어떤 작용이 일어났는지, 갑자기 하루 종일 참아왔던 눈물이 팍 터져 나왔다. 주체할 수가 없었다.


"수지야 미안해 나 너무 힘들어. 나 어떡게 망했나 봐..."

 

썸남과의 썰을 풀던 친구는 지하철 안에 사람들이 있거나 말거나 눈물을 펑펑 쏟는 그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아이고... 민영아. 생각보다 더 많이 힘들었구나... 그것도 모르고 미안해..."   


둘은 서로 미안해하다가 그녀가 먼저 내려야 할 역에 지하철이 정차하자 서둘러 인사하고 헤어졌다.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그녀가 가장 먼저 챙긴 것은 재고가 가득 담긴 캐리어였다. 그녀와 한 몸 같은 캐리어가 있어야 내일 다른 곳 프리마켓에 나가서 물건을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달달달달...

물건이 가득 담긴 캐리어가 낼 수 있는 특유의 소리를 골목 길바닥에 흘리며 집에 도착했다. 100m 밖에서부터 들려오는 아내의 귀가 소리를 들은 남편이 캐리어를 받아주고 그녀를 맞아주었다. 거기까지 딱 좋았다. 캐리어를 옮기면서 아직 아내의 표정을 읽지 못한 그는 가볍게 입을 열었다.


자기야 내일은 다른 곳에 판매하러 가나 봐? 옛날이었으면 자기 완전 장돌뱅이다. 그지? 장돌뱅이~ ㅎㅎㅎ



그는 장돌뱅이라는 단어가 재미있었는지 두 번이나 반복, 강조하며 놀리듯이 웃었다.


네이버 검색하니 장돌뱅이는 "‘장돌림’을 낮잡아 이르는 말. 그 외에도 '보부상' '장돌림', '장꾼' 등 여러 가지로 불렸다. 조선시대 등 전통사회에서 장시를 중심으로 지게나 봇짐으로 물건들을 가지고 다니며 활동했던 전문 행상인들이나, 이들이 속한 단체를 말한다"라고 설명한다.


장돌뱅이. 아무것도 판매하지 못하고, 무거운 현대판 봇짐인 캐리어를 끌고 귀가한 그녀에게만큼은 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단어였다.



뭐? 장. 돌. 뱅. 이?! 자기 지금 나한테 장돌뱅이라고 한 거야? 장돌뱅이?! 어? 장돌뱅이 라고 한 거냐고! 지금 밖에서 하루종일 물건 팔겠다고 개고생 하고 온 사람에게 장돌뱅이라고 했어? 미쳤구나 정말! 미쳤어! 그래 나 장돌뱅이다 왜! 왜! 왜오애!!!


남편에게 장돌뱅이라는 말을 들은 그녀는 꼭지가 제대로 돌았다. 장돌뱅이라니, 왕년에 디자이너였던 그녀가 퇴직금을 털어 자기가 벌려 놓은 일을 수습해 보겠노라고 판매할 곳을 떠돌며 힘겹게 매일매일 버티고 있는데, 장돌뱅이라니!

매번 다른 장소에서 열리는 프리마켓에 셀러 신청을 하고, 제품을 캐리어에 가득 담아서 판매하러 나가고, 물건을 깔고, 구경하러 온 손님들을 응대하고... 사실은 누가 봐도 그녀는 보부상 혹은 장돌뱅이가 맞았다.

하지만 그녀는 장돌뱅이가 되고 싶지 않았다. 원해서 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상상도 하지 못한 이 막막한 현실을 겨우 겨우 받아들이고 나서야, 간이고 쓸 게고 자존심이고 다 집에 두고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어디에서든 하나라도 팔아보겠노라고 발버둥 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장돌뱅이는 무너지기에 충분한 단어였다. 심지어 그날은 아무것도 판매하지 못해서 심신이 쇠약해지기도 한 날이었다.


사진 찍을 때는 일단 웃는 장돌뱅이...

그는 웃자고 한 소리에 미쳐 날뛰는 그녀를 보고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라 꽁꽁 얼어버렸다. 한바탕 피바람 소동으로 온 집안이 쑥대밭이 되었다. 그녀에게 싹싹 빌다시피 사죄함으로써 일단락 마무리 되었다. 그날 이후로 둘 사이에서, 그 집안에서 장돌뱅이는 금기어가 되었다. 이 에피소드는 그의 친구들 사이에서도 '어떻게 아내에게 장돌뱅이라고 할 수가 있냐...' 며 여전히 회자되는 유명한 일화가 되었다.


약 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날, 그에게 들은 장돌뱅이를 떠올리면 그녀는 여전히 몸서리가 쳐졌다. 그래서 그 단어를 빌미 삼아 그에게 커피나 빵 등 간식을 뜯어내곤 한다. 그는 아무런 토를 달지 않고 그녀가 원하는 걸 사주어야 무사할 수 있다. 이 글도 그에게 뜯어낸 코코넛 크림빵을 먹고 썼다. 아마도 이 암묵적인 간식 형벌은 평생 유효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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