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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카소 Oct 20. 2024

자유로운 비건이 되기 위한 여정

내가 중학생 혹은 고등학생 때, 그러니까 약 20여 년 전이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있는 나의 엄마는 당시 현미와 채식 식단에 한참 빠져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그녀는 호기심이 많았고, 꽂히는 건 하고야 마는 유별남도 있었고, '이렇다'라고 콕 찝어 설명하기 어려운 그녀 만의 독특함이 있었다. 어렸던 나는 엄마의 독특함이 좋을 때도 있었고, 버거울 때도 있었다. 

엄마가 점심 도시락으로 싸준 김밥 역시 일반적이지 않았다. 옅은 갈색의 현미쌀 100%에 햄과 단무지 대신에 두부와 깻잎이 들어가 있었다. 시각, 촉각, 후각, 청각 모든 감각이 예민했을 사춘기 여학생의 도시락 색감은 대체로 칙칙했고, "반찬이 왜 이러냐며" 그걸 꼭 지적해서 무안을 주는 못난 친구가 있었다. (지금 같았으면 "뭐가 어때서"라고 말했을 테지만, 그때는 '우리 엄마도 도시락을 좀 예쁘게 싸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알록달록 예쁘고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김밥은 아니었지만, 그 투박함 속에 나름의 맛이 있었다.

된장국과 나물 반찬, 비빔밥은 우리 집 단골 메뉴였다. 

엄마의 채식에 대한 관심 덕분에 콩고기 요리도 20여 년 전에 이미 먹어 보았다. 당시 흔치 않았던 채식 식당을 온 가족이 찾아가서 식사했던 어렴풋한 기억도 있다. 맛있었다. 

엄마는 주변의 저항을 이겨내며 채식을 지속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는지,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식탁에 고기반찬이 등장했던 기억이 난다.  


이것이 채식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이다. 


그 때나 성인이 되어서나 고기가 있으면 맛있게 먹었고, 된장국이나 뭇국, 야채샐러드와 월남쌈 등 채소 요리도 좋아한다. 아이가 내게 붙여준 별명은 초식 공룡, 야채 돌이. 각종 야채 맛에 대한 긍정이 내 안에 가득하다.


2022년 5월 28일, 나는 과하게 사랑했던 술을 끊었다. 

술을 마시고 감정적 무너짐을 반복하는 내가 싫었다. 그 연결고리를 끊고 싶었다. 하지만, '금주'를 다짐했다고 해서 단칼에 끊는 건 불가능했다.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그랬다. 술을 잠시 끊었다가 다시 마셨다가 오락 가락 하기를 약 3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혼술도 자주 했다. 가볍게 마시는 정도가 아니라 대체로 만취했고, 남편과는 소맥과 막걸리, 양주, 와인, 폭탄주 등 주종을 가리지 않고 폭음했다. 그렇게 술을 마셔대던 내가 처음에는 '혼술'을 끊었고, 다음에는 '평일 금주'에 도전했고, 그다음에는 '토요일만 술 마시기'를 시도하며, 어느 순간에 이르러서야 결단을 내리고, 술을 완전히 내 삶에서 도려낼 수 있었다. 금주에 실패하면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지만, 결국 모두 필요한 과정이었다.  


돌아와서, 금주하게 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비건이 되고 싶은 결심은 내 마음에 가득한데, 여전히 오락가락하는 중의 나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요즘 집에서는 음식에 대한 별다른 스트레스 없이 비건이 될 수 있다내가 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해야하거나 간섭하거나, 부담 주는 사람이 없어서 어렵지 않다.

어려울 때는 외부에서다. 누군가가 눈치를 주는 것도 아닌데, 나 스스로 불편함을 느낀다. 아직 내 안에서 채식에 대한 중심이 서지 않아서 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할 때, 혹은 메뉴를 정할 때, 시댁에 갔을 때, 누군가가 좋은 마음으로 건넨 커피가 라테일 때 등등...'저 비건이에요'라고 말하기 어려워서, 적당히 타협하고 마는 단계이다.

시기도 지나고 나면 술을 완전히 끊은 날처럼 결단하고 완전히 자유로운 비건이 될 거라고 믿는다. 지금도 과정이라고. 


왜 비건을 하려고 하는지? 묻는다면, 사실 그럴싸한 이유는 없다. 그냥 내 몸이 원하는 느낌적 느낌이 더 정확하다. 동물 관련 다큐를 찾아 본 것도 아니고, 환경에 관련된 책을 읽은 것도 아니라서 결정적인 계기나 특별한 이유는 아직 없다. 하지만 왜인지 끌렸고, 관심은 있었다.


처음에 언급한 것과 같이 어렸을 때 엄마가 채식에 관심이 컸던 시기를 함께 경험했던 것, 임신했을 때 우연히 보았던 공장식 낙농업의 우유 생산 관련 다큐, 제주도 여행 중 말타기 체험을 하면서 느꼈던 불편함 등 작은 경험과 거기서 느꼈던 감정들이 무의식에 저장되어 끌리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아, 나는 이슬아 작가 팬으로 그녀의 글을 몹시 사랑한다. 채식주의자인 이슬아 글을 읽으면서 받은 영향도 있을 것이다.


재작년 시부모님과 동서네 가족과 함께 제주로 여행 가서 말타기 체험을 했다. 돈을 내고 순서대로 말을 타는데, 내가 탄 말이 걷기 싫다고 이리저리 몸을 흔들며 표현하자 관계자는 채찍을 휘둘렀고, 그제야 저항을 멈추고 터덜터덜 걷기 시작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루종일 사람들을 태우고 똑같은 코스를 반복해서 돌아야만 하는 말를 생각 하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세상에 즐길 것이 많은데, 굳이 내 돈 내고 동물에게 스트레스를 주면서 등 위에 타고 도는 체험해야 할까? 


먹는 것도 마찬가지다. 고기 외에도 세상에 맛있는 먹거리가 많을 텐데, 굳이 고기를 먹어야 할까? 질문을 떠올려본다. 


아직 완벽하지 않다. 

자유로운 비건이 되기 위한 여정을 레시피로 담았다. 평소 '요리는 빠르고 쉽게' 모토로 주로 그때그때 집에 있는 야채들로 직접 만든 요리들을 기록했다. 


비건이 되기 위한 과정 중의 레시피라서 재료에 미미하게 동물성이 들어갔을 수도 있다. 시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신 김치의 젓갈 같은 것이다. 시작하기 전에 그 점은 미리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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